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캠핑가는 날
얼마전 아내가 얘기했다.
-우리도 올해부터는 캠핑 좀 다시 다녀볼까?
가게를 시작한 다음부터는 일주일에 하루 겨우 쉬었기 때문에 캠핑은 당분간 마음 속에서 접어두었다. 하지만 요즘은 오전 장사를 하지 않으니 맘만 먹으면 쉬는날 출발해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오전에 천천히 돌아오면 가능한 스케쥴이긴 했다. 아내에게 큰 의미 없이 '그러자'고 대답해두었다.
지난 토요일, 손님들이 다 나가고 마감 준비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축령산이 생각났다. 이 맘때 즈음의 축령산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자연휴양림 캠핑장이 아직 운영하나 싶어 얼른 검색을 했다. 축령산을 마지막으로 간 건 10년도 넘었다.
다행히, 아니 당연히 축령산 자연휴양림은 여전히 캠핑장을 운영 중이었다. 혹시나 해서 캠핑장 사이트 예약을 해봤다. 축령산은 예전부터 평일에도 예약하기가 어렵기로 유명한 곳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예약시스템의 과정을 하나씩 따라가고 있는데 단계를 넘어가는 게 이상하게 순조로웠다. '이러다 진짜 예약 되는 거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카드 결제 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예약 성공!
옆에서 마지막 손님이 나가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아내에게 얘기했다.
-이번주 특별한 계획 없지? 우리 캠핑 갈래?
핸드폰을 보고 있던 아내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왜? 누가 캠핑 가재?
-아니 우리 둘이. 갑자기 축령산이 생각나서 사이트에 들어가봤더니 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나봐. 예약 해버렸어.
-진짜? 그럼 이번 주에 가는 거야? 너무 좋지.
축령산을 다시 검색해보았다. 10년 전이랑 달라진 점은 크게 없었다. 주차장에서 데크로 조성된 사이트까지 가려면 꽤 거리가 있었고 가파른 오르막을 걸어야했다. 그래서 짐을 많이 가져가면 갈 수록 힘들다. 나는 이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백패킹은 아니지만 짐을 최소한으로 가져가야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 10년 전에도 그 점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백패킹용 배낭을 오랜만에 꺼냈다. 아내에게 축령산 자연휴양림의 시설 상황을 설명하고 짐을 최소화해서 백패킹 모드로 떠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랜만에 진짜 여행하는 것 같겠네.
결혼 전에도 대중 교통을 이용한 백패킹을 자주 다녔던 우리다. 베란다 창고에 쳐 박아 두었던 캠핑 용품들을 다시 꺼냈다. 하두 오랜만이라 먼지가 쌓여 하나 하나 다시 닦아주었다. 짐을 빼는 게 재미있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짐을 하나로 모았다. 가끔 심심할 때 캠핑 장비를 둘러보긴 했어서 요즘 장비에 비하면 낡고 비효율적인 것들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런 장비일 수록 세월이 묻은 것이 더 애착이 간다. 스토브를 꺼내 잘 되는지 체크를 했다. 10년도 넘은 것이지만 여전히 화력이 좋았다.
-새 것을 많이 사는 것보다 헌 것을 잘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한 거야.
캠핑에 빠져 한창 장비를 모으던 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해줬던 얘기다. 나는 그때, 그 말을 의례하는 아버지의 고리타분한 잔소리로 흘려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오래된 자기의 장비를 잘 관리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배낭 두개를 거실에 펼쳐 놓고 각자의 짐을 쌌다. TV를 보다가, 밥을 먹다가, 장비 정리를 하다가 하나씩 짐을 싸니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힘들지 않았다. 모든 게 재미있었다. 마지막 짐을 넣고 가방을 오르려 현관 앞에 두었다. 다음날 떠날 사람들이라는 걸 우리 자신에게 선전포고 하듯.
늘 그렇듯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일어나길 기다리며 아침 일기를 쓰고 있다. 현관에 배낭이 두 개 놓여져 있다. 이게 이렇게 설렐 일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