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무의미함에 의미 부여하기

by 소풍보름

#1. 아버지의 직무

아버지는 젊은 시절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셨다. 회사에서 하찮은 일을 시켜서다. 어머니는 두고두고 그때 이야기를 하신다. 안정적인 직장 때려치우고 가족들 고생시켰다고 말이다.

아버지 나이 40대 중반, 지금의 내 나이 무렵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회사 옥상 물탱크를 손보다가 온몸에 물을 뒤집어쓴 채 돌아오셨다. 중소기업의 임원이셨던 아버지는 회사 옥상에 있는 물탱크를 수리하다가 온몸에 물을 뒤집어쓴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임원이라는 사람이 그걸 나서서 하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며, 그날도 어머니는 어김없이 한마디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월이 흐르며 직무에 대한 태도가 변했다. 하찮은 일이 싫다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 궂은일을 찾아서 하시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속을 끓이신다.


#2. 나의 직무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원래 성격인지, 나는 직무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일종의 직무 잡식성이다. 분명히 입사할 때는 직무가 정해져 있었는데, 지금은 회사의 ‘다산 콜센터’다. 동료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이거,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묻는 건데요”이다. 그래서 나는 “직무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좀 난처하다. “그냥 이것저것 해요”라고 말하는데, 그러다 보니 일에서 자존감을 찾기가 쉽지 않다.


#3. 직무의 품격

나이가 들면 일에서 품위를 찾을 줄 알았다. 잡무는 후배 직원들에게 시키고, 나는 좀 더 중요하고 품위 있는 일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10년 넘게 연차가 쌓여도 ‘아래 직원’은 여전히 내가 맡고 있고, 하찮은 일을 모두 내 몫이다. 어릴 때 오락실에서 보글보글 끝판을 깼더니, 다시 첫판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허무함이 든다. 직무에 대한 불만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셨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렇게 품위 없고 하찮은 일이 싫다. 역시, 공부 열심히 해서 전문직이 됐어야 해.


#4. 한 대학교 수위의 직무 이야기

얼마 전,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다가 본 에피소드다. 한 대학에 나이 들고 초라한 수위가 있었다. 그는 학교의 가로등이 고장 나면 직접 고치고 잔디가 자라면 직접 깎는다. 학교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도 한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학생들이 안심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직무를 넓게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수위라는 직무에서 해방시켰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존경받는 사회의 어른이 된 것이다.


#5. 무의미함에 의미 부여하기

아버지가 물벼락을 맞고 오시던 날이 생각난 건,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다. 직무에 전문성이 없어서, 그리고 가족들 부양하느라 어쩔 수 없이 저런 일도 하셨나 보다던 생각에 작은 변화가 일었다.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겠구나. 스스로의 일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그렇게 힘들게 의미 부여를 하고 계셨구나 싶었다.

오늘 아침, 평소처럼 이른 출근을 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어제 어떤 임원으로부터 부탁받은 '천정 곰팡이 제거'를 했다. 오늘 내가 한 일을, 분명히 나는 집에서 자랑스레 말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직무가 뭐 대수인가? 나는 '직원들이 건강하고 쾌적하게 일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의미 있고 중요한 직무를 맡고 있다. 시지프가 무의미한 돌 굴리기에 ‘버티기’라는 의미를 부여했듯, 나도 하찮아 보이는 내 직무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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