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서 NoBreathing은 호흡을 참고 헤엄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때때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극한의 상황까지 고통을 참아가곤 한다.
결코 잘난 것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운이 좋게도 대학교수, 모델, 수영코치 등의 다양한 직업과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덕분에 언론은 나를 소개할 때, '프로 N잡러'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어디에 나가 자기소개를 할 때면, 늘 "수영 선수 임다연"이라고 짧게 말한다.
수영이 없었다면 지금의 임다연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영은 나에게 도전과 끈기를 가르쳐 준 내 인생의 교과서였고, 내세울 것 하나 없었던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이다.
하지만, 나와 수영의 첫 만남은 유쾌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어릴 적부터 악성빈혈이 있었던 나는 빈혈약을 달고 살았다. 햇빛만 봐도 쓰러지고, 눈 밑은 맨날 핏기 하나 없이 허옇곤 했다. 그래서 의사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부모님께 실내운동을 시키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7살 내 생일, 나는 생애 처음으로 수영장 물에 몸을 담갔다. 그 때 살던 동네인 도봉동에 있는 실내수영장이었는데, 아빠는 마치 생일선물인냥 나를 수영장을 데려갔다. 하지만, 락스 냄새가 진동하는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차가운 락스물이 내 발과 다리에 닿는 느낌이 너무 싫고 무서웠다. '물 공포증'이었다.
강습이 시작된 뒤에도 나는 수영복을 입은 채 수영장 밖에서 한 시간 내내 울기만 했다. 강습이 끝나갈 무렵, 보다 못한 강사님께서 나를 안고 물에 들어가셨다. 나는 울며불며 필사적으로 발버둥쳤고, 끝내 얼굴을 물속에 담그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이후,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수영장에 끌려가야만 했고, 2주가 지나서야 가까스로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물속은 캄캄한 암흑이었고, 그 어둠은 나에게 더 큰 공포심으로 다가왔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깜깜한 물속에서 앞으로 나가란 거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똑바로 앞으로 나가는 거야?'
그때 나는 물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물안경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수영장에 처음 입수한 그 날부터 물안경을 썼지만, 나는 그저 눈을 질끈 감은 채 수영, 아니 헤엄을 쳤을 뿐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물안경이 있으니까 눈을 뜨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탓에 내가 물안경을 쓰는 이유, 즉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눈을 뜨고 앞을 봐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건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이후 내가 물속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펼쳐진 풍경은 마치 예쁜 벽돌집 같았다. 어린 내 눈에는 수영장 바닥에 깔려있는 타일들이 예쁜 벽돌집의 벽돌처럼 보였고, 나는 그렇게 조금씩 물과 수영장에 대한 공포심을 지워갈 수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니 수영도 곧 잘 했다. 오히려 또래 친구들 보다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덕분에 선수반 입단 제안도 받았고, 그 때 다니던 실내수영장 선수반에 입단할 수 있었다.
내가 선수반에서 제일 힘들어 했던 건, 매일 스타트를 하며 하루에도 몇 번 씩 기록을 재는 것이었다. 문제의 그날도 어김없이 스타트 50M기록을 재는데, 첫 번째 50M에서 코치님이 원하는 기록이 안 나왔다. 다시 했다. 두 번째도 안 나왔다. 또 다시 했다. 세 번째... 네 번째... 정확히 여덟 번째, 나는 기절을 했다.
단기간, 빠르게 수영을 배운 탓일까?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숨을 쉬는 자유형 호흡법이 익숙치 않은데, 기록을 내기 위해 빨리빨리만 수영을 해야 하니 원호흡이 아니면 호흡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계속 원 호흡으로 빠른 수영을 했는데, 코치님이 내 기록이 계속해서 좋지않자, 호흡을 참으라고 다그치셨다.
무서운 마음에 결국 나는 호흡을 참았고, 25미터 지점까지 한 번도 숨을 쉬지 않았다. 그리고 퀵턴을 했다. 하지만 퀵턴을 하면 숨을 쉴 수 없다.
턴을 한 후 중간지점에서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때 나는 기절을 해서 물속에 가라앉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선수반 아이가 기절을 했을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해서 아무도 나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너무 늦지 않을 때 옆 레인에서 입수를 해서 강습하고 있던 수영강사가 나를 구했다. 그리고는 나를 수영장 바닥에 눕혀 응급처치를 하고, 나는 그대로 119에 실려갔다. 그 뒤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내 수영 인생은 짧고 굵게 끝이 났을까?
웬걸, 일곱살 외동딸이 기절한 날 이후, 아빠는 딸을 수영장에 데려가는 것에 더욱 더 적극적이 되셨다. 이대로 수영장을 안가면 평생 물 공포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나...
그렇게 나는 다음 날 바로 선수반 훈련시간에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고, 집중연습 덕분에 호흡을 누구보다 빠르게 잘, 양쪽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모든 것이 서투르고, 또 기절할 만큼 못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조금씩 나아지고, 언젠가는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수영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