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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Sep 13. 2024

여든네 번째 : 건축사와 백수 공돌이의 영혼 갈아넣기

나이 든 건축사와 백수 공돌이의 맨 땅에 헤딩하기

출처 : 서울연구원


어릴 때 한국에 잠깐 들어오거나, 아니면 서울에 잠시 거주를 할 상황이 생기면 내 놀이터는 광화문-종각-종로 2,3,4가까지 아버지랑 돌아다니기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집 밖에 나오면 지금의 우리은행을 지나서 조흥은행 건물을 지나가는 게 거의 루틴이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어린 시절에 보면 조흥은행 본점은 계속 공사 중이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계속 공사도 하고 저층 건물은 영업점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옆에 건물이 높이 솟고 그러다 보니 은행이 장사가 잘되나 보다 했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 위의 서울연구원의 사진은 CHB 마크가 있는데, 저 마크도 아마 원래 마크가 아닌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완전 꼬맹이었던 저에게는...... 그냥 저층건물이 고층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이라서 저 건물은 엄청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아버지께 저런데 살면 좋겠다고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저한테 이런 말을 하셨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야, 진짜 돈 있으면 저런데 안 살아.
막상 살기 불편할걸?


그래서 그냥 같이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막연하게 아파트에 계속 기거하다가, 부모님의 직업상 관사에도 살아보고 정말 주거형태는 다 경험을 한 것 같으면서도, 그냥 좀 저층건물에 대한 이상한 환상이 있었어요.


전에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간 적이 있는데,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40층 이상이 되니까 머리가 어지러워서 약을 먹게 될 정도로 제가 몸이 많이 안 좋아지더군요. 당시에 의사 선생님도 엘리베이터 속도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씀을 해주셨었어요.


요즘 건축계획을 수립하고, 일단 지어야 할 건축물에 대한 평면도까지 다 그렸습니다.


제가 그린 건 아니고, 건축사이신 외삼촌이 다 그리신 건데, 외삼촌께서 아무래도 동생의 집을 짓는 것이다 보니, 혼자서 하지 않으시더군요. 제가 이랬어요.

무슨 작품 뽑으려고 하세요?
저 그렇게 돈 많지가 않아요.


외삼촌께서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대지가 넓기 때문에 일단 꽉 채워서 짓게 되면 건축비가 너무 많이 드니까 건폐율이나 연면적도 너무 딱 맞게는 하지 말고, 조금 좁혀서 모든 기능을 다 만들려고 하니 저한테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어요.

외삼촌,
제 전공이 화공이고 화공 중에서도 그렇게 사람들 많이 안 하는 안전 쪽인데,
제가 말해봐야 굉장히 거슬리실 텐데 그냥 알아서 해주셔도 괜찮아요.


저한테 꼭 말을 해보라고 하셔서, 저도 대학교 때 봤던 책들도 찾아보고, 나름 찾아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외삼촌께서 나름대로 원하는 집도 그려보라고 해서 정말 아기가 막 그리는 식으로 그려서 드리기도 했습니다.


외삼촌은 발주를 받으면 그냥 나이도 있으시고, 집을 짓는다는 게 엄청난 결심인데, 건축주들이 정말 만족할 때까지 추가비용을 안 받고 무한 수정을 해주신다고 하시더군요.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벌만큼 벌었고,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그냥 내가 설계를 하고 나중에 의뢰한 사람들이 원하는 게 다 들어가 있다고 말을 듣는 게 기분이 좋고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건축사무소마다 다르겠지만, 추가수정을 하거나 도저히 예산 문제 때문에 아예 설계를 다시 해야 하면 돈을 추가로 더 받는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건축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집을 짓는 과정을 보기는 했는데, 전부 외삼촌이 해주셔서 그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한테 이 이야기를 더 하시더군요.

Calm(가명)아,
나는 너네 집 지어주고 이거 거의 마지막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해보려고 해.
그래서 다른 건축사한테도 같이 하는 거야.
내가 동생한테 그리고 조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잘해줘야지.


그렇게 평면도를 받았어요.


다행히 크게 문제도 없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정도의 좋은 평면도가 나온 것 같아요. 기성품으로 파는 모듈러 주택의 표준으로 삼아도 될 만큼의 괜찮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브런치를 구독해 주시는 분들 중에서 건축사 분들이 몇 명 계셔서 이런 글을 적는 게 부끄러웠지만, 집을 짓는 소재에 대해서 설계를 하는 과정에 굉장히 난상토론이 벌어졌어요.


저는 어떻게든 돈도 문제지만 일단 시간을 돈으로 사겠다는 조금 조급함이 있었고, 외삼촌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건축비를 줄여보시려고 기를 쓰시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건축사 두 분의 경우에는 이런 시간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주변에 있는 주택들과의 조화를 고려해서 소재를 선택을 하신 분이 있으셨고, 정말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아주 고급자재를 쓰자는 분도 있으셨어요.


저랑 외삼촌의 경우에는 일치를 봤는데, 다른 건축사 두 분은 아무래도 좀 모양이나 재료의 질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 부분에 상당한 신경을 쓰셔서 솔직히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저는 사실 정말 안되면 허가를 받아서 컨테이너라도 놓고 살아볼까 했던 사람이라서, 집 밖에서 우리 집만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일단 기능적인 면이나 각종 기후변화나 화재에 대한 안전이 최우선으로 담보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이제 겨울이 오기 때문에 허가를 받고 집을 올리는 게 너무 촉박해질 것 같아서 아예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어요. 땅을 구입을 해놨는데 그게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차피 늦어진 거 천천히 가자라고 가족끼리도 다 합의를 봤고, 외삼촌께도 말씀드렸어요.

단지,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그냥 정말 대충 짓고,
일단 이사를 나가는 게 목표라고......

올해 안에 다 끝낼 거라고 말을 해놔서,
그건 헛소리가 되었다는 것이 조금 그렇긴 합니다.


기초공사는 아마 바닥에 단열재를 넣고 하는 것은 종류가 달라질 수 있지만, 크게 다른 게 없을 것이고, 건축물 자체의 골조나 이런 것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가느냐 아니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느냐의 기로에 있습니다.


그냥 제가 공부하는 부분은 진짜 이런 것에 하나도 관련이 없어서 물론 저도 들어가서 살아야 할 집이기도 하고, 제가 나중에 정말 어쩌다가 정말 구세주인 여자분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될 경우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하는 차원에서 지어지는 집이라서 신경은 쓰고 있습니다만, 내가 이런 걸 아는 게 별로 쓸모없는 지식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거 시험공부해야 하는데, 머리에 공간 부족해서 시험 망하는 거 아닌가?
내가 머리가 그렇게 썩 좋은 사람은 아닌데......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273


전에 썼던 글처럼 포기하기로 했는데 뭘 계속하려고 하는 제 자신이 제가 봐도 좀 추해보이기까지 하는 요즘인데, 그냥 정신없이 지나가고, 몸은 덜 피곤한데, 정신적으로 좀 피폐해지는 기분을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본시험이 생각보다 점수가 좀 나와버려서 이걸 정말 놔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금 갑자기 인생 다 놓은 것처럼 살다가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나서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건 시험공부를 하라는 건지?
아니면 집이나 짓고 누구 말처럼 멍청하게 그냥 집돌이가 되라는 건지?


정말 저도 구분이 되지 않고, 혼란도 커지고 그렇습니다.


요즘의 저는 집 때문에 하루에 2가지 정도의 큰 결정을 하게 됩니다. 사실 제가 할 결정도 아니지만, 뭔가 제가 하게끔 계속 부모님이 유도를 하셔서 그냥 알면서도 결정을 하자 하는데, 방계혈족들의 개망나니 짓에 흔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289


그냥 정말 살면서 누구한테 큰 부탁을 하고 살아온 적은 많이 없는데, 이번에 집을 하면서 할 짓 못할 짓 다하는 것 같아서 저 자신이 정말 양아치가 된 기분도 듭니다.


예전에는 돈에 관련된 일만 하기가 싫었는데, 이제는 집이나 부동산에 관련된 일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어도, 자격증 따고 알바를 딱 2달 하고 그 자격증은 그냥 액자도 아니고 종이봉투에 넣어서 서랍에 놓여있는데, 며칠 전에는 그냥 자격증은 죄가 없는데 그냥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인생의 최대의 위기 그리고 고난까지는 아니지만, 굉장히 번거로운 일을 저 스스로 만든 것 같아서 피곤하기는 한데, 사실 여기에 엮인 외삼촌이나 멀리 봐서는 외사촌 형님까지 정말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저한테 쌍욕을 하신 다른 방계혈족 분들 때문에, 제가 정말 열이 받아서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감정에 휘둘리는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 사람은 큰 변화 없이 살아가는 게 최고라고 생각이 됩니다. 큰 변화가 좋을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저보다는 신중하신 분들이실 텐데, 저처럼 매 순간을 무모하게 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글을 마무리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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