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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 이야기

29화 상인이 되겠다는 준이

by 작가

29화 상인이 되겠다는 준이


추석날 고향에서 돌아오던 차 안에서 준이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나 상인 될래.”


나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

“상인이라고? 무슨 상인?”

“물건 파는 상인.”

그의 눈빛은 반짝였다.


"뭘 팔건데?"

“응! 산에 가서 밤 주워서 팔고, 고사리도 캐서 팔 거야.”

그 순간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이 아이가 지금 장래희망을

‘자연물 도매상’으로 정한 건가 아니면 ‘산나물 스타트업 CEO’를 꿈꾸는 건가?


“왜 팔려고 하는데?”

그랬더니 준이가 대답했다.

“엄마 약 사야지.”

“엄마, 안 아파.”


남편은 준이가 내가 오래 살길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장난삼아

“준이는 진짜 나를 오래 살릴 것 같아 그리고 자기 죽을 때 나도 순장 시킬 것 같아”

라고 말했지만 준이의 효심에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이 살짝 고였다.

이 꼬마 상인님은 벌써부터 ‘효자 플랜’을 구상 중이다


몇 일 뒤, 준이는 학교 마치고 집으로 와서 작은 가방을 챙겨 나가려 했다.

“준아 어디가?”

상인 시작하러!”

그 말투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순간

‘이 아이가 혹시 진짜 <초딩거상>으로 내일 신문에 나오는 건 아닐까’ 싶었다.


산으로 향하는 그의 뒤태는 아주 프로페셔널했다.

등산화 대신 크록스였다는 점만 빼면.


한참 후 준이는 얼굴은 벌겋게 익고 손에는 밤 몇 개 그리고 고사리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잡초 다발을 쥐고 있었다.

“와~ 많이 땄네! 근데 밤은 다 벌레 먹었어.”

“그래도 괜찮아.”


“그럼 이걸 어디다 팔 건데?”

“음…당근마켓?”

나는 몰래 웃음이 터졌지만 동시에 그 진심에 코끝이 찡했다.


아직 돈의 개념도 완전히 모르면서 ‘효도 하겠다’는 이유로 상인이 되겠다는 그 마음이라니.


웃겨서 용돈으로 1000원을 쥐어주고 밤과 잡초는 내가 샀다.


밤에 잠들기 전 준이는 내 옆에서 말했다.

“엄마, 나 내일도 또 상인 할 거야.”

나는 웃었다.


그날 밤 나는 준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네가 상인이 되면 좋겠다. 돈이 아니라 마음을 거래하는 상인으로.’


그리고 나는 그가 만든 ‘행복 세트’의 첫 번째 손님이 되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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