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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Aug 17. 2024

쉰세 번째 : 내가 옛날이야기를 피하는 이유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하고 같이 고등학교를 다녔던 개자식들 때문이다

출처 : https://www.thoughtco.com/


오늘 어쩔 수 없이 과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과거가 순탄치는 않았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교사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저랑 중고등학교 4년을 같이 다닌 친구가 너무나도 당연하듯이 인정을 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성인이 되고, 그 선생이 밖에서 헛소리를 하고 다녀서 몇 가지 조치를 했더니 제가 역으로 협박을 당해서 중간에서 다른 분이 중재를 해주셔서 일단 일은 멈춘 상태입니다.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10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24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30


아마 위의 3가지 글에 적은 것을 읽어본 저랑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하나가 읽어보더니, 오히려 좀 순화가 많이 된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랑은 제일 친한 친구는 아니어서 안부정도 주고받는 정도고, 제일 친한 친구한테는 여지없이 손절을 당했지요.


이해는 갑니다. 좁은 지방에서 살아가려면 그 쓰레기 같은 선생자식한테도 잘 보여야 하니까, 저라는 인간하고 친했다는 것 자체가 걸림돌이 되었던 거겠지요.


그리고 '왜 내 고3 담임이 이렇게 미쳐서 날뛰는 걸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한테 잘해주셨던 선생님들이 다 돌아가셨더군요.
작년 기준으로......


그래서 자기는 모자란 제자를 품어주는 아주 자애로운 선생으로, 저는 그냥 미친놈으로 아주 기가 막히게 포장을 했더군요.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어떻게든 저를 괴롭혀보겠다고 나오는 교수한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난 학생 나부랭이고, 교수님은 높으신 분이라서 제가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지만, 인생은 길고, 사람의 삶이 항상 평행선상이거나 꼬인 위치는 아닐 테니 반드시 교차하게 됩니다.
저는 그때까지는 참겠지만, 그다음에는 저한테 인내심은 기대하지 마세요.
그때는 저도 수단방법 안 가릴 겁니다.


그다음부터 저랑 말도 안 하고, 제 지도교수님한테 가서 막 뭐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제 지도교수님은 저한테 그 교수한테 들은 말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저한테 딱 한마디만 하더군요.

일단 졸업 먼저 하자.


1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달려가는 아이를 완전 개박살을 내놨으면 반성을 해야지, 가해자들의 기억법은 참으로 쉽더군요. 그리고 다 정치인들인지 뭐가 그렇게 다들 기억이 안 난다는 건지...... 솔직히 충분히 끄집어내 줄 의향도 있거든요. 다행히 그때 제 주치의가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가해자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그땐 그랬지.

바로잡을 생각은 안 하더군요.


인생을 마감할 때조차도 아마 마지막까지 복수심에 불타서 억울해하면서 죽어가겠지 생각을 했던 적도 많습니다. 수술을 몇 번 받으면서 수술 중에 죽을 수도 있다고 했을 때는 항상 유언장을 작성했었고, 2번이 넘어가니까 다시 적는 것도 귀찮아서 아예 스캔을 떠서 서명란만 비워놨어요.


제 고3 담임이 이런 이야기를 했더군요.

Calm(가명), 저 새끼는 그냥 존재 자체가 문제다.
무슨 오래전 일을 가지고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냐?
나는 기억도 안 나.
쟤는 그냥 어디 가서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저도 이 선생한테 똑같은 마음이거든요. 이제는 저도 나이가 들었고, 부딪힐 수 있는 힘이 생겨서 이 한마디만 딱 해주고 싶었습니다.

한 번만 걸려라.
열과 성을 다해서 최대한 불편하게 해 줄 테니......


저는 교사들의 그 쓸데없는 동업자 의식 그런 게 너무나도 싫습니다. 책임도 못질 말들을 하면서 서로 동조하고 제 식구 감싸기 하면서 자기네 밥그릇 지키는 그런 행동들......


제가 볼 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발전이 없고, 변화에 적응을 못하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최고의 월급 루팡이 학교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거의 30년을 우려먹다 보면 정년이거든요.


선생 중에서 인서울 대학 나왔다고 하는 선생들도 다 마찬가지로, 교사용 참고서 보면서 부지런히 칠판에 옮겨쓰거나, 그냥 파워포인트 돌리기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시간만 보내면 월급은 나오니까요.


그런 부분을 가장 경멸했던 사람과 같이 살았고, 저도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고...... 살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오늘 같이 갑자기 감정이 확 올라오는 날도 있는 것 같습니다.


20대에는 한강다리 높이를 낮추기 전에 매주 한강다리 근처에 가서 어디서 뛰면 좋을까 살펴보고 다녔습니다.


당시에 학교 동기가 저한테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냐고 했었는데, 저는 그때도 아직도 옆에서 친한 선배인 K형님 같은 분들이 이야기를 안 해주면 한없이 안 좋은 쪽으로 빠져듭니다.


오늘 같은 날도 있고, 좋은 날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지금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화도 나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런 문제 때문에 힘들었었고, 현재에도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니까요.


성인이 되어서 겪는 것과는 또 다른 괴로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제가 삶이 끝나갈 때까지 만약에 글을 어딘가 적을 수 있다면 오늘 적은 글은 살펴보고 그땐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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