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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노래방 문 여는 날

by 구름마중

작은 아이가 표현한 '집에서 사는 삼촌'이 집을 나갔다. 밤마다 화장실을 코인 노래방처럼 사용하다 아빠의 호통에 물소리로 대신 노래를 부르듯 우리 집 수도세에 60% 이상을 소비했던 삼촌 큰아이!


어깨, 다리의 근육을 자랑하며 늦은 밤 동생을 데리고 뒹구르며 작은 아이가 울어야만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친하지 않지만 형을 따라 하는 든든한 작은 아이의 삼촌이자 투덜거리는 엄마의 고충을 객관적으로 들어주던 아이, 아빠의 커피 맛과 술맛을 공유하는 큰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며 18년을 함께 했던 '우리의 공간'에서 큰 아이만의 공간인 기숙사로 독립을 한다.


일주일 전부터 "짐은 챙겼니?"라고 수시로 체크하지만 눈으로 확인되는 짐은 없고 캐리어 가방만 덩그러니 방 한편에 서 있다. 결국 짐은 이사 전날 밤부터 싸기 시작한 큰 아이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나는 큰 아이방을 괜스레 왔다 갔다 하며 참견한다. '수건은 챙겼냐! 비상약은 챙겼어?'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챙겼어"


상황과는 다르게 가방에 담긴 건 많지 않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필요하지 않지만 필요할 수세미, 행주, 대일밴드를 비닐팩에 소분하듯 담아주고 있는 나를 본 신랑은 "그런 건 사서 쓰면 되지" 큰 아이는 이미 짐을 다 챙겼다는듯 가방문을 쩍 벌려놓은 채 유튜브 영상을 본다.


커다란 캐리어가방 한 개와 이불가방 그리고 두 개의 신발상자 끝으로 짐이 단출하다. 잘 챙겼는지 걱정되는 마음이었지만 더 필요한 것은 기숙사 근처에서 사면된다는 신랑말에 현관문을 닫으며 작은 아이는 잠에서 덜 깬 채 고개만 꾸벅인다. 솜이불처럼 따뜻하길 바랐지만 둘의 인사는 나뭇가지처럼 건조했다.


구름과 산이 맞닿았다. 회색빛 구름이 내 기분과 같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큰 아이는 할머니와 통화를 하며 평소와 똑같은 표정과 모습이다. 나는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이다. 마음이 아린 것도 시린 것도 허전한 것도 아닌 표현할 수 없는 헛헛함.


큰 아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휴게소에 잠시 멈췄다. 쉬어가는 동안 평소 차에 넣어 두었던 비상용 디카페인 커피믹스를 찾는다. 최근 한 두 개 남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먹고살 수 있다고 했지! 하나는 있겠지'라고 구시렁거리며 서랍 구석구석을 찾았다. 비상금을 발견하듯 정말 하나 남은 커피믹스를 반갑게 꺼내 신랑에게 컵이 있냐고 물었다. 신랑은 트렁크에 어찌어찌 실리게 된 국그릇 종이컵을 하나를 보여주었다. "오! 좋다" 신랑은 컵을 들고 휴게소 안으로 걸어간다. 점점 멀어져 가는 신랑의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아버지'라는 단어가 스쳤다. 단순히 물을 받으러 가는 행동, 짐을 옮겨 주려고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신랑의 행동은 그 단순함을 넘어 보호자이자 울타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그런 마음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원동력을 또 한 번 끌어올렸다.


봄기운 물씬 나는 이른 아침에 마시는 뜨거운 커피믹스도 일품이다. 30분을 더 달려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기숙사로 가기 전에 순대국밥 집에 도착했다. 신랑은 기숙사에 가기 전 학창 시절 다녔던 순대국밥 집을 꼭 가봐야 한다며 이야기했다. 이른 아침 서둘러 출발한 것도 점심때를 피해서 밥을 먹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기번호를 받고 좁은 식당 안에 들어선다. 30년 전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맛은 그대로라는 신랑말에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순대국밥과 대창순대를 맛보았다. 신랑은 식당안에서의 냄새를 맡고는 '어때 맛있지' 자부하듯 우리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본다. "음. 맛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랑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순대국밥을 한술 뜬다. 신랑의 추억이야기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식당 안에 줄지어 기다리는 손님들을 사이로 "깍두기 좀 더 주세요"하며 맛깔스럽게 먹는 우리들이었다.


학교 근처 마트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서 기숙사에 도착했다. 보호자는 기숙사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다른 보호자들이 건물 안에서 나온다. 나도 큰아이와 함께 짐을 가지고 배정된 동호수로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한기가 느껴졌다. 환기를 시키려고 문을 열어놓았는지 창문이 열려있었다. 창문을 급히 닫고 짐을 옮겼다. 청소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추운 방에 온도처럼 마음이 시렸다. 이런 곳에서 우리 아이가 혼자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보일러를 확인하고 물티슈를 꺼내 들고 방구석구석을 닦고 화장실까지 청소를 했다.

'첫 독립인데 이렇게까지 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씩 따뜻해지는 방의 온기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잘 지내고 주말에 보자!" 인사를 하고 큰 아이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밝게 웃어 준 큰아이 그리고 헛헛함이 섞인 마음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회 첫 독립을 축하한다"라고 문자를 남겼다. 큰 아이의 답장은 언제나 씩씩하다.


집으로 돌아와 큰 아이방을 바라본 느낌은 아침에 본 회색구름처럼 차고 어둡고 우울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다가는 눈물바다가 될 것 같아 서둘러 작은 아이 짐을 큰 아이가 쓰던 방으로 옮겼다. 작은 아이는 삼촌이라고 표현했지만 삼촌방에 들어간 작은아이는 형처럼 행동했다.


며칠 뒤 주말 큰 아이가 집에 왔다. 그리고 화장실 안에서 빅뱅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는 큰 아이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물은 여전히 쏴쏴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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