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자세
내 마음속엔 두더지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수요일 저녁쯤 되면 녀석은 천천히 자신의 굴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비록 녀석의 눈은 매우 작아 살 속에 묻혀있지만 녀석은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이용해 주변을 예리하게 살핀다. 좌우로 움직이는 길고 뾰족한 주둥이 속에는 날카로운 이빨 42개가 숨겨져 있다. 10cm 정도의 작은 몸집과 부드러운 갈색 털은 자칫 녀석을 친근하게 보이게 만든다. 주로 땅에 터널을 파고 생활하는 녀석이 불쑥 고개를 내밀 때는 이유가 있다. 바로 내 마음이 불안하다는 신호이다.
불안이 두더지 같이 고개를 내밀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섣불리 맨손으로 잡으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날카로운 42개의 이빨을 기억하는가?) 불안이라는 감정은 여러 겹의 복합적인 사건들 (혹은 기억 그리고 그 안에 감정들)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내가 겪어온 일들, 그리고 현재 내가 처한 상황 모두 불안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불안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명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평소보다 더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는가? (실수를 저지르거나 인간관계에서 마찰이 있었는가?)
마음에 걸리는 사건 혹은 기억이 떠오르는가? (그 사건과 기억들을 유발한 계기가 있었는가?)
충분한 수면과 수분을 취했는가? 밥을 잘 챙겨 먹었는가?
생각해보니 오늘은 예기치 못한 기계 고장으로 인해 반나절 동안 제대로 환자를 보지 못하였다. 스케줄을 조정하고 수리공을 불러 기계를 고쳐야 했다. 또 하필이면 오늘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아 오후에는 행그리(hangry: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고 예민해지는 상태) 모드였다.
나는 명상을 통해 내 하루를 되짚어보며 내가 평상시보다 스트레스를 받은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또 내가 원하고 계획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음에 속상했음도 인정했다. 지금 내게는 기계의 고장을 탓하고 밥을 제대로 안 챙겨 먹은 스스로를 탓하는 비난의 대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비난을 하게 되면 그 순간은 마음이 편해도 결국 그 순간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비난도 질책도 아닌 객관적인 시선과 솔직함이었다. 나는 지금 업무나 숙제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러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다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솔직하게 나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래야만 내 안의 불안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안에는 오늘 있었던 일들 외에도 어떠한 사물이나 사람 혹은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갑자기 떠올랐던 과거의 기억들과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의 계획들에 대한 불안들도 있었다. 누구나 있을법한, 그래서 갖고 있는 게 자연스러운 불안. 수요일 저녁쯤 되면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불안.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불안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지닌 두더지에게 필요한 것은 아로마 테라피와 음악이 아닐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유칼립투스 스피어민트 향초를 켜고 또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사운드트랙을 들었다. (오늘은 한스 지머의 영화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의 삽입곡들을 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에 집중을 하는 것이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집중하다가 하던 일을 까먹으면 안 되니 적당히 몰입해야 한다.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감사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이다. 감사한 생각들을 하나 둘 하다 보면 어느새 불안의 존재는 작아져있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다행히 마지막에 기계가 고쳐져서 내일은 걱정 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기계가 고장 나서 어렵고 힘든 부분들이 있었지만 팀원들과 함께 힘을 합쳐 문제를 잘 해결했다.
저녁을 잘 챙겨 먹었다. 물도 충분히 마셨다. 잘 먹고 잘 쉬니 몸도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다음번에는 행그리 모드가 되기 전에 잘 챙겨 먹어야겠다.
불안이 두더지 같이 고개를 내밀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경우에는 명상을 통해 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솔직하게 바라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감사한 생각들을 떠올리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불안을 아예 없앨 수는 없겠지만 불안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또 선택할 수 있으며 선택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두더지가 마음을 정신없이 헤집고 다닐 것이다!) 나의 수요일 밤 두더지 이야기를 통해 각자 자신만의 비법을 찾아 불안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
좋은 영감을 준 두더지에게 고마움을 담아.
(두더지에 대한 정보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