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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16. 2021

타박네

여름밤 잠들기


타박타박 타박네야

네 오디메 울메 가네

내 오마니 몸둔 곳에

뎟 먹으러 울메간다

문배 줄겐 가지마라

가지 줄겐 가지마라

문배 싫다 가지 싫다

내 오마니 뎟을다오

산 높아서 못 간단다

산 높으멘 기어가지

물 깊어서 못 간단다

물 깊으멘 헴쳐가지




아빠는 노래를 못한다.

아빠가 잘 못하는 여러 가지 중에 노래를 제일 못한다.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 어쩔 수 없이 서게 되면, 늘 나나 언니, 엄마를 데리고 나와 같이 부르게 하셨다. 그나마도 내가 가르쳐 준 동구 밖 과수원길이라든가, 엄마가 좋아하는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두 개 중에 하나다.

그런 아빠가 자의로 노래를 하실 때가 두 번 있다. 우리랑 놀아 주실 때나 재울 때이다.


언니랑 내가 어깨를 같이 하고 두 다리를 쭈욱 펴고 나란히 앉는다. 반대쪽엔 아빠가 우리를 마주 보고 앉는다. 아빠 다리를 언니 가랑이 사이에 하나, 내 가랑이 사이에 하나씩 끼우면 놀이가 시작된다. 아빠가 긴 팔로 무릎을 하나씩 치면 언니와 내가 소리 높여 놀이 동요를 부른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 한 음절에 다리 하나씩 박자를 맞추듯 신나게 손으로 다리를 친다. 노래가 끝났을 때 손에 걸린 다리는 양반 다리로 접힌다. 그렇게 해서 두 다리가 다 먼저 양반 다리가 되면 이기는 게임이다. 먼저 양반다리가 된다고 이렇다 할 득도 없다. 그런데 그 양반 다리 빨리 되고 싶어서, 타박네 노래도 더더 빨리 부르고, 무릎을 치는 손도 점점 더 빨라진다. 쓸데없이 엉덩이도 콩콩 들썩인다.


양반다리 놀이할 때 아빠의 타박네 노래는, 타박네가 제 엄마를 찾으러 온 산을 다다다다 뛰 다니듯 신이 난다. 노래 끝에 제 엄마가 있을 것도 같다.  


이불을 덮어도 코끝이 시려운 겨울밤엔 잠이 쉽게 든다. 이불 안에 있어야만 그 온기가 유지되니 어찌 되었건 잠들 때까지 이불 안에서 꼼짝 마라다.

반면에 요즘 같이 더운 한 여름엔 이미 자긴 글렀다. 모기장을 펴는 과정부터가 놀이의 시작이다. 파란 바다 같은 그물 모기장을 촤르르르 펼치면 아무래도 이건 모기를 피하려는 작업이 아니라, 무언가를 잡으려고 펴는 것 같단 말이다. 그 안에 내가 들어 가 있으니 어찌 잠이 오겠는가.


시험 삼아 팔 하나를 모기장 밖으로 쓰윽 내놓고 스스로 미끼가 되어 모기에 물리나 안 물리나 밤 새 지켜봐야 한다. 또는, 어디 모기 다리라도 그물에 걸리면 손가락으로 튕겨줘야 되고, 모기장에 수상한 구멍이라도 있는지 찬찬히 구석구석 살펴야 한다. 행여 덜떨어진 모기 한 마리가 모기장 안에 들어오면 언니까지 합세해서 꺄아악 까르르 엄마엄마~~


애써 쳐 놓은 모기장을 쳐들고 푸닥거리다가 뛰 나오고 호들갑이다. 한 차례 그러고 나면 가뜩이나 더운데 땀도 나고 아직도 콩닥콩닥 가슴이 뛰는 게 그날도 잠은 다 잤다. 재우려다 지친 엄마가 아빠를 부른다. 재워보라고. 어디 한번 재울 수 있나 보자고.


아빠는 쉽다. 아빠는 잠들지 않는 나를 대적할 무기가 별로 없다. 엄마처럼 쓰읍~ 입으로 들숨 휘파람도 불 줄 모르고, 눈에서 레이저도 안 나온다. 자라고 버럭 복식 발성도 못한다. 아빠는 가지고 있는 스킬이 별로 없다. 그냥 내가 지쳐 스르르 잘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게 아빠 전략이다.


나는 아빠 옆에 엎드려 눕는다. 내가 등으로 누워 춤추듯 씰룩씰룩 어깨를 몇 번 흔든다. 등 안 긁고 뭐하냐는 신호다. 아빠 큰 손에 내 등 반절이 덮인다. 아빠는 나를 향해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내 등을 긁는다. 내 등은 땀에 절어 잘 긁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그냥 내 등을 위아래로 쓱쓱 쓸어내린다. 자동차 와이퍼처럼 손목을 왔다 갔다 등을 쓸어준다. 기분이 좋다.


아빠가 타박네 노래를 시작한다. 목소리가 굵은 편인데 노래할 땐 꼭 가성으로 부른다. 도대체 왜 노래를 하면 내가 잠들거라고 생각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아빠는 노래를 참 못한다. 수백 번을 부르는데 도통 잘 불러지지가 않는다. 그냥 빨리 잠드는 게 낫겠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네 어디메…  

근데 아빠, 이거 무슨 노래야?

타박네

타박네가 누구야?

이북에 있는 아이

문배가 뭐야?

먹는 배인데 이북에 지금처럼 크지도 달지도 않은 작은 배가 있었어

아이한테 가지를 왜 줘?

옛날에는 먹을게 별로 없어서 그냥 길가에 가지도 쓱 따서 먹었어. 맛있어.

타막네가 어디가?

엄마 찾으러.

엄마가 어디갔어?

엄마가 멀리 있나봐


자장가 타박네 노래는 양반다리 놀이의 타박네와는 많이 다르다. 자장가에서 타박네는 기어가듯 끌려가듯 온 산을 헤집고 다닌다. 하지만 산 어디에도, 노래를 해도, 노래가 끝나도, 수백 번 자고 깨도 타박네 엄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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