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거철(螳螂拒轍)이에요. 상대는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한명회입니다
유자광의 집에 군기정(軍器正) 이숙감이 방문했다. 군기정은 정 3품으로 병기의 제조를 관장한 관청인 군기시(軍器寺)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다. 이숙감은 유자광이 세조에게 칭찬한 덕분으로 절충장군으로 승진한 이숙기의 동생이었다. 유자광은 이숙감을 맞으며 물었다.
“대간들이 상당군을 탄핵하는 일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
이숙감이 마루에 걸터앉으며 대답하였다.
“상당군이 의정부의 사인(舍人)들에게, 어린 노산군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다는 말까지는 해서는 안 되는데, 대왕대비의 결심을 되돌리려고 실언을 했다고 하면서 황공스러워 처벌을 기다릴 뿐이라고 하였답니다.”
의정부 사인(舍人)은 정 4품의 관직으로 중요 국사에 왕명을 받아 삼정승의 의견을 취합하고 이를 국왕에게 아뢰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숙감은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이는 대간이 이를 거론하지 못하도록, 상당군이 의정부 사인(舍人)으로 하여금 대간에게 미리 말하여 방비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자광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주상을 감히 죽은 노산군과 비교하다니? 어떻게 성인이 다 된 주상을 어린 노산군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세조께서는 말이 불경(不敬)하다고 하여 양정(楊汀)의 목을 베고, 정승인 정인지와 정창손을 귀양 보냈네. 이 사람들의 불경죄가 한명회보다는 심하지 않았어!”
양정은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죽인 계유정난 당시 관여한 공로로 정난공신이 되었고, 북방에서 오래 근무한 일로 위로연을 베푼 자리에서 세조에게 왕위를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진언하였다가 처형되었다. 정인지는 경회루 잔치에서 술에 취해 세조를 ‘그대’라고 칭하고 노산군을 임금의 극존칭인 ‘태상(太上)’이라 불렀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해 부여로 귀양을 갔고, 정창손은 세자에게 왕위를 양위할 것을 세조에게 말했다가 파직당하고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숙감이 유자광의 말에 동조했다.
“조정이 속으로는 다 분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명회가 오랫동안 권세를 잡으면서 조정의 도처에 한명회의 세력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두려워서 입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자광이 분을 내며 말했다.
“대간들은 그치지 않고 아뢰어 기필코 주상에게서 한명회의 죄를 묻겠다는 윤허를 받아내고 말아야 할 일인데, 왜 힘을 다하여 말하지 않는가?”
이숙감이 답했다.
“한명회의 말을 괘씸하고 분하게 여겨 말하려는 대간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한명회는 임금의 장인이며, 소중히 여기는 신하이므로 비록 말해도 주상이 처벌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훗날 한명회로부터 화(禍)만 입을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말하는 흉내만 내다가 그치거나, 아예 처음부터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자광은 성을 벌컥 내며 말했다.
“이번 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야. 대간이 되어 가슴에 품은 생각을 임금께 그대로 아뢰지 않는다면, 신하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대간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나라도 나서서 말해야 하겠다.”
이숙감은 유자광의 말에 당황하여 말렸다.
“안됩니다! 이거야말로 당랑거철(螳螂拒轍)이에요. 상대는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상당군입니다. 주상은 물론 대왕대비도 의지하는 원상 중에서도 우두머리 원상입니다.”
당랑거철은 사마귀(螳螂)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멈추려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능력 모르고 강적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유자광은 이숙감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맹자가 말하기를 드높은 위세의 높고 높음을 아예 보지 말라고 하였다.”
“무리입니다! 주상과 대왕대비는 절대로 한명회를 내치지 않아요. 오히려 한명회를 벌주자고 한 대감에게 죄를 물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대감의 말을 듣고 주상이 한명회를 내친다 하더라도, 대감은 무사할 것 같습니까? 서로 싸우다가 양쪽 모두 상처를 입게 되는 양패 구상(兩敗俱傷)이 되는 것입니다.”
이숙감은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유자광이 일을 저질러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불안하였다. 유자광의 집을 떠나면서 대간도 아니면서 한명회를 공격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거듭하여 경고하였다.
유자광은 이숙감을 보내고 가슴이 답답하고 솟구치는 분한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대간이 제대로 구실을 못한다면,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라도 한명회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유자광은 아랫배에 숨을 가득 집어넣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대간이 아니다. 일단 대간이 주상의 윤허를 얻어낼 때까지 그치지 않고 말을 하는지 조금 더 지켜 볼일이다.”
대간들이 문제를 삼는 듯이 보이더니 어느 순간 멈추고 한 달이 지나도록 대간들은 물론 조정의 어느 신하로부터도 한명회 탄핵의 이야기가 없었다. 더구나 한명회가 걱정하며 오금을 저리는 노산군 이야기는 어느 대간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유자광은 방을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말하는 간관들이 없다니...... 과연, 의정부 사인(舍人)들이 한명회의 뜻을 받들어 대간들의 입을 막았는가? 대간이 나서지 않는다면 조정의 신하들은 다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유자광은 혀를 찼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장(長)들이 모두 원상의 아들이라 눈치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한명회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좌천을 당할까 걱정하는 소인배들만 있는 것인가?”
유자광은 함길도 관찰사를 마치고 돌아온 김관의 집을 찾았다. 이시애가 난을 일으켰을 때 김관은 구성군 이준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여 유자광과 가까운 사이였다. 유자광이 김관의 집 앞에 도착하였는데 막 집으로 돌아오는 그와 마주쳤다. 김관이 유자광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였다.
“무령군이 어쩐 일이십니까?”
“함길도 소식이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상당군 집에 복귀인사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유자광이 물었다.
“상당군 집의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그 집은 늘 찾아오는 사람과 말과 수레가 저잣거리와 같이 북적거리지 않습니까. 갔더니 술도 내주어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조판서 이극배도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시며 국경의 여진족 동향과 함길도의 사정을 전해주었다는 것이었다.
“탄핵하는 대간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터인데, 상당군의 표정은 어떠하더이까?”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고, 술을 마시며 말하고 웃기를 평소와 다름이 없이 하더이다.”
유자광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탄핵을 당하고 있으면 문을 닫아 손님 맞는 것을 사양하고,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고 근신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
유자광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이라도 나서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숙감의 말대로 대간도 아니면서 정승을 상대로 벌을 주라고 하면, 한명회를 벌주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자신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내 한 몸의 안위만 생각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유자광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한명회의 죄를 보고서도 말하지 않는다면, 신하가 되어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 할 말을 다하지 않은 죄에서 어찌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주상도 한명회의 오만함을 불쾌하게 여기셨다. 친정 시대를 맞은 주상 전하도 한명회의 권세에 부담을 느끼시는 것이다.’
(일러스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