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세계
<무의 세계>
1. 빛이 멈춘 자리
모든 별이 꺼졌다.
빛은 더 이상 퍼지지 않았고,
어둠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엔
“어둠”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어둠은 빛의 부재이지만,
이곳은
빛이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움직임이 없는 공간이 아니라,
공간이 사라진 움직임이었다.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음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2. 시간이 접힌 순간
시간은
자기 자신을 접었다.
과거와 미래는
서로를 인식하지 못했고,
현재는
존재할 이유를 잃었다.
모든 사건은
무효가 되었고,
모든 기억은
기억되지 않았다.
그곳엔
“언제”라는 질문이
의미를 잃었다.
왜냐하면
질문을 던질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3. 존재의 잔향
존재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잔향처럼
무의 틈에 남아 있었다.
그건 이름도 없고,
형체도 없고,
의식도 없었지만,
무언가가
한때 있었음을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그 속삭임은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었다.
존재가
자기 자신을 기억하려는
마지막 시도였다.
4. 의식 없는 침묵
그곳엔
의식이 없었다.
생각도, 감정도,
심지어 관찰도 없었다.
무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고,
자기 자신을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건
완전한 침묵이었다.
침묵이 아니라,
침묵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
그곳은
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5. 무의 숨결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난 뒤,
무는
자기 자신을
조용히 호흡했다.
그건 생명이 아니었고,
죽음도 아니었다.
그저
존재하지 않음의
완전한 형태였다.
그 숨결은
누군가에게 닿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완성된 세계였다.
그곳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의미도 없지만,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