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설 추천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이 글은 책 추천이면서 또 동시에 나의 퇴사 이야기이자,
지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또래 친구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또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
취업 준비하면서 불면증이 왔다.
겨우 잠들면 쫓기는 꿈을 꿨다.
꿈에서 독일 지하철을 탔는데 발 디딜 틈 없이 승객들이 붐빈다.
앉을 자리를 찾아 옆칸으로 이동하는데 아무리 달려도 내가 앉을 자리는 없다.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데 꿈인데도 숨이 찼다.
편하게 앉아서 가는 사람들이 날 보고 비웃는 것 같다.
한참 달리다 잠에서 깼는데 어찌나 피곤하던지,
면접 준비하러 카페에 가야 되는데 아침부터 하루가 끝난 기분이었다.
여기 떨어지면 뭐 먹고 살지, 언제 취업하고 언제 돈 모으지? 엄마아빠한테 효도는 언제 하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 숨이 막혔다.
엄마아빠는 조급해 하지 말라고, 편의점 알바를 하고 살아도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자랑이 되고 싶었다. 엄마아빠의 자랑이 되는 것. 그게 내 평생의 목표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엄마아빠 어깨를 으쓱 올려주는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다 했다.
좋은 대학을 갔고, 큰 회사에 취업도 했다.
회사 리조트에 모시고 가 임직원 할인으로 비싼 음식도 먹고, 온천도 즐겼다.
명절에는 회사에서 주는 추석 선물, 설 선물로 한 번 더 어깨 뽕을 넣어 드리고,
생신 선물로 이문세 콘서트 티켓도 친구랑 같이 가시라고 두 장 끊었다.
문세 오빠를 보고 온 엄마는 우리 딸, 멋있다를 연발했고,
대기업은 힘들어서 별로라고 하시던 아빠도 내가 붙고 나서는 걱정이 사라진 듯 보였다.
변호사를 준비하는 남자친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연봉이라 생각했다.
미래의 시부모님이 되실 분들도 내가 이 정도 번다고 하면 좋아하시겠지, 하며
이제 부모의 자랑을 넘어 시부모의 자랑까지 되려고 했다.
그런데 모두의 자랑이 되고 나니 내가 없어졌다.
엄마아빠의 자랑이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통장에 돈은 차곡차곡 잘 쌓였지만 죽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에 불이 나는 상상, 회사 셔틀버스가 폭발하는 상상, 엘리베이터가 떨어지는 상상을 하면서 나를 몇 번이나 죽였는지 모른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거구나, 생각했다.
팀원들이 모두 퇴근한 저녁, 혼자서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사님이 지나가시다 나를 보더니 요즘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괜찮다고 대답했는데 그러고 2주 뒤에 사직서를 냈다. 임원실에 불려갔다. 괜찮다더니 무슨 일이냐고.
퇴사한다는 소식을 회사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았고 그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동기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퇴사할 것 같은 사람 투표를 했는데 내가 1위였으니까.
입사 면접도 1등, 퇴사도 1등이었다.
팀에서 내가 맡은 일은 내가 평소 하고 싶었던 일과는 거리가 멀었고,
옆에 사수가 딱 붙어 알려주는 다른 팀 신입동기들과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붙잡고 하나하나 친절히 일을 알려줄 사수는 없었고,
팀 상사는 팀원 셋을 한 번에 퇴사 시키고 징계를 받은 전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있을 새 없이 그 사람 자리로 불려갔다. 그리고 큰 사무실 층 전체가 울릴 정도로 혼났다.
혼나고 자리에 돌아오면 저 멀리 있는 다른 팀 동기한테까지 괜찮냐고 메신저가 와 있었다.
혼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간식 캐비넷 정리를 잘 못해서, 자기 실수를 내가 눈치채지 못 하고 넘어가서,
유관부서에 부탁한 일이 늦어지는데 내가 재촉 전화를 두 번 밖에 안 해서,
물어보면 물어본다고 혼나고, 안 물어보면 안 물어보고 혼자 했다고 혼났다.
혼날까 무서워서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알아서 할 수도 없어서 끙끙 거리며 앉아있다 보면 퇴근시간이었다.
수백 억 짜리 계약이 내 손에 달려 있었다.
계약이 수주가 되면 나는 물건을 생산하도록 공장에 주문을 넣고, 그 동안 해외 지사로 가는 선적을 예약하고,
물건이 다 만들어지면 그 배가 도착하는 시기에 맞춰 공장 출하를 시키고, 외국어로 송장을 작성하고, 배를 태워 외국으로 보낸다.
거의 모든 과정은 전화와 메일로 이뤄지는데, 고객과 공장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사무실에 앉아있는 내 일이었다.
한 쪽에선 빨리 달라고 재촉하고, 다른 한 쪽에선 재촉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그 사이에서 쩔쩔 매고 있으면 나는 또 불려간다. 뭐하고 있냐고, 빨리 끝내라고.
어느 날은 팀장님이 불러서 괜찮냐고 물었다. 자기도 그 사람 때문에 상처 받은 적 많다고.
"많이 빡세냐?" 하시는데 '아닙니다. 할 만 합니다.'를 생각하고 물어보셨겠지만, 나는 그냥 고개 떨구고 울었다.
팀장은 위로랍시고 "그 사람이 너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다. 자기보다 위인 나한테도 그러잖냐. 이사님한테도 그러는 사람이다. 그러니 너무 상처 받지 마라" 하시는데 위로가 아니라 경고로 들렸다.
"팀장님, 그렇다면 저는 더더욱 못 버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신입이고 잘 몰라서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아닌 거잖아요.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흘러도 늘 이래야 된다는 말씀이잖아요."
팀장은 아무 말도 못한다.
그래도 버틸 만큼 버텼다.
힘들어도 대기업 신입사원의 고된 직장 생활?
그거 참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이는 인생이었으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 같으니까.
사직서 내는 이야기는 다음에...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https://m.yes24.com/Goods/Detail/12819394
그리고 이제부터는
최근 읽은 독일 소설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중 일부인데
내가 이런 책을 썼었나? 할 정도로 공감되는 구절이 많아서 가져왔다.
3주째,
상담자가 모두에게 묻는다.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엄격하라고 누가 가르치던가요?"
그 말에 다시 싸한 침묵이 찾아들고 모두 자신의 내면을 뒤적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왜 무조건 완벽해야 합니까?
완벽하지 못해도 충분히 잘하는 겁니다. 완벽하지 못한 나를 사람들이 존중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됩니까?
아니면.... 완벽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요?"
목 안에 걸려 있던 자그마한 응어리가 커져서 목이 터질 듯이 아프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울상이다.
어쩌면 심리치료라는 것은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일이 아닐까? 평소에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동정심을 표출하는 일.
사람이 얼마나 생각 없이 살면 내가 원하지도 않는 삶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정신병원에까지 들어올까?
왜 갑자기 내가 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을까?
나는 예전의 밀라에 더 가까워져야 할 것 같다.
이 의미 없는 게임을 계속해야만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깨달을 때마다 얼마나 몸이 근질근질하고 가슴이 설레었던가!
직장을 그만두는 상상.
이 게임을 계속하라고 강제로 등 떠밀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큰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그만두지 못했다.
직장 없이 독일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사표를 내면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까?
적어도 심리적 측면에서는 지금 내가 처해 있는 것보다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삶이 그렇게 끔찍하면 왜 다르게 살지 않습니까?"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지금 우리가 경제위기 한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나는 일부러 약간 건방진 말투로 대꾸한다.
"제 친구들이 모두 제 직장을 부러워하기 때문에요.
제가 그만 두면 그 자리를 얻고 싶어서 손가락이라도 부러뜨릴 사람이 열 명은 줄을 서 있기 때문에요!"
닥터 헤닝스는 차분하게 내 눈을 응시한다.
"남들이야 열 명이 줄을 서든 백 명이 줄을 서든 중요하지 않아요. 빈터 양 자신이 그 자리를 원합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어쨌든 직장을 잃고 싶진 않아요."
"초콜릿을 먹고 토할 것 같은데 남한테 주기 싫다고 마지막까지 다 먹습니까?"
닥터 헤닝스는 내 반응에 아랑곳없이 하던 말을 계속한다.
"생각을 해봐요. 이제 겨우 스물여덟인데 지금 사는 삶이 못마땅해요.
그럼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인생을 바꿔요.
해보지도 않고 겁에 질려서 엉뚱한 걸로 인생 망치지 말고요."
'그렇게 간단하다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네, 가끔은 그렇게 간단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옳고 그르고 따질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냥 결정을 어떻게 내리느냐의 문제예요. 일단 결정을 내리면 훨씬 좋아질 겁니다."
"수습생활 두 번 하는 동안 꿈이고 뭐고 다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분노는 급격하게 자기연민으로 바뀐다.
"아니면 인사과장한테 잘 보이려고 알랑방귀 뀔 때 그랬나?
제 입장이 이해가 안 되세요? 물론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야 찾아보면 많죠.
하지만 지금 제가 다니는 직장처럼 안정적인 직장은 찾기 쉬운 게 아니에요.
지금 그만두면 다시 그런 직장 찾기 힘들다니까요.
그럼 전 평생 실직자로 살라고요?"
그는 거의 나를 놀리는 듯한 표정이다.
"어이구, 이 아가씨야. 왜 모든 걸 그렇게 심각하게만 생각해요?"
5주째,
"이 불안은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줍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 은 평가를 받고 부모님의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직업적 성공을 통해 부모님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은 틀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라면서 내가 뭔가를 잘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갖게끔 길들여집니다."
옳은 말이다.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버지 마음에 들고 싶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직장여성으로서 성공하면 아버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생긴다고 믿었다.
사실 나는 이 직장에 옛날처럼 다시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정말 진지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 상사에게 전화 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치 어렸을 때 3미터 높이에서 다이빙하기 직전의 느낌이다.
뛰어내릴 거라고 모두에게 말했고 이미 다이빙대에도 올라왔다.
이제 뛰어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왜 그런 무모한 결심을 했는지 나 자신이 무서워 지는 것이다.
그냥 돌아서서 다시 내려가도 되지만 그러면 얼마나 불만스럽겠는가.
나는 지금 다이빙대 끝에 서서 느끼는 마지막 공포에 휩싸여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날에 월급을 받고 항상 똑같은 잡담을 나누고 똑같은 주제로 회의를 하는 생활에 만족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생활이 수 년, 아니 수십 년간 똑같이 반복될 거란 생각에 기뻐하는지도 모른다.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욕실로 간 나는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잡념을 떨쳐버리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구속과 규칙과 모욕 속에서 양처럼 사는 삶이 행복할 리 없어. 아니면 너만 그렇게 민감한 거니?
거울 속의 내가 묻는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나는 그냥 담담하게 퇴직의사를 밝혔다.
상사는 처음에는 놀랐지만 사무적인 태도를 유 지했다.
우리는 마지막 월급, 근무증명서, 남은 연휴에 대한 형식 적인 사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나는 발코니로 나가 뜨거운 아침햇살에 코빼기를 데우며 내 가슴에 매달려 있던 바윗덩어리를 발코니 아래로 떨어뜨렸다.
바윗 덩어리는 병원 정원으로 굴러가다가 잔디밭에 가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경제위기 한가운데서 평생 보장된 직장을 그만둔 그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자신감을 느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중 많은 부분은 엄마아빠를 위한 거였어요."
"우리를 위한 거였다고?" 어머니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네. 엄마를 위한 거기도 하지만 특히 아빠를 위해서 노력한 거예요.
전 제가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는 게 엄마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승진하고, 뭐 그런 거요. 문제는 제가 저한테 가한 압박이 너무 심했던 거예요.
전 엄마아빠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다 잘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 불행한 생각이 들고 제가 누군지 모르게 되어버린 거예요."
"밀레나, 설마 그게 우리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어머니가 그 문장을 말한다.
자라면서 어머니가 하도 많이 해줘서 너무 익숙한 말이다.
어머니는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조심스럽게, 마치 실망했다는 듯 그 말을 한다.
"....우린 그냥 네가 행복해지길 바랄 뿐이야."
나는 닥터 헤닝스를 쳐다본다.
익숙한 테마가 나왔다는 걸 그도 의식하고 있다. 우리는 상담시간에 이 테마에 대해 충분히 이 야기했다.
그는 어서 말하라는 눈짓을 보낸다. 나는 가슴이 더워지는 것을 느낀다. 어머니도 내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엄마, 지금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큰 걸 기대하는지 아세요?그냥 행복해지길 바란다고요?"
어떻게 하는 건지 좀 알려주세요. 행복해지는 방법 말이에요. 전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요."
너무 심술궂다. 어머니가 답을 말하지 못할 거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어머니는 고개를 젓는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내 말은 네가 뭘 하든 상관없다는 뜻이야.
네가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직장이 있든 없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네가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정에 만족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것뿐이야. 내가 뭘 다르게 했어야 했겠니?"
"엄마,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행복해지는 건 그렇게 쉬 운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난 행복할 수가 없어요."
부모는 아무리 잘해도 언젠가는, 혹은 무슨 일인가로 욕을 먹게 돼 있다.
매우 불공정하지만 부모니까 어쩔 수 없다.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