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통한 삶의 균형 잡기

논어를 선택한 이유

by 이도영

성균관대학교 신정근 교수님께서 <인문학 명강>이란 책에 논어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논어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설명해주시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려주셨어요. “논어는 가속 없는 인생의 무료함, 감속 없는 인생의 위험함, 이 무료함과 위험함을 줄여주는 가속과 감속의 균형 잡힌 운전을 통해서, 흥미와 즐거움과 안전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준다.”라고 했어요. 이 부분을 읽고 우리 아이들과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저런 결론을 내리셨는지 우리 반 아이들의 대화를 들어보시겠어요?


1-1
공자가 말했다.
“몰랐던 것을 배우고서 때에 따라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의 첫 구절 학이편 1장의 내용은 배우는 것의 기쁨을 이야기해요. 아이들에게 이 구절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물었어요.
한 아이가 대답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학습을 하면 기쁘다는 것이에요.”

이 말을 듣고 제가 다시 물었어요. 학습을 힘들어하는 평소 아이들 모습을 드러내면서 학습이 어떻게 기쁠 수 있는지 반문했어요.

“배우고 익히는 학습이 왜 기쁜가요? 여러분은 목요일 국어, 과학, 사회 수업이 있다고 하면 아침부터 한숨을 내쉬잖아요.”

자신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학습을 하면 좋은 이유를 말합니다.

“학습하면 똑똑해지고 머리가 좋아져요. 더 많은 것을 배워서 아는 게 많아지면 남에게 알려줄 수 있어 기뻐요.”

“새로운 게 몸에 들어오면 기존의 것과 섞여서 내가 아는 것이 더 풍부해져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에 살짝 꼬투리를 잡아봅니다.

“학습을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하는 건가요? 학습하면 왜 기쁠까요?”

“열심히 배워서 성취감을 느껴요.”

“내가 학습해서 똑똑해지고 머리가 좋아지면 예전과 다른 내가 돼요.”

“아, 게임처럼 내가 레벨업 하는 거네요.”

“맞습니다. 배운 것을 사용하고 기존의 경험에 연결하면서 우리는 그것의 참뜻을 알게 됩니다. 참뜻을 깨우치는 순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짜릿한 기쁨을 주지요. 그리고 배움을 통해 예전과는 다른 더 멋진 존재가 되는 거예요.”


예전에 배웠던 논어 구절과 연결하기 위해서 배운 것을 떠올려보도록 질문합니다.

“군자는 정해진 그릇이 아니라고 했지요. 쓰임이 정해지지 않은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했나요?”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어야 쓰임이 정해지지 않은 군자가 될 수 있었어요.”

“어떤 그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학습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와, 이렇게 연결이 되네요!”

논어에서는 소인과 군자를 자주 비교합니다. 다양한 약점을 가진 ‘소인’이 그 약점을 해결해 더욱 나은 존재인 ‘군자’로 나아가는 것을 알려줍니다. 무엇을 통해 현재 조건을 넘어서 발전된 상태,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공자는 학(學), 배움을 통해 현재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논어가 제시하는 길은 구원의 길도, 즐거움의 길도 아니고 바로 ‘배움의 길’입니다.


두 번째 문장을 살펴봤어요.

“배움의 기쁨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친구 이야기를 하네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요?”

한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합니다.

“배움의 기쁨을 이야기했으니 또 다른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친구가 오면 즐겁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두 문장이 맥락 없이 연결되는 것을 말하며 연결 지어 설명해주길 바랐어요.

“배움의 기쁨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친구 이야기를 하니 어색하네요. 이 두 문장을 연결 지어 말해줄 사람 있나요?”

아이들이 곰곰이 생각하지만 조용하기만 합니다. 모두 어려워해서 제가 설명을 해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벗 우(友)가 아니라 벗붕(朋)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붕(朋)은 옥을 꿰어 늘어뜨린 모양을 그린 상형문자예요. 귀한 것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거죠. 그저 그런 친구가 아니에요. 벗 우(友)는 손을 서로 마주 잡은 모양을 본뜬 거예요.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이와 귀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한 아이가 말합니다.

“친구는 그냥 놀려고 온 게 아니라 귀한 것을 나누고자 온 거예요.”

“이 친구는 자기도 학습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웠고 기뻤고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거예요.”

그렇습니다. 이 벗은 단지 정을 나누고 술이나 한잔하려고 굳이 멀리서부터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 벗은 귀한 것, 즉 ‘배우고 익히는 기쁨’을 나누고자 온 것이에요. 무엇인가 배우고 익혀 기쁜 나머지 그것을 들고 찾아온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에 대해 대화를 이어갔어요.

“남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 것도 앞의 두 문장과 연결을 해볼까요?”

“내가 학습을 통해서 레벨업 했잖아요. 레벨업하는 기쁨을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은 거예요.”

하나를 알려주니 열을 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봅니다. 훌륭하지요? 사람은 배우고 익혀 기쁨을 느낍니다. 기쁨의 원천인 배움은 무한해요. 더구나 그 기쁨을 함께할 벗이 먼 곳에서 찾아왔어요. 이렇게 행복하니 더 바랄 것이 없어요. 그러니 세상과 타인의 인정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실질적으로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는 책을 언급했어요.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에서 주인공 조태호가 재판에서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말한 것도 이 부분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 아이가 책에서 주인공이 배웠던 것을 말했어요.

“최 계장을 통해서 무엇이든 해봐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요. 고 과장을 통해 내 유일한 경쟁상대는 어제의 나라는 걸 배웠어요. 김 대리를 통해 우리를 빛나게 해주는 것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진실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배웠어요.”

제가 마저 정리했습니다.

“사람을 만나서 배우는 것도 학습이라고 생각해요. 조태호는 일본 벤치마킹 투어 가이드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예전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존재가 되었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것으로 만족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은 자기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답했던 거예요. 다른 사람의 인정도,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도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사람은 학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다 얻습니다. 자신의 성장과 발달을 확인하는 기쁨. 그 기쁨을 함께할 벗. 나머지는 부록에 불과합니다. 타인의 인정은 없어도 그만이에요. 그래서 학습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남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강한 자아’를 가지게 됩니다. 아도르노는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고 하면서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눈치를 계속 살피는 사람은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주인으로 살아갑니다. 배우고 익히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


20-3
공자가 말했다.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법을 알지 못하면 세상에 나설 수 없으며,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남을 이해하여 알아차릴 수 없다.”


이어서 논어의 맨 마지막 구절을 함께 살펴봤어요. 부지명으로 시작하는 논어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구절이 어떤 말인지,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어요.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운명과 예와 말을 알아야 군자도 되고 세상에 나갈 수 있고 남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미래를 함부로 예상하고 섣불리 행동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에요.”

명(命)이라는 글자가 중요해서 이 말의 뜻을 물었어요.

“운명, 생명, 숙명의 명이예요.”

아이들이 감을 잡지 못해 명(命) 자의 뜻을 이야기해주었어요.

“예를 들어 옥황상제가 ‘너의 수명은 70이다’고 말한다면 70세까지 살 수 있지요. 71세는 허용되지 않아요. 수명은 내가 이 세계에서 살 수 있는 최대치예요. 즉 명(命)이란 자기 최대치, 한계, 자기 자신을 아는 메타인지라고 할 수 있어요.”

명(命)을 알지 못하면 위험한 이유에 대해서 물으니 아이들이 답합니다.

“한계를 알지 못하면 위험해져요. 설악산에 오르는 것이 내 한계인데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려고 하면 나도 위험하고 같이 가는 사람도 위험해요.”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가 떠올라요.”

훌륭합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를 모르면 자신을 괴롭히고 주변 사람을 괴롭힙니다. 한계를 인정하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그래서 명(命)을 모르면 한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군자가 되지 못한다, 자기 삶을 이끌어 갈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읽고 비교해보라고 했어요. 아이들은 어떻게 이야기했을까요?

“학습하면 남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기쁘다는 걸 알았어요. 레벨업하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학습을 열심히 해서 나 자신을 키워야 하지만 동시에 너무 거만해지지 말아야 해요.”

“학습해서 성장하고 자신감이 올라가는 건 좋은데 자기의 한계치를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논어의 맨 처음은 현재의 조건에 안주하지 말고 배움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서는 자기 한계를 알고 겸손하라고 해요. 이제 신정근 교수의 비유가 이해되시나요?


만일 자동차에 제동장치와 브레이크랑 엑셀이 없다면 얼마나 무료하겠습니까. 그러나 가속이 붙어 질주하기 시작하면 브레이크를 밟아서 속도를 늦춰야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논어는 가속 없는 인생의 무료함, 감속 없는 인생의 위험함, 이 무료함과 위험함을 줄여주는 가속과 감속의 균형 잡힌 운전을 통해서, 흥미와 즐거움과 안전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많은 고전 중에서 제가 논어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자녀와 논어를 읽을 때 이 점을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논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으실 겁니다. 논어에 조금 흥미가 생기셨나요? 앞으로 청소년이 논어를 읽으면 좋은 점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문헌

김누리,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해냄, 113쪽

신정근, <인문학 명강>, 21세기북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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