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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Apr 30. 2024

비는 내리고

아들, 그리고 남편의 자리

초저녁부터 내린 비는 어둠과 함께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켰다.

한잔 술에 세상이 어지러워질 무렵

나는 밤의 깊숙한 심연 속으로 빠져 든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아들이라는

그  현실떠올리는 데는 반 병의 와인, 맥주 한 깡통, 소주 반 병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사촌 조카의 결혼식날 나는 두 딸과 함께 하객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고  아내는 산악인으로 지리산 자락 산청에서 백두대간 출정식을 했었다.


어머니는 눈치가 구단이다.

모두가 축복해야 할 결혼식에 아내가 없었다는 사실에 불같이 화를  내며 내게 못난 놈이라 하셨다.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아내에게 전화를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이혼하는 꼴 보기 싫으면 전화하지 말라며 어머니에게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 후로 어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아들,  아내의 남편이다.

오, 주여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었나요?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오.


이 꼬인 인연의 사슬은 내가 풀 재간이 없다.

나는 그냥 나일뿐.

 어머니도 아내도 내 삶의 방관자가 아니었으니

나는 또 강술을 마셔야 하는가?


내리는 비에 묵은 감정도 서운한 아쉬움도 씻어 버리고 허허 웃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툴툴 털고 예전처럼 알콩달콩

정이 넘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다시

돌아오기를.


어느새 빗소리는 어둠 속에 묻혀

마알간 달빛이 금방이라도 고개를

내밀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 주기를.

 

그래도 비 그친  이 밤에 나는 잠들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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