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초반, 독립한 지 어엿 십 년
그러나 매번 부모님 댁에 돌아갈 때면
새 학기를 맞이하는 아이 같은
설렘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익숙한 집 밖을 나선다
익숙한 거리들을 지나며 조금씩 줄어드는 거리
거리가 줄어들수록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먼 꿈 속에서 깨어나듯 하나 둘 깨어나
신비로이 반짝이는 은하수 되어
어느새 깜깜해진 밤하늘을 환히 밝힌다
밤하늘이 아름답게 수놓아질 즘에
발걸음은 익숙한 현관문 앞에 멈춘다
그 정든 문을 열기 전
나는 깊이 숨을 들이 마신 뒤
아이처럼 두 눈을 꼭 감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이 문이 열리면 내 마음의 문도 함께 열린다
나는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맞이할 수 있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은
포기하지 않고 내 마음을 돌보는 일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고요히 유지하는 일
이 문을 들어서는 나는 어릴 적 내가 아닌
생각할 힘이 있고 감정을 놓아줄 수 있으며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관대할 줄 알며
대화를 통해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어엿한 한 어른임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문을 다시 나설 때 나는 바라본다.
내 마음 우물 속 깊은 곳에 오랫동안 자리했던
시린 슬픈 눈물들과 소리 없던 서글픈 울음
나약했던 어린 나를 향했던 차가운 분노와 절망
그리고 삶에 대한 끝없는 갈구와 물음들
그 우물을 길어 올리고 길어 올려
흐르는 눈물은 고운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울음은 마음껏 쏟아져 나오도록 등을 두들겨 주고
차가운 분노와 절망은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듬뿍 받을 수 있도록 양지바른 곳에 뉘어주어
삶을 향한 나의 마음과 믿음이
미움과 괴로움으로 얼룩진 투쟁이 아닌
그 어떤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곧바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사랑의 춤을 출 수 있기를
익숙하고 정든 문 손잡이를 당기며
강력한 주문 속에서 태어난 한 마리 거대한 용이
힘센 날갯짓으로 하늘 높이 승천하여
하얀 구름들위에 사뿐히 앉아 내려다보는 듯
위대한 용기와 의지가 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다
서른 초반, 독립한 지 어엿 십 년
익숙하고 정든 고향을 방문하는 감회가 새롭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아이 같은
설렘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나는 익숙한 집 문을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