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의 입구에 들어서자 가이드는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2m 정도 되는 사각기둥 모양의 커다란 유리 상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 속에는 배구공 크기의 둥근 것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온통 해골이었다. 불교 사원을 건축하기 위해 땅을 파다가 발견된 캄보디아인의 시신이라고 한다.
캄보디아인의 시신
상자의 모퉁이 기둥에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사원을 건축할 때 금일봉을 희사한 사람의 명단이다. 이 중에는 한국 사람의 한글 이름도 있었다.
가이드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폴 포트(본명 살로트 사르)가 이끄는 좌익 무장단체 크메르루주(Khmer Rouge: 붉은 크메르)의 대학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노동자 농민의 이상주의 사회를 만든다는 미명 하에 의사 교사 변호사 등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의 학살을 감행했다. 심지어 안경을 낀 사람, 손이 하얀 사람 등은 지식인이라고 하여 무차별 학살했다. 정권을 장악한 폴 포트는 무려 200만 명에 이르는 캄보디아인을 처형했다.
당시의 캄보디아 인구를 800만 명으로 치면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죽임을 당한 셈이다. 참으로 무자비한 정권이었다.
이런 비참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몸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이들 국민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다만 무자비한 폴 포트가 다스린 그 나라에서 태어난 것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몰상식하고 무자비한 정권, 폴 포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도 캄보디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둔다
잘못된 가치관을 지닌 국가 지도자는 필연적으로 백성에게 피해를 입힌다. 그 심각성을 깨닫게 하는 사례가 성경에 있다. 인류의 구원자,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종용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다.
[마 27: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빌라도는 명절을 맞이하여 단행할 사면의 대상자로 ‘바라바’와 ‘예수’를 선택하라고 한다. 무책임한 지도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누구를 선택했는가?
[마 27: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죄 없는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하고, 강도 ‘바라바를 달라.’ 고, 부추겼다. 이들이야말로 자신의 안위나 영광만을 추구하는 ‘기득권 계층’이다.
그들은 한 동안 권력의 달콤한 꿀맛을 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는 너무나 컸다. 그것을 이스라엘의 역사가 말해준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었고 2천 년 동안이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유리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무려 600만이나 되는 유태인이 핍박을 받은 바 있다. 이게 바로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후손에게 주어진 죄의 대가이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속담이 있다. 선을 심으면 그 후손은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그 후손은 악을 거둔다. 캄보디아를 보라. 심은 대로 거둔다는 그 말 두렵지 아니 한가?
희망을 갖자
국가 지도자는 물론 자치단체의 지도자를 선출할 때, 가치관이 올바른 자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할 때 국가의 번영이 보장된다. 어리석은 백성들의 행복한 가정을 지킬 수 있다.
어떤 분은 폴 포트 정권의 ‘투어 슬렝 형무소’에 잡혀간 200만 명 중에서 6명은 살아남았다고 하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 정권이었는지 형무소에서 요구한 10가지 수칙 중 한 가지만 소개한다.
7. 내 명령 없이는 앉지 마라. 서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지시사항이 없으면 침묵을 지켜라. 지시가 떨어지면 즉시 시행하라.’
어떤 분이 비참한 캄보디아 백성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칙을 안 지키면 죽는다. 물론 수칙을 지킨다고 해서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다. 순순히 지키다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살아날 희망을 버리지 마라. 너희가 인간임을 입증할 유일한 증거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살아날 수 있다고 믿어라. 분명한 것은 2백만 명 중에서 6명이나 살아났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살아날 확률이 0.0003%인데 ‘희망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우리도 희망을 갖자. 국가 지도자이건 자치단체의 지도자이건, 가치관이 건전한 지도자가 선택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