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지구
2021년 여름은 전 세계에 펼쳐진 산불로 기억될 것입니다. 6월 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150여 건 이상 산불이 발생했어요. 이곳 기온은 49.6℃까지 치솟아 캐나다 역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어요. 폭염으로 일주일간 71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폭염이 휩쓸고 지나간 직후 바닷가에는 썩은 내가 진동했어요. 홍합, 조개, 말미잘 등 10억 마리 이상의 해안 동물이 모두 삶아져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폭염에 갑자기 죽은 것처럼 바닷가 동물들도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삶아졌습니다.
7월 9일 미국 서부 데스밸리의 기온이 섭씨 54.4도를 기록했습니다. 1913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이었어요. 이날, 비공식으로 기록된 온도는 섭씨 56도였는데요. 뉴욕타임스는 이 기록이 아마 지구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일 수 있다고 밝혔어요.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있는 이 지역은 1913년 56.6도의 기온이 관측된 적이 있지만, 2016년 연구에서 기상학적 관점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록적인 폭염이 강타한 미국 서부 전역에는 대형 산불이 80여 군데나 일어났어요. 그 규모는 약 120만 에이커(약 4856㎢)에 달해 서울 면적(605.2㎢)의 8배가 불탔습니다.
7월 말에는 지중해 일대에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일주일 동안 그리스 전역에 154건의 산불이 발생했어요. 아테네 북부 에비아섬 등에서 주민 2000여 명이 산불을 피해 섬을 빠져나왔고, 주민 대피를 위해 쉴 새 없이 선박이 투입됐습니다. 터키에서도 6일 동안 32개 주에서 152건의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섭씨 43.5도의 고온에 10%의 낮은 습도, 시속 65㎞의 바람이 겹쳐 불이 더 커졌어요.
더 큰 문제는 시베리아가 불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베리아 산불 면적(18만 1000㎢)은 미국(2만 3250㎢), 캐나다(약 3만 3600㎢), 터키(1763㎢), 그리스(1098㎢), 이탈리아(1043㎢) 산불 면적을 모두 합친 것보다 3배나 많습니다. 북위 50도~60도 침엽수림이 가득 들어찬 타이가 지대에 형성된 산불의 연기는 역사상 처음으로 3200㎞ 이상 떨어진 북극까지 날아갔어요. 타이가 숲이 타들어 가면서 영구동토층도 녹고 있습니다. 영구동토층은 몇 천 년에서 몇 억 년까지 죽은 나무와 나뭇잎 등 유기물이 켜켜이 쌓여 함께 얼어붙은 토양이에요. 산불로 이 토양이 녹게 되면 그 안에 대량으로 매집된 탄소가 대기 중으로 나오게 됩니다.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이곳에 쌓인 탄소는 현재 대기의 탄소량보다 최소 2배에서 많게는 4배에 달해요. 이곳의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 대기의 탄소 농도가 증가할 것이고 대기 온도는 더 높아질 겁니다. 그러면 또다시 더 많은 양의 메탄과 탄소가 배출되는 ‘양의 되먹임’이 일어나 기후 위기가 증폭될 것입니다. 150년 만의 가뭄, 역대 기록을 갈아치운 폭염, 북극권에 예외적인 번개 속출.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 도시들의 상공은 연기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눈을 뜰 수 없었어요. 비상사태가 선포됐습니다.
2020년에 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했지요. “언젠가 우리는 2020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1년 만에 사태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불타는 지구를 이대로 방치하게 된다면 우리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눈치챌 사이도 없이 삶아지는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불타는 청소년
불타는 것은 지구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 발생률 1위라는 불명예 기록을 갖고 있어요.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4.6명으로 OECD 평균(11.0명)의 2배가 넘어요. 2019년 한 해에만 1만 3799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사망했습니다. 하루 평균 38명, 시간당 1.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9년 연속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자살입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 청소년 통계’를 보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청소년은 10만 명당 9.9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2위 안전사고(4.1), 3위 암(2.6)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예요.
청소년이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는 건수도 해가 갈수록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 동안 자해와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은 총 3만 4,552명이었고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을 비교해보니 하루 평균 13.5명에서 26.9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어요. 이 기간 청소년 자살 건수는 총 3,748명으로, 하루 평균 2.6명에 달합니다.
청소년기는 아동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전환기입니다. 신체적, 심리적으로 발달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예요. 여러 발달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신체적으로는 몸의 구조가 급격히 발달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현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심리적으로는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형성해야 해요. 자신의 꿈과 미래를 그리며 진로와 직업을 탐색하고 삶의 가치관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거는 부모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어요. 게다가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또한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성취해야 할 과업이 많은 데 비해 인지적으로 미성숙하면서 충동성도 강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자살을 ‘자기로부터의 도피’라고 했어요. 청소년들이‘자기와 관련된 고통스러운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청소년들을 자기로부터 도피하도록 만들까요? 불타는 지구와 청소년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의식의 비만
프랑스 사회학자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했어요. 내가 바랐던 욕망이 사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욕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자본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지식은 기술을 계속 확대해서 우리 마음에 소유에 대한 욕망을 증폭시킵니다. 많은 것을 갖고 싶고 누리고 싶어 져요. 돈을 잘 벌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요. 좋은 집에 살고, 비싼 외제차를 타고 싶어요. 화폐, 자본, 소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지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의 척도가 됩니다. 삶을 잘 산다는 기준이 오직 내가 가진 돈의 양으로만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화폐의 양을 늘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돈에 집착하고 모든 욕망을 그곳에 투영합니다. 나의 진짜 욕망이 아니라 자본, 자본가들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돈과 권력만을 좇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정기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의보감> 내경편에 나오는 개념이에요. 생명과 욕망, 신체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입니다. ‘정(精)’은 질료예요. 질료가 있어야 우리는 그것으로 무언가 만들어요. 정은 신장에서 만들어집니다. 우리 몸에 있는 액체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 정이예요. 사람을 만들고, 문명을 건설하고, 이 세상 모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정이라는 질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기(氣)’는 엔진이에요. 질료를 움직이게 하는 힘과 에너지가 기예요. 기를 주관하는 장기는 폐입니다. 폐는 호흡을 통해 질료를 순환시켜줍니다. ‘신(神)’은 방향을 의미해요. 질료와 에너지를 어떤 곳을 향해 사용할 것인지 정합니다. 방향은 심장이 주관해요. 우리는 신을 사용하지 않아요. 내 삶의 방향을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돈의 양을 늘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어요. 심장을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
욕망이 방향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저팔계가 됩니다. <서유기>의 저팔계는 식욕과 성욕을 무한 증식합니다. 앉은자리에서 어떤 음식이든 순식간에 흡입해요. 이성을 보면 예쁘든 그렇지 않든, 나이가 어리든 많든, 이상형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침을 흘립니다. 대상이 누군지 상관없어요. 식욕과 성욕을 그저 분출만 합니다. 욕망이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우리의 욕망 자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인데, 욕망이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맹목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기의 질료와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쓸지 고민하지 않은 채 돈과 권력만을 좇고 있어요. 자신이 누군지 모른 채, 이런 욕망을 채우는 것은 내 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불을 지르는 것이에요. 마치 집어등을 좇아 그물에 걸리는 오징어처럼 말입니다.
내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로 돈과 권력만을 좇게 되면 돈을 아무리 벌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돈을 벌면 벌수록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달려갑니다. 멈출 수 없습니다. 계속 목이 마르고 끝이 없습니다. 이렇게 가는 여정을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하며 온갖 좋은 가치를 덧붙입니다. 나의 자아는 한없이 비대해져요. 왜 사는지 물으면 굉장히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청년들이 취직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내가 잘 산다는 건 키 크고 잘 생기면서 학벌이 좋고 돈도 많이 벌면서 뭔가 거창한 목표가 있어야 해’ 이런 게 꿈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비슷하게 살아줘야 잘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꿈과 자기 현실 사이가 너무나 아득하게 멀어서 스스로 추락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의식의 비만’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본주의 패러다임 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았어요. 굉장한 수준의 물질적 부에 이르고 나니 각 개인들이 너무 많은 책임과 자의식을 짊어지게 되었어요. 소외는 존재와 삶 사이에 괴리로부터 시작됩니다. 비대해진 자아와 현실 속 자신과의 거리가 멀다 보면 스스로 허무해져요. 자기와의 완벽한 소외가 일어납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사회적 성취는 결과적으로 삶을 질식시키는 거예요. 내가 내 삶에서 소외되면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 어렵지요. 당연히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자기와의 완벽한 소외는 극단의 고립을 초래합니다. 청소년들의 자살도 자의식의 비만에서 비롯됩니다.
욕망과의 거리두기
지구가 불타고 마음이 불타고 있습니다. 화폐, 자본, 소비의 향연이라는 ‘과도한 밀착’과 자기와의 완벽한 소외라는 ‘극단의 고립’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에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거리의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욕망과의 거리두기’입니다. 정기신 중에서 신(神), 바로 심장을 써야 합니다. 욕망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소비와 쾌락에서 휴식과 성찰로, 외적 확장에서 내적 충만으로, 자연의 도구화에서 자연과의 공존으로 나아가야 해요. 욕망이 지성으로, 지성이 지혜로 이어지는 비전을 탐구해야 합니다.* 이 길로 인도하는 스승과 텍스트는 이미 충분해요. 바로 고전입니다. 고전을 통해 존재와 세계를 탐구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문헌
고미숙, <인생 특강>, 북튜브, 84~85쪽
고미숙, <인생 특강>, 북튜브, 33~34쪽
고미숙, <인생 특강>, 북튜브, 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