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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Mar 12. 2024

소나무와 자전거

어여쁜 노을의 고운 주황빛 치마가

바다처럼 깊고 넓게 펼쳐진 하늘을 감쌀 때쯤

바닷가 절벽 위의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때마침 바다내음이 가득 실린 바닷바람이

거칠게 불어와 머리카락을 휘날렸지만

소나무들은 하늘의 별들처럼 굳건히 서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말없이 용맹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모진 비바람을 견뎌냈기에

그토록 위엄하고 고귀한 자태를 갖게 되었을까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바람에 휩쓸려

쓰러지고 무너지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나로서는

그 소나무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소나무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너희처럼 살아갈 수 있느냐 말이죠.

그러자 둘 중에 더 큰 소나무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혹시 네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웠을 때가 떠오르니? 너는 처음에는 넘어질까 봐 무서워서 꼭 누군가 뒤에서 네 자전거를 붙잡아 주어야만 탈 수 있었지. "절대 놓으면 안 돼~~~ 진짜 놓으면 안 돼~~~"라고 큰 목소리로 연신 소리치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앞 뒤로 고개를 바삐 돌려가며 뒷사람을 확인했지.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 자전거를 탔던 그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순간이 찾아왔어. 비록 너는 그 뒤로 셀 수도 없이 넘어지고 피부가 까였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전거를 탔었지.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내내 너의 작은 얼굴엔 큼지막한 미소가 걸려있었고 해맑은 웃음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지. 발그레진 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차게 페달을 밟던 그 어느 별보다 환히 빛나던 너의 눈동자를 떠올려보렴. 가슴과 심장이 고동치며 마치 하늘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때 그 설렘도 함께 말이야.


마음을 연다는 것은 마치 그런 느낌이란다. 처음에는 너무도 두렵고 막막해 보여 도저히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일로 느껴지겠지만 네가 만약 단 한 번이라도 그 두려움을 온몸으로 껴안은 체 스스로를 믿고 도약한다면 너는 곧 깨닫게 될 것이야. 닫혀있던 문 뒤로는 하늘 끝까지도 날아갈 수 있을 듯한 무한한 자유와 새로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치 네가 자전거를 혼자 타게 된 뒤로는 자전거 타는 법을 몰랐을 때로 돌아갈 수 없듯이 네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너는 마음의 문이 닫혀있었을 때로 돌아갈 수도 없을뿐더러 돌아가고 싶지도 않게 될 거야. 왜냐하면 너는 한번 네 온몸을 번개처럼 꿰뚫고 지나간 즐거움, 기쁨, 그리고 행복을 잊을 수가 없을 테니까. 진정한 자유는 네가 원치 않는 것을 놓아줌에서 오는 것이듯 너는 네 안의 스스로 만든 모든 한계와 두려움을 탁 놓아주어야만 비로소 자유가 될 수 있단다.


나도 처음에는 결코 너와 다르지 않았었어. 사정없이 나를 항해 내리치는 비바람이 밉고 원망스러웠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났었지. 그래서 매일 분노로 하루를 시작하고 분노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내 삶을 절망으로 대했지.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내 신세를 한탄하며 그날따라 유난히 모진 바람과 사투를 벌이던 중 우연히 저만치 떨어진 곳에 서있던 소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왔어.





나보다 훨씬 작은 그 소나무는 필사적으로 한치의 자비도 없는 거센 바닷바람에 홀로 맞서고 있었지. 가늘고 여린 나뭇가지들과 이파리들은 쉼 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심지어 군데군데 부러지고 상처 난 부분들도 보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나무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날마다 하늘을 향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어. 순간 나는 스스로가 조금, 아니 실은 많이 부끄럽게 느껴졌어. 나 혼자만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생각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미처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어.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니 나보다 작은 저 소나무도 저렇게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어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나는 내게 주어진 새 하루를 분노와 원망, 그리고 절망 속에서 보내왔음을 알아차렸어. 비록 그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 순간부로 나는 변하고자 마음먹었어. 변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나를 사로잡았고 어떻게든 그 작은 소나무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어. 마치 그 소나무가 내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물해 주었듯이 말이야.


그날부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를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시작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어. 비록 칼날같이 시린 바람이 태풍처럼 몰아쳐도 그 속에서 나의 중심을 잡는 법을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지. 내 팔과 같은 나뭇가지들이 부러지고 소중한 이파리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껴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김없이 떠오르고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달랬어. 또 내 주위에 나와 함께 매서운 비바람을 견뎌내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었지.


너에게 보이는 나의 위엄하고 고귀한 자태는 그 무수한 하루들이 모이고 쌓여서 빚어진 것이란다. 내가 그 많은 날들을 되돌아보며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스스로와 화해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란 것이지.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동안 쌓였던 네 안의 분노와 두려움, 불안과 절망, 아픔과 상처 모두를 놓아주고 지금의 너 자신이 양팔을 벌려 어리고 나약했던 네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 단순하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하기 제일 어려운 그 일을 매일 천천히 해나가는 일이 바로 스스로와 화해하고 나아가 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비록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긴 시행착오를 거쳐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지만 너는 나보다 더 빨리 이 사실을 깨닫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길 마음 깊이 간절히 바란다."


큰 형님 소나무는 말을 마치고 작은 아우 소나무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습니다.

그러자 작은 아우 소나무도 기다렸다는 듯이

멋진 자태를 뽐내며 힘차게 미소 지었습니다.

우애 좋은 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창고에 넣어두었던

옛날 자전거를 꺼내 만져보고 싶어 졌습니다.

마치 지니의 요술 램프처럼 그 자전거를 문지르면

내 소원이 이루어져 내가 내 스스로를 용서하고

그동안 내가 내 마음속에 만들어놓았던 한계들을

하나 둘 지워나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하늘에는 마치 우리들의 만남을 축복하듯

산마루에 걸린 아름다운 노을이 반갑게 인사했고

새들은 그 위로 미끄러지듯 춤을 추었습니다.

그 힘찬 날갯짓들을 보자 나도 덩달아 신이 나

혼자 어깨춤을 추어보았습니다.

비록 오늘 나의 춤은 많이 어색하고 어설펐지만

내일은 분명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자전거가 기다리고 있는

나의 집을 향해 기쁘게 걸어가 보았답니다.



설악산을 품은 속초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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