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럭의 하루

by 현목





저는 생긴 것이 네모났습니다 매력 있는 빨간색이기를

바라지만 볼품없이 회색입니다 그래도 가끔 은빛 모래가

반짝이니 다행입니다 저는 귀가 아주 밝습니다 하루 종일

듣는 것이 신발 발자국 소리입니다. 따각따각 숙녀의

하이힐 소리는 제 가슴을 찌르지만 그래도 쾌감이있습니다

학생들은 왜 그리 바쁜지 언제나 후다닥입니다 진흙

투성이의 신발은 제 마음도 무겁습니다 그 신발만큼

삶의 무게가 전해져 오니까요 아 저기 할머니가오네요

조그만 손구루마에 의지하여 한 발 떼고 그 다음 한 발

떼는 게 힘이 듭니다 제가 벌떡 일어나 밀고 싶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세 개인 경우는 당신도 상상이 가니까 더는

길게 설명은 안 하렵니다 너무 슬픈 얘기만 하는 꼴이니까요

물론 씩씩한 구두발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비관적이라서

꽃을 보면 낙화를 생각하는 편이랍니다 솜방망이 같은

발자국도 있습니다 저의 입이 그저 미동하면서 옆으로

벌어집니다 구름이 가슴 위로 지나간다고나 할까요 바람

부는 날에 가랑잎이 가랑가랑 소리를 굴리면서 지나가면

인간 세상의 아귀다툼이 불쌍해 보인답니다 비오는 날은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저도 마음이 그렇게 건조하기만

바라는 건 아니고 감동하여 몸이 흠뻑 젖기를 바랄 때도

있습니다 물론 함박눈이 오기를 바라지만 그게 쉬운 것도

아니고 오면 좋은 거고 안 오면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한

셈입니다 어느날 바람에 날려 온 씨앗 하나가 제게 끼인

선낫되는 흙 틈바구니에 자리잡더니 봄에 연초록 잎이

나대요 운명의 우연을 원망하지 않고 꽃피운 겁니다 생명은

슬프지만 결국은 아름답다는 걸 봄까치꽃의 푸른색이 눈물인

걸 보고 나중에 알았어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저는 혼자

있는 야밤이 좋아요 어둠과 같이 동행하면서 이야기를 밤새

하지요 운이 좋으면 달과도 별과도 같이 놉니다 아, 동이

트네요 벌써 제 가슴을 밟고 지나갈 발자국 소리가 그리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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