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눈물 날 것 같은 날이 있다. 어쩌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우는 것을 거부한다. 왠지 내가 지는 것 같고, 울어버리면 거기서 끝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슬픔이라는 감정은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이상 우리의 내면에 뿌리를 내린다. 시간이 지나 괜찮아지더라도 비슷한 상황에 놓일까 봐 겁을 먹게 될 수도 있고 트라우마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릴 정도로 슬프거나 힘든 상황일 때 후회할 행동을 하나 한다. 내가 쌓아 온 것들을 무너뜨린다거나, 불태워버린다. 그것은 사랑의 흔적이 담긴 것들이 될 수도, 노력을 담은 어떠한 물건이 될 수도 있다. 공통점은 '나의 시간이 담긴 것들'이라는 것이다. 각자에게 소중했던 것을 무너뜨리고 불태우고 지워버린다. 더는 꼴도 보기 싫고 잊어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감정이 클수록 그것을 위해 살았다는 뜻이다.
가장 와닿기 쉬운 주제를 먼저 이야기해 보겠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했을 때 우리는 사진과 대화내용, 전화번호를 지운다. 그가 떠오를 것 같은 모든 것들을 지우려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지우든 말든 우리의 감정은 가라앉는다.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하며 그 눈물에 그 사람을 함께 떠내려 보낸다. 모두 떠내려나고 나면 후회가 된다.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둘 걸, 목소리 하나쯤은 남겨둘걸.
이런 후회는 우리가 눈물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고 나야만 할 수 있다. 이별은 모두가 공감하는 아픔이기에 눈물 흘리기가 쉬워 감정 해소도 쉽다. 물론 그 사람을 잊기 쉽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이 아픔을 잊는 것이 비교적 쉽다는 말이다. 아픔이 해소되고 나면 남는 건 그리움이다. 지금이다. 사진을 지우고 목소리를 지운 그 행동에 대한 후회가 시작되는 것이. 그 사람을 추억할 거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눈물을 흘리기 힘든 상황도 이야기해 보겠다. 바로 노력에 대한 것이다. 살면서 무언가를 위해 노력한 경험이 분명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과 타협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다들 있지 않은가. 한 때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어떤 꿈들이. 그런 것에는 눈물 흘리는 것이 쉽지 않다. 자신만이 걷는 길이기에 남들에게 터 놓기 힘들며 울어버리면 내 꿈에게 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실패하면 주변의 모두가 힘들어지기에 티를 내기도 어렵다. 그렇게 울지 않고 버티며 한 발씩 나아간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버티는 것만 하면 목적지까지 가는 이 먼 길이 계속 힘들 거라는 생각에 더 쉽게 무너졌다. 이별을 했을 때처럼 눈물이 필요하다.
내 꿈이 처음 무너진 날은 덤덤했다. 그럴 수도 있지. 어려운 만큼 큰 보상이 있을 거야.
그러나 두 번째 무너진 날은 힘들었다. 계속 시간만 지나가고 난 대체 뭘 이룬 거지? 계속 나아가야 하나? 울고 싶지만 울지는 않았다. 두 번의 실패로 배운 것이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나아갔다.
세 번째 무너진 날, 허탈했다. 내가 쌓은 시간과 노력이 함께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기록해 두었던 것들을 모두 찢어서 버리고 싶었다.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유튜브에 관련 영상이 올라오면 모두 관심 없음 버튼을 눌러 알고리즘을 차단하기도 했다. 계속 이 감정들을 갖고 있었으면 분명 내가 기록하고 적어둔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기억만으로는 모두 담기 힘든 내 경험 지식들을 잃었을 것이다.
밤에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다. 이제 이 꿈을 버리고 싶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이 꿈에게 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참아왔던 감정을 터트렸다. 병에 걸렸을 때보다 더 울었다. 아무래도 난 이 꿈에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눈물의 밤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되자, 이상하게도 견디기 버거웠던 감정들이 가라앉았다. 아니,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어제의 눈물에 내 오랜 감정이 씻겨 내려간 것처럼 깨끗했다. 다시 책상에 앉았다. 내가 걸어오며 기록한 노트를 펼쳤다. 어제 이 노트를 버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다시 내 꿈을 향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의 실패를 지나며 중첩되었던 고통이 하루의 눈물로 지워지자 멀게 보였던 목적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속엔 고통만이 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감정이 해소되고 나니 처음 이 길을 봤을 때처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눈물의 힘이라고 부른다. 눈물에게는 우리의 감정을 배출시켜 주는 힘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우리는 너무 슬프고 고단할 때도 눈물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지만 너무 기뻐 주체하지 못할 때도 눈물을 흘린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정반대의 감정 상태인데 극에 달하면 눈물을 흘리는 건 똑같다니. 그렇다면 눈물은 우리의 감정이 차오를 때 나와야 할 당연한 것이다.
울고 싶지만 참고 있을 당신에게 말한다. 눈물 날 것 같은 날에는 그냥 울어라. 눈물을 쏟아내고 소리를 질러라. 그 눈물에 아픔이 씻겨 내려가고 그 소리에 고통이 빠져나간다. 모든 것이 해소되고 나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얼마 전, 나이 든 마이크 타이슨이 다시 링 위에 올랐다. 그 여파로 타이슨의 전성기 영상들도 알고리즘을 통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기서 내가 본 것은 타이슨의 실력도, 괴물 같은 펀치력도 아니다. 그도 링 위에 오르면 수많은 주먹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타이슨 조차 타격이 아닌 회피를 위해 더 많이 움직인다. 삶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이에 비유하고 싶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잠깐 고통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주먹을 피하고 카운터 펀치를 날릴 때가 가장 멋진 장면이지 않은가. 삶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다시 일어서 맞서라. 주먹을 피하지 않는 복서에게 남는 건 패배뿐이다. 울지 않고 버티기만 하다가는 삶에게 KO패를 당할지도 모른다.
눈물의 힘은 위대하다. 그 어떤 큰 일도 나중엔 술 한 잔에 웃고 털어버릴 수 있는 일로 만든다. 언젠가 당신도 눈물의 힘을 믿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