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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시키고 몸이 따르는 시간

by 구름마중

작은 아이는 방학기간이라고 매일같이 친구를 만나 PC방에 간다고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볕이 뜨거워서 한낮은 피했으면 좋으련만 참 말도 안 듣는다. 그날은 8월의 끝자락 한가로운 낮시간이다. 낯선 전화번호가 온 집안을 울린다. 스팸 신고 전화도 아니고 특이한 번호가 아닌 '010'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다.


"여보세요?"

"00이 엄만가요!"

"네. 그런대요!"


작은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더다 전화 준 어르신의 아내가 운전하는 차와 부딪혔고 애가 많이 놀랜 것 같다는 전화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창밖을 내다보며 한낮의 한가로움이 얄미운 만큼 걱정의 시간이었다. 어르신의 전화를 끊고 작은 아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그 짧은 순간동안 '왜 안 받아!' 하며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다. 온 신경은 머리에 집중되어 옆에 풍선이라도 닿으면 '빵'하고 터 질 것 같은 감각상태였다.


"여보세요"

울먹이는 작은 아이는 괜찮다며 지금 있는 곳 위치를 알려 주었다. 서둘러 신랑과 그곳으로 갔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평소 작은 아이가 자주 가는 PC방 근처 승강장이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저 앞에 작은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한번 안심했고 잘 서있는 모습에 두 번 안도했다. 비상등을 켜고 승장장에 정차했다. 작은 아이를 살폈다. 작은 아이는 엄마 아빠를 보자마자 눈물이 글썽거렸다. 또한 걱정할 마음,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친 곳에 대한 아픔등 여러 감정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쓰러웠지만 나는 침착하게 아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 물으며 몸을 살폈다. 팔꿈치와 무릎정도에 작은 상처들이 보였다. 그제야 주변에 접촉사고를 낸 어르신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했다. 순간 '애를 이렇게 두고 그냥 갔나!' 하는 불편한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작은 아이 상태와 작은 아이가 괜찮다고 하면서 엄마인 내 전화번호를 건네고 PC방을 가려고 이동하려고 승강장까지 왔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혹 밤새 어디가 어떻게 아플지 모른다는 생각에 작은 아이의 온몸 구석구석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접촉 사고 현장을 확인하러 갔다. 가는 동안 아이는 멀쩡하게 자전거를 탔다. 사고 현장에 도착해서 그때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자동차는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왔는지, 자전거를 탄 작은 아이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어떤 상황으로 부딪혔고 넘어지면서 어디가 다쳤는지 등의 모습까지 재현했다. 마치 사고현장을 수사하는 경찰관 같았다. 옆에서 신랑은 고개만 끄덕이며 '둘 다 부주의했네'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다행이다라고 상황완료를 하니 그제야 머리에 솟아났던 가시들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또한 병원진료까지는 아니라는 신랑말에 괜찮다는 확신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통의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00이 접촉사고차량 주인입니다. 00 이가 많이 놀랬을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사진 찍어보세요. 병원 가자고 하니까 00 이가 놀래서 그런지 괜찮다고 안 간다고 하여 어머님께 전화드렸습니다. 죄송하고.. 병원 다녀오시고 전화 주세요"


접촉사고 한 시간이 지난 후 아이의 상태를 말씀드리고 괜찮다고 답장을 드렸다. 그리고 또 한통의 문자가 왔다.


"네. 00이 꼭 병원지료하고 저희 가게 함께 오세요. 00 통닭 맛있게 해 드릴게요. 내일 하고 모레는(월, 화) 휴무입니다. 00 이가 제 손주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다음에 뵙지요"


나는 '손주'라는 말에 꽤 나이가 있으시고 이렇게까지 문자를 드리고 죄송하다는 말에 오히려 크게 염려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답장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00 이는 병원 다녀왔는지요? 00 이가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멍자극이 몇 군에 올라오긴 했지만 괜찮고 아이가 잘 먹고 잘 자서 병원 진료는 하지 않았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답장을 했다. 이미 어르신의 마음이 진심이었고 그래서 그날의 멍자극 와 상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여름 방학 개학을 한 작은 아이도 나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9월의 첫날이다. 또 한통의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부네요. 00 이도 개학을 해서 학교에 잘 다니고 있겠지요. 좀 더 일찍 안부 드렸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00 이가 통닭을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간식으로 보내게 주소 좀 보내주세요. 꼭" 어르신의 문자가 왔다.


이렇게 신경 쓰기 어려울 텐데 잊지 않고 연락 준 어르신께 감사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걱정할 어르신을 위해 작은 아이를 데리고 통닭집에 간다고 다짐은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여러 날이 되어 6개월이 지났다.


집에서 멀지도 않은 곳이고 평소 치킨을 좋아해서 잘도 시켜 먹는 우리지만 마음먹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핑계를 대자면 끝도 없다. 결론은 마음이 시키고 몸이 따라야 한다. 다음에 가자, 다음에! 하며 어르신의 걱정할 마음과 '어르신도 바쁘시겠지' 하는 내 생각에 어르신이 걱정할 마음을 잊고 채 말이다.


2월의 샛별이 반짝이는 초저녁 작은 아이와 새 학기 운동화를 사러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 00 통닭집 앞을 지나치게 됐다. 그때다. 마음이 시키고 몸이 따르는 시간!


"아들 우리 늦었지만 00 통닭 할아버지 한번 뵙고 가자" 사실 작은 아이의 대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생각했고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차는 이미 마트 앞이다. 작은 아이는 썩 내키지는 않듯 "가야 해?" 대답이었지만 살짝 미소 짓는 표정으로 보아 내가 잘만 얘기하면 잘 따를 것 같았다. 미소가 없다면 정말 싫은 것이고 미소와 몇 번을 더 묻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사가 있다는 작은 아이만의 표현이다. 워낙 표현이 서툴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라 또 잘 따라와 주기도 하는 아이여서 "딱 10초만 인사드리고 오자"라고 부담되지 않을 제안을 했다. "그럼 엄마 음료수 사 올 동안 차에서 생각해 봐" 싫다는 대답을 듣기 전 나는 급히 마트로 들어갔다.


'뭘 사가면 잘 드실까?' 마트를 두 바퀴를 돌다 결국 평소 시가에 갈 때 자주 사가는 콩음료를 들었다. 묵직한 콩음료가 그동안의 작은 아이를 기다릴 어르신의 마음 같았다. 차에서 기다렸던 작은 아이는 역시나 대답을 확실히 하지 않고 계속 웃으며 머뭇거리듯 장난을 친다. 마음이 없지는 않고 용기가 부족한 듯 결국 "가보자. 뭐 이런 게 다 사람 사는 세상이야!"라고 작은 아이에게 알아들을지 말지 한 이야기를 던지고는 망설임 없이 씩씩하게 걸었다. 뒤 따르는 작은 아이의 걸음도 가볍다.


저 앞에 치킨집이 보인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살짝 설레기도 했다. 치킨집 문이 열리고 안경을 쓴 주인집 어르신 같은 분이 나와 배웅하는 손님들에게 손인사를 하며 옆에선 나와 눈이 마주치고 뒤 따라 들어가는 작은 아이를 보더니 "어! 00이?" 라며 큰 소리로 반겨주었다.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내 뒤로 작은 아이는 어찌할지 모르는 손동작과 고개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번질 듯 말듯하다.

"아이고 00이구나!" 어르신은 다시 한번 작은 아이 얼굴을 쳐다보고 어루만지며 반겨주었다.

그런 어르신에게 "인사를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00이 건강한 모습 이제야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처음뵈는 어르신이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아주 편안한 미소와 눈빛으로 우리 아니 그 보다 작은 아이를 무척 반겨주었다. 주방에서 닭을 튀기는 아내분도 마스크 사이로 활짝 웃어 보이며 세상 환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내 아이가 큰 환대를 받으니 내 마음 한편에 활짝 꽃이 피는 기분 었다.


어르신은 작은 아이를 안고 또 안고 얼굴을 확인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마침 신랑에게 전화가 왔고 "같이 갔었어야지!" 하며 아쉬워하는 목소리에 사장님은 신랑 술 좋아하냐고 묻는다. 말하면 입이 아팠지만 "네"하며 웃었다.


인사만 하고 오자는 우리는 어르신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의자에 앉아 가게를 둘러보았다. 작은 아이는 앉지 않고 입가에 미소만 머금도 서성거렸다.

담근 주 세상이었다. 치킨냄새와 담근 주! 신랑이 오면 정말 좋아하겠다 생각했다. 잠시 뒤 사장님은 어느새 튀겼는지 온기가 가득한 치킨 봉지와 여러 개 담긴 담근 주 봉지를 건네주었다.

"이거 가서 신랑 주고 00이 좋아할지 모르는 치킨이야, 빨간 거 매워"하며 설명해 주었다. '아니라고' 사양은 했지만 이내 내 양손에는 치킨과 담근 주 봉지가 들려 있었다. 다시 작은 아이를 안아주시는 사장님이었다. 따뜻했다. 시가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작은 아이를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어르신이 보냈던 문자 중 '손주'라는 단어가 떠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또 늦어서 죄송했다.


"다음엔 신랑이랑 한번 더 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치킨집을 나왔다. 그리고 50미터를 걷고 뒤 따르던 작은아이는 "엄마 할아버지가 내 호주머니에 뭘 넣 주셨어"하며 꺼낸 것은 노란 지폐 한 장이 반으로 접혀 있었다. "에고에고 어째니, 할아버지께서 너 용돈 주셨나 보다. 우리 너무 받고만 왔네! 다음엔 아빠랑 꼭 와야겠어"하며 더 힘찬 발 건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도착한 문자.


"감사합니다. 00이 건강한 모습 보여주셔서요. 새해 큰 복을 주셨네요.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새해 큰 복을 주셨네요'라는 어르신의 문자에 '참으로 큰 사람을 만나고 왔구나'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는 작은 아이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양손에 치킨을 들고 있는 작은 아이 모습을 찍어 어르신에게 보냈다. 좋은 인연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다는 또 한통의 문자를 받고 정말 이분의 마음은 어디까지 깊고 어디까지 넓은지 생각해 보았다. 어르신은 참으로 크고 넓으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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