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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May 26. 2022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이야기

8." 뛰는 게 뭐야? "

2014.06.25


아주 오랜만에 벼르던 여름밤 러닝을 하였다. 러닝은 여름밤이 최고다.

항상 내가 이 동네에서 편안하게 러닝 하는 장소는 와우산 공원이다. 이 공원은 옛 와우아파트가 있던 자리로, 알려진 대로 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지는 참사가 있었던 곳이다. 모르고서 올라 보면 그저 아담하고 편안한 공원이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 운동을 하면서 보낸 세월도 꽤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공원은 운동기구도 많이 낡고 인조잔디가 깔려 있던 공터나 러닝 트랙이 모두 망가져 있었다. 내가 잘 찾지 않은 그동안 갑자기 낡아져 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곳을 많이 찾고 있었다. 이곳의 배드민턴장은 실내인지라 꽤 운동하기가 좋아서 언제나 밤늦게까지도 조명을 환히 밝히고 사람이 북적인다. 예전에 한 때 유료화가 되기도 해서 내 주변만 해도 원성이 자자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얼마 안가 다시 무료 개방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배드민턴도 참 재미있었는데. 딱히 구기종목을 잘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고3 때 체육 종목으로 일 년 내내 배드민턴을 쳐서 그나마 가장 할 줄 아는 공놀이이다.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배드민턴 실력은 정말 놀랍다. 그들의 스윙에서는 내가 따라 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소리가 나온다. 그들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배드민턴 채에서 효과음이 나오는 것 같다. 샥. 샥. 너는 왜 소리를 못 내니... 넋 놓고 보고 있자면 애꿎은 장비 탓을 하게 된다.


흥. 구기종목보다 훨씬 관심 있는 쪽은 어릴 때부터 몸으로 하는, 거의 오직 몸으로 하는 운동이다. 걷기, 달리기, 등산과 클라이밍. 수영은 하고픈데 아직 못 배웠다. 모두 다 좋아해서 2년 전 까지는 활발히 하던 운동들인데. 지금은 거의 못하는 듯 안 하고 있다. 이제 만날 걷는 거리도 고될 때가 있으니.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폭발시키지는 못하지만 가끔 운동할 때의 그 개운함과 상쾌함이 그리워져서 가벼운 등산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곤 했는데, 오랜만에 또 운동이 하고 싶어서 올라 보았다. 상큼한 풀냄새를 맡으며 공원을 찾아가는 길이 오르막이라 저절로 워밍업이 되고, 도착해서 맨손 스트레칭을 한다. 스트레칭은 반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하면서 근육을 천천히 늘려주어야 한다. 몸이 많이 굳어있었다. 아팠다. 몸이 좀 정돈이 되면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와우산 공원의 트랙은 작은 편이다. 뱅글뱅글 도는 것보다 더 신나는 뜀박질을 하고 싶다면 좀 더 달려 한강으로 향하면 되지만, 예전에 한강을 뛰어보고 나서 더 공원을 찾았던 것 같다. 공원이 러닝에 집중하기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러닝에 집중할 것이라니. 대부분 운동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묻는다. 뭐하러 뛰고, 뭐하러 산을 오르냐고. 사람이 자신을 잠시 놓기 위해 대표적으로 찾는 것이 술, 담배, 마약 그리고 사랑이라 말하는 섹스와 폭식도 추가되는데 여기에 좀 재수 없게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운동이란다. 건전하니 재수가 없다. ‘뭐하러’는 술, 담배, 마약, 섹스, 폭식에도 해당되는 물음이고 운동도 술, 담배, 마약, 섹스, 폭식과 대답이 통한다. 뭐 요즘 운동중독인 사람도 많다. 대부분 생각하는 건강과 다이어트 목적 외 러닝 자체에 집중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나의 달리기 경험으로 말해보겠다.

양팔은 아주 편안하게 손은 계란을 쥔 듯 명치께 가까이하고 뛰면서 천천히 리듬을 갖고 호흡을 규칙적으로 들이쉬고 내쉰다. 살짝 빨리 하면서도 호흡의 규칙을 지키도록 한다. 호흡만 지키면 숨이 차지 않고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다. 한 20분쯤이 지나면 온몸에 숨소리와 땅의 울림만 가득 울리게 된다. 점점 더 갈수록 다리의 움직임도 관성이 붙어 내가 움직이는 것인지 발이 알아서 가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고 그때가 되면 숨 쉬고 움직일 뿐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마치 내가 하나의 기관이 된 것 같다. 신비체험이 아니다. 술 마셨을 때도 비슷하지 않은가. 음주 러닝은 더 기가 막히다. 에너지도 엄청나고 뭔가 내가 이대로 지구를 돌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정말로 생긴다. 그렇게 대학 3학년 때 로퍼를 신고 난 정말 지구를 돌아 우주로 갈 뻔했다.

달리기의 이런 경험은 규칙적이고 빠른 반복 때문인 것 같다. 반복은 어떤 에너지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드는 것 같다. 눈덩이가 굴러 빠르게 커지듯이. 그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는 또 거대한 고요가 있다. 달리기는 이 고요에 집중하는 과정인 것 같다.

거대한 고요에 집중하는... 거대한 고요에 집중하는 다람쥐인 건가?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를 생각하니 작은 트랙을 돌고 도는 나도 다르지 않다.  


뭔가 좀 웃겨졌다. 이상 여름밤 러닝 간증을 마치도록 하겠다.      

[출처] 8.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얘기 - " 뛰는 게 뭐야? "|작성자 onlyweek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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