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현 Jun 18. 2021

#1 : 나무목과 브이

48살 아빠와 7살 딸, 캠핑으로 나누는 다른 듯 같은 꿈 이야기 1

[#1 : 나무목과 브이]


  "써니~ 나무 목!" 나는 외친다.

  

  하지만 써니는 시크한 표정으로 브이(V)를 그릴뿐.

  역시 결과물은 어색하다.


  최근에 시작한 한자 공부로 써니는 '나무 목'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써니는 나와 마흔한 살 차이 나는 사랑스러운 일곱 살 딸의 애칭이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소통을 시도한다. 써니는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그것을 표현한다. 마흔한 살 차이를 극복하는 일은 항상 도전이다.

나는 "나무목"을 외쳤다. 하지만 써니는 '브이'를 그릴뿐.

  나는 공무원이다. 담당 업무는 대변인(중소벤처기업부 홍보담당관 겸 언론 담당 대변인). 하루 종일 대답을 한다. 질문 쟁이들 기자들에게 둘러 쌓여. 즉답을 해야 한다. 모르는 내용은 확인하고 대답한다. 최대한 빠르게.

  하루 종일 질문을 받고 퇴근하지만, 질문 공세는 이어진다. 이번엔 마흔 한 살 차이 일곱 살 딸의 질문들. 더 어렵다.  

  결혼 후 10여 년의 난임. 우리 부부는 힘든 과정을 거쳤고 천둥처럼 써니가 찾아왔다. 임신 사실을 알린 아내는 게 물었다.

  "태명은 어떻게 지을까?"

  "글쎄~~ "

  내 고민의 시작이었다. 너무도 기다렸던 아이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지해야 했고, 생각해야 했다.

 

 "천둥, 바람, 소나기, 보름달, 태양~~"

  

머릿속은 온통 초자연적인 현상들의 단어들만 떠올랐다.

   

  아내의 임신 소식을 간직하고 출근하던 길. 겨울 햇살은 유난히 반짝였다. 뒷목덜미에 닿는 햇살은 보드라웠다. (당시는 느껴보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그 느낌을 떠올린다면) 가슴에 안긴 아가의 손이 뒷목을 움켜쥐려는 느낌. 하늘을 올려봤다. 태양이 나를 졸졸 따라왔다. 그 길에서 나는 태명을 결정했다.

  "태양이 라고 하자. 딸이면 써니"


  나에게 와 준 아이를 어떻게 관계 맺을지 고민했다. 지금도 그 고민은 진행형이다. 질문에 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은 딸과의 관계 맺음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나름 소통왕으로 직업적 인정을 받아왔던 나였지만 딸과의 소통은 너무도 힘들다. 딱 이런 느낌이랄까. 김창완 님의 '너의 의미' 가사 중 "도대체 넌 누구냐?"

  캠핑은 나의 근본적인 이 질문에 서서히 답을 내어 주었다. 아니 정확히 설명하자면 '답'이 아니라 '방법'을 일깨워 주었다. 가늘지만 실처럼 이어지는 여러 가닥 소통의 끈. 나는 캠핑을 통해 써니와 소통의 실타래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금쪽같은 써니와 아내가 함께한 그간의 여행은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능수능란하게 우리 가족에게 닥친 여행 중 여러 변수들을 해결했다. 예측 가능한 리조트 주방에서 요리솜씨도 발휘했다. 하지만 캠핑은 달랐다. 기본적인 것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환경에서 경험 많은 아빠의 능숙함과 요리솜씨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캠핑은 우연히 찾아왔다. 아무런 준비 없이 모든 장비를 대여해 떠났던 2019년 6월28일 첫 캠핑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을 스스로 준비해야했다.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은 함께 지혜를 모으게 했다.

  

  나는 항상 써니를 마주하고 바라봤다.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숟가락질은 잘 하는지, 무엇을 그리는지, 엄마 핸드폰으로 무엇을 보는지... 그리고 나는 소통을 시도했다. "시크릿쥬쥬가 뭐라고 해?" "맛있어?" "그 사람은 누구야?" "언제까지 볼거야?"... 하지만 써니의 대답은 단순 명료했고,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캠핑의 불편함은 나와 써니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아빠~ 오줌 마려운데 같이 가자"

  "오케이~ 아빠도 조금 참고 있었는데 같이 가자. 아빠가 불 밝혀줄게"

  "여보~ 나도 같이 가자"


  캠핑의 불편함은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기 보다는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게 했다.


  마흔한 살 차이 초보 캠퍼의 소통은 이렇게 시작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