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을 오르다』라는 책을 쓰려고 비봉산에 대한 모습을 한 장면씩 그리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첫 번째 제목인 「황토색 아스팔트 길」에 이어서 두 번째 제목인 「계단을 오르다」에서 매화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는데 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글이 누에에서 실이 나오듯이 술술 풀려나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것이 어디 있으랴마는 세상사 모두 그렇게 입맛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매화’에 대해서 쓰려고 해도 도무지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도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글쓰기를 직업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글로써 뭔가 성취를 이루고 싶은 나로서는 어떤 방법을 강구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이토케이치(伊藤桂一)가 말한 사물에 대한 다섯 가지 모습이 있다.(실제로 사토는 아홉 가지로 설명했지만) 사물의 외면, 내면, 감정, 주변 사물과의 관계, 그리고 영혼이 그것이다. 매화의 외면에 대해서, 매화의 내면의 모습을 이미지로 그려내고, 매화가 감정을 가졌다고 상상하여 매화의 감정을 표현하고, 매화의 주변의 사물, 예컨대 햇빛이나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나 혹은 저 하늘로 흘러가는 구름 등의 사물을 통해 매화를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화에게 영혼이 있다면, 즉 신이나, 우주, 자유와 같은 이념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는 이른바 ‘브레인 스토밍’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브레인 스토밍은 원래 문학이 아니라 회사에서 어떤 테마를 정하여 회사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방법을 말한다고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발언이라도 비판하면 안 되고 모든 구성원이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야 한다. 이런 방식을 글쓰기에서도 원용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를 들어 지금 매화에 대해 글이 안 나온다고 하면 매화에 대해서 내가 이미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적어본다. 이것은 다시 말해 음식으로 말하면 식재료이고 글쓰기로 치면 글감이다. 자신의 자유연상에 의해 표출해 낼 수도 있고 안 되면 인터넷을 검색하여 적당한 이미지를 선택하여도 좋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이러한 이미지를 그냥 나열하는 진술의 언술이 아니라 이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은유의 영역으로 확대해 나가는 방법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해보면 나로서는 만만치 않는 작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 번째는 내가 작명한 ‘세 장면 쓰기’이다. 어떤 사물이 행동을 시작했다면 적어도 세 가지 국면이 있다. 그 행동을 하기 전과 행동을 하는 중간과 행동을 끝내고 마친 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 세 가지 장면마다 글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세밀묘사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좀 과하게 상상하면 이렇게 세밀묘사만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건 의식의 흐름에 대한 글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매화를 예를 든다면, 매화가 바람에 흔들리기 전, 흔들리고 있는 중, 그리고 매화가 낙화하여 내려가면서 매화의 생각이나 모습을 글로 나타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방법은 하나하나를 가지고 사용할 수도 있겠고 능력이 있다면 두 가지 혹은 세 가지를 다 구사하여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네 번째는 what, why, how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이건 서정적 글쓰기보다는 논리적 글쓰기에 더 적합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론을 토대로 하여 실제로 제목을 ‘매화’로 하여 글을 한편 만들어 보자.
1) 매화의 다섯 가지 모습
①분홍색 꽃, 하얀색 꽃, 산지사방으로 갈라진 가지들, 암갈색 가지들의 거치른 피부
②하얀 속으로 물줄기가 올라가고 있다
③겨우내 한기에 움츠린 마음이 이제 햇빛에 웃고 있다
④발밑에 흙더미 속에 초록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⑤매화는 제 영혼을 이제 저 하늘로 날려보낼 준비를 한다
2) 브레인 스토밍
분홍, 흰색, 향기, 지조, 꽃망울, 기품, 봄, 화선지, 매화 그림,
분홍은 흰색에 익사하기 직전이다. 향기가 지조를 풍긴다. 꽃망울이 터지면 기품이 나올 것이다. 봄은 매화를 화선지에다 먹을 가지고 그렸다.
3) 세 장면 쓰기
①매화는 겨우내 분홍빛을 움켜쥐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정적만을 품고 있다. 그리움은 안개로 둘러싸고 있다. 바람은 매화 주위로 어슬렁거리고.
②음력 2월이 되자 매화는 기지개를 켰고 분홍과 흰색을 쏟아냈다. 화선지에 먹물로 그림을 그렸다
③꽃이 떨어지는 날은 매화에게 겨울이 있어야 했던 이유를 안다. 허전한 마음을 채워야겠다. 술 한잔이 생각난다.
이런 식의 작업을 통해 ‘글이 안 나올 때’의 난관을 돌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백처럼 술 한잔 걸치면 술술 폭포수 떨어지듯이 나오면 더 바랄 것도 없지만 불행히도 그런 재능을 타고 나지 않더라도 궁색하지만 이런 방법도 있을 듯 싶다.
자, 그러면 조금 문맥이 잘 안 맞을지 몰라도 우선 이러한 방법으로 만들어낸 글을 한군데 모아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보자. 문맥이 안 맞는 것, 혹은 너무 튀는 이미지는 나중에 잘라내면 된다.
분홍색 꽃, 하얀색 꽃, 산지사방으로 갈라진 가지들, 암갈색 가지들의 거치른 피부가 파란 하늘에 박혀 있다. 하얀 속으로 물줄기가 올라가고 있다. 겨우내 한기에 움츠린 마음이 이제 햇빛에 웃고 있다. 발밑에 흙더미 속에 초록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매화는 제 영혼을 이제 저 하늘로 날려보낼 준비를 한다.
분홍은 흰색에 익사하기 직전이다. 향기가 지조를 풍긴다. 꽃망울이 터지면 기품이 나올 것이다. 봄은 매화를 화선지에다 먹을 가지고 그렸다.
매화는 겨우내 분홍빛을 움켜쥐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정적만을 품고 있다. 그리움은 안개로 둘러싸고 있다. 바람은 매화 주위로 어슬렁거리고. 음력 2월이 되자 매화는 기지개를 켰고 분홍과 흰색을 쏟아냈다. 화선지에 먹물로 그림을 그렸다. 꽃이 떨어지는 날은 매화에게 겨울이 있어야 했던 이유를 안다. 허전한 마음을 채워야겠다. 술 한잔이 생각난다.
‘화선지에 먹물로 그림을 그렸다’라는 문장의 앞에도 있으니까 여기서는 생략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수정하고 고쳐쓰면서 하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만들어낸 매화에 대한 글을 「계단을 오르다」에 삽입해야겠다.(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