소리 없는 는개의 흐느낌이다 봄비는 낙화를 귀속에서 듣고
있다 벚꽃은 낙화를 위해 존재한다고 중얼거리면서 구름에게
엽서를 쓰고 봇짐을 쌌다 잿빛 하늘을 쳐다보고 말라간다 벌써
지쳐서 비틀거린다 가다가 풀잎에게 매달리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 깊이 안고 간다 지나간 자국에 남아 있는 허전한
마음, 황매산 철쭉을 걸어간다 인연을 끊으려고 자신의 몸을
다 녹여버리고 지리산 물소리에 젖어 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카바티나(cavatina)’의 현이 지나가는 소리에 봄비의
슬픔이 떨고 있다 안개가 묻어 있다 지나고 난 뒤는 기억은
끊어 버린다 그리워하는 것은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치근거리는
바람을 달랜다 아스팔트 위에서 갈 곳을 몰라서 어정대는
고양이를 품에 안는다 꽃마리의 맑은 영혼에 두 눈을 감는다
기찻길 옆에서 지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를 목놓아 울다가
난데없는 박인수의 ‘봄비’를 보고 낄낄거리고 웃었다 유채꽃의
노람을 눈이 빠지도록 쳐다 보다가 노랗게 되었다 꿈에 산티아고
길을 흙냄새를 맡고 왔다 걸을수록 아랫도리에 힘이 빠져
머리에 이고 있는 꿈을 다 잃어버렸다 봄비가 가야 할 곳은
어둠의 뿌리 속이다 사라지면 지하수로 흐르다가 너에게 닿으리라
섬진강가에서 자진(自盡)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