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어시스턴트 (3) 이천만 원

by 노동자a

“엄마, 이천만 원 있다면서요?”


영은 미옥과의 전화를 황급히 끝내고 즉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물었다.

그때 미용실 현관이 열리고 달래가 들어왔다. 영이 수화기를 든 채 달래에게 물었다.


“달래야, 급하게 필요한 돈이 얼마랬지?”

“에휴, 이천만 원이라도 있으면 아파트 보증금이랑 합쳐서 가게는 유지할 수 있을 텐데요.”


달래가 탁자에 삼단 찬합을 내려놓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는데, 영이 신나게 말했다.


“야야, 우리 살았다! 살았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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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 들어선 춘자는 가방도 벗지 않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영은 화장대 서랍을 뒤져 커피믹스 두 개를 찾아내서는 종이컵에 붓고 정수기에서 온수를 담아 춘자에게 내밀었다. 커피는 미지근했고 미처 녹지 못한 커피 알갱이들이 둥둥 떠 있었다.

영이 춘자를 쪽방으로 안내했다. 이불, 옷더미, 운동화 상자가 꽉 들어차 음침하고 비좁은 공간은 흡사 벽에 뚫린 굴 같았다.


“밥은 여기서 해 먹냐? 밥솥이 안 보이는데.”


춘자가 방바닥을 더듬으며 물었다. 바닥이 냉골이었다.


“난 사장 부부하고 가족이나 다름없어. 부부가 나를 그렇게 아껴요. 안사람이 매번 내 도시락을 싸 온다니까.”


춘자가 엉덩이를 방구석으로 밀어 넣어 자리를 마련했지만, 영까지 들어오기엔 무리였다. 영이 문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엄마, 돈 가져오셨지?”


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시던 춘자는 느린 동작으로 누비 점퍼 안주머니에서 검은 봉지를 꺼냈다. 영이 잽싸게 봉지를 낚아채 풀어헤치자 파란 돈뭉치가 나왔다. 히죽대며 돈을 세던 영의 얼굴이 점점 차갑게 굳었다.


“뭐야, 삼백만 원뿐이 안 되는데? 이천만 원 가져오랬잖아. 미옥 언니가 엄마한테 이천만 원 있는 거 봤다고 했다니까?”

“글씨,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남한테 홀랑 내준단 말이냐.”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거라니까. 주인집은 나랑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화로 다 말했잖아!”

“가족 같은 소리 한다. 니 사는 꼴을 봐라. 누가 가족한테 이런 방에서 먹고 자라고 하겠냐. 개집도 아니고.”

“그러니까 엄마가 돈을 가져와야지. 미용실만 정상궤도에 오르면 난 주인집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다니까!”

“그자들이 너를 저들 아파트로 데려간다든?”


갑자기 대답을 못 하고 눈을 피하는 영.

어릴 때와 꼭 같은 딸의 모습이 춘자는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얘, 여그서 이럴 게 아니라 집으로 내려가자. 내년엔 니 오빠한테 철물점이라도 내줄라니까, 니가 오빠를 도와서......”

“오빠를 또 도우라고?”

“니 오빠가 몸이 성치 않으니께, 니가 도와야지.”


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난 뭐 평생 오빠만 도와? 나도 꿈이 있어. 여기 있으면 미용 어시스턴트가 될 수 있다니까!”

“철딱서니야, 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꿈 타령이냐.”

“나이? 그러는 오빠한텐 무슨 대단한 꿈이 남았다고 나한테 도와주래, 또!”


영이 악을 쓰며 발을 굴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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