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충만한 밴쿠버 할머니들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 식구 중 유일하게 움직이길 싫어하는 집순이가 큰 용기를 냈다. 나이 들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면서 운동의 필요성은 늘 느끼고 있었다. 많이 걷는 게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도 아침저녁 강아지 산책시킬 때 말고는 집안에서 사부작 거리기만 한다.
그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실내 운동은 할 수가 없었으니 변명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풀렸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집 근처에서 가볍게 운동할 수 있는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애들 어릴 때에도 학교 보내 놓고 요가나 줌바댄스 같은 클래스들을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등록해서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의 스테미너는 정말 따라갈 수가 없다. 모두가 평온한 얼굴로 여유 있게 하는데 나 혼자 얼굴 벌게지고 숨이 차서 헉헉거린다. 따라 하는 것이 벅차기도 하고, 별 재미도 없으니 매번 처음 몇 번 나가고는 이런저런 핑계로 끝까지 한 적이 없다.
강도가 좀 높아 보이는 건 모두 패스. 괜히 욕심부렸다가 또 포기할게 뻔하니 이번엔 좀 쉽게 오래 할 수 있는 만만한 수업을 고를 작정이었다. 일단 너무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은 주부에게 바쁜 시간이고 낮에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여기는 대부분 젊은 여자들도 일을 하니, 좀 재미있어 보이는 것은 죄다 저녁 6시 이후다. 요가 같은 것은 오전 시간에도 꽤 있는데, 이건 재미가 없다. 수업료도 너무 비싸면 계속 하기가 부담스럽다.
이런저런 나만의 검색 조건으로 열심히 찾은 결과,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는 댄스 클래스가 딱 걸렸다. 수업 이름은 "Dance & Stretch". 발레에서부터 재즈, 살사 등등 이런저런 댄스 스텝을 스트레칭과 함께 한다고 적혀있다. 초보자도 모두 환영이라고. 수업료도 아주 착하다. 시간도 점심시간으로 딱 좋다. 일주일에 두 번, 이것도 맘에 든다. 온라인으로 등록을 하고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앗!! 모두 할머니다. 내 나이 52, 아마도 여기서 내가 제일 어린 듯.
좀 당황했으나,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감출 수 있었다. 주위를 천천히 살피며 재킷을 벗고 자리를 잡는데 귀여운 할머니 한분이 다가와서 먼저 인사를 하신다. 너무 반갑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 거의 다 엄청 오래 했기 때문에 동작을 거의 다 외운다고. 처음이라도 쉬우니까 잘 따라 할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주신다. 시간이 좀 지나니 나보다 어린 몇 명이 더 들어오긴 했다.
수업 시작 전에 선생님이 틀어놓은 음악에 할머니들이 자유롭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주 익숙해 보였다. 그래도 내 에너지 레벨이 여기서는 아주 바닥은 아니겠다 싶어서 안심이 되었다.
갱년기 후유증이라고 우기는 내 뱃살 때문에 딱 붙는 레깅스 입는 것이 좀 민망스러웠는데, 여기서 보니 내가 제일 날씬하다. 자신감 뿜 뿜!! 스트레칭으로 시작돼서 발레 동작으로 넘어가고, 그다음은 재즈 댄스, 뮤지컬에 나올법한 댄스 스텝도 있었고 아무튼 아주 다양한 동작을 음악에 맞춰서 따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재미있었다.
할머니들은 모두 고수였다. 웬만한 스텝은 꼬이지도 않고 척척 해낸다. 그 모습이 그다지 예쁘거나 완벽하진 않더라도 나름 리듬을 타면서 스스로 즐기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어떤 할머니는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있고, 어떤 할머니는 발목에 테이핑을 한 상태이다. 그래도 마음껏 몸을 흔들고 한바탕 땀을 쏟아내는 것을 보니 그동안 아무 운동도 안 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전거도 못 타는 운동신경으로 댄스를 한다고 들어왔으니 처음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하지만 춤을 잘 추지 못해도 왠지 편안하고, 제대로 된 운동복이나 신발을 갖추지 않아도 눈치 안 보이는 편안함이 있다. 뱃살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할머니들과 함께 하니 스테미너가 나랑 딱 맞는다. 마무리 스트레칭 들어가기 전에 숨이 조금 차고 땀이 조금 나는 정도. 이 정도면 나도 계속할 수 있겠다 싶다.
첫 수업이 끝나고 나니 모든 할머니들의 관심이 나에게로 쏠렸다. 내가 오랜만에 보는 신입 회원인 듯하다.
나에게 옛날에 댄서였냐고 물어본다. 선이 너무 예쁘고, 동작이 예쁘고 점프도 잘한다고. ㅎㅎㅎ 이거 실화임? 물론 리듬체조 선수를 낳고 기른 엄마이긴 하지만 나 자신은 댄스와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런 나를 이렇게 추켜 세워주다니. 역시 할머니들이 인생 경험이 많고 사람 다룰 줄 안다. 괜히 으쓱하면서 내 안에 댄스 DNA 가 있는데 그동안 꺼내 쓰질 않았나 하는 착각을 하면서 체육관을 나왔다.
집으로 오는 내내 괜히 웃음이 났다. 이번엔 선택을 아주 잘한 것 같다. 일주일에 두 번 이렇게 할머니들과 즐겁게 운동을 하면 몸도 마음도 활기차게 될 것 같다. 갱년기가 슬슬 끝나가는 걸까.
내 나이 아직 오십 대 초반인데 뭐. 내 인생은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