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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Apr 19. 2024

밥을 함께 먹어야지 식구

월급보다 시간

아버지가 쓰러진 후, 모든 일상은 바뀌었다. 제일 큰 변화는 가게 영업시간이다. 점심영업은 하지 않고 저녁 영업만 하고 있다. 매출이 높았던 점심영업을 하지 못하니 매달 빠듯하다. 애초에 가게를 시작한 이유를 잃어버리니 가게에 나오는 게 힘겹고 지겹고 고통스럽다.


점심영업을 하지 못해 매출은 낮지만 그래도 하나 좋은 건 있다. 아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 났다는 것.


요즘 우리의 생활 패턴은 이렇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글을 쓰고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나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아내는 한 시간 정도 집에서 운동을 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전 열 한시 정도가 되는데 간단히 샤워을 마친 후, 첫 끼를 함께 준비한다. 빵이나 샐러드를 먹기도 하고 무겁지 않은 반찬 몇 가지와 현미밥을 챙겨 먹는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되는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어떻게 아침 7시에 일어나 씻고, 숨이 막힐 것 같은 지옥철을 타고 9시까지 출근을 한 거야?'


물론 직장을 다닐 때보다 통장에 쌓이는 돈은 없고 오히려 조금씩 모아뒀던 돈을 쓰고 있는 요즘이지만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럽다.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어쩌면 인간에게 제일 큰 스트레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늘어난 시간에 대해 감사해하며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2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인생의 1/4을 한 셈이다. 그 정도면 아주 긴 시간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남들도 그러니 모두 그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그 안에 있는 것을 안정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회사에 시간을 내주고 통장에는 매달 같은 날 돈이 들어왔다. 늘 시간이 없었다.


오늘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월급은 없지만 시간이 생겼다.


아내와 나는 연애를 할 때부터 거의 모든 식사를 함께 했다. 사내 결혼이었으니 점심도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내가 회사를 관두고 가게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쉬는 날 한 두끼만 함께 할 뿐, 거의 모든 식사를 함께 하지 못했다. 생활 패턴이 달라지니 일상의 대화가 줄어들었다. 아내는 회사 일로, 나는 가게 일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을 때였다.


회사를 다닐 때와 달리 각자의 일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줄었고 고민을 얘기하는 게 힘들었다. 조금 더 깊게 말하면 나누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집에 들어 오면 아내는 잠 들기 직전이었고 내가 일어나면 아내는 출근을 하고 집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줄었다. 그리고 오해가 늘었다. 아내는 내가, 나는 아내가 서로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를 하기로 선언했다.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아내는 어떻게든 자기 일을 알아서 할 사람이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무책임한 말이었다. 나는 생활비를 넉넉하게 주지 못했다. 가게에 아침 8시에 나가 밤 12시까지 16시간을 꼬박 일해도 남는 게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이 없었고 때때로 영업시간까지도 국가가 강제로 단축시켰다. 월세는 그대로 나가는데 영업시간이 줄어드니 남는 게 없었다.


이유가 어찌됐든 나는 무능력했다.


코로나가 끝나도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1년 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한 달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찾았지만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뱃줄에 의지해 식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와 짧은 대화만 주고 받을 수 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신경쓰이는 일뿐이고 걱정스러운 일뿐이다. 며칠 전 아내가 1년 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새 나는 많이 늙어 있었다. 많은 걱정을 하며 살다보니 얼굴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던 웃음이 사라졌다. 웃고 살려고 노력하는 데 굳어 버린 얼굴이 쉽게 웃어지지 않는다.




함께 할 시간이 늘어난 우리는 대부분의 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천천히 먹고 천천히 얘기한다. 그리고 조금씩 다시 웃고 있다.

자기 용건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엄마 얘기, 요즘 많이 변해버린 친구 얘기,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얘기, 또 그 책의 작가 얘기, 요즘 인기 많은 가요가 알고 보니 속 뜻이 야하다는 얘기, 진상 손님 얘기, 답답하기만 한 나는 솔로 출연자 얘기...


아주 가끔 나가서 사먹기도 하지만 첫끼는 집밥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돈을 아끼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속이 편안하다. ‘집밥이 최고’ 라는 말을 실질적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건 나이를 먹었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 같아 조금 씁쓸할 때도 있다.


지나고 나면 함께 아침을 천천히 차려 먹었던 지금의 시절이 또 그리울 지도 모르겠다. 삶은 자꾸 변한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고 당연히 내일도 다를 것이다.


오늘, 나는 조금 웃어볼까 한다.



요즘 우리의 집밥




+

어제 한 손님이 브런치를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댓글을 다는 것도 쉽지 않는데 그렇게 직접 얘기를 해주시니 고마울 따름. 너무 갑작스러워서 잘 표현은 못한 것 같지만 정말 감사했다.

(보시고 있다면 어제의 칭찬이 저를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게 했다는 거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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