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라이킷 31 댓글 9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쑥섬이야기(39)

'사랑의 돌담길'- 추렴 이야기

by 명재신 Mar 16. 2025

'사랑의 돌담길' - 추렴 이야기



"뭐 하고 있는 거야!"


답답한 병철이었다. 나서자고 할 때는 호기롭더니.


"잘 안돼"


"그럼 나하고 바꿔"


그냥 한 마리 나꿔채서 나서면 될 일을 뭐가 안 된다고 아까부터 낑낑대고 있는지 답답해서 병철이를 망을 보게 하고 내가 토방 밑으로 고개를 쑤셔 넣었다.


"망이나 잘 보라구"


음녘 2월 보름달이 벌써 중천이었다. 지체하다가는 영감님이 잠을 깰 거였다.


토방 아래에 만들어져 있는 닭장에 닭들이 여러 마리여서 그중에 손에 잡히는 놈 한 마리 나꿔채서 마당을 건너 '서리빡/대문'을 나서면 우리는 달빛 속으로 사라질 거였다.


"가시나들 목 빠지겄다"


미선이네 집에서 가시내들은 아까부터 물을 끓여놓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미선이네 엄마는 '대구리/기선저인망'배를 타는 아버지를 만나러 여수에 가고 없었다.


그래서 미선이네 집이 비어서 '추렴'을 하자고 했는데 오늘 같은 날에는 그냥 '예순이네 점빵/매점'에서 군것질거리나 사 와서 먹느니 '무강/씨고구마'하려고 아껴둔 '감재/고구마'도 좀 가져오고 해서 판을 크게 벌일 요량이었다.


"야, 모처럼 닭서리나 한번 하러 갔다 오자"


그런데 더 판을 크게 벌릴 요량으로 병철이가 호기롭게 그랬다.


막내 삼촌이 최근에 부산서 사가지고 왔다던 검정 구두를 몰래 신고 와서는 뽐을 내면서 그랬다. 머리에도 뽀마드까지 쳐 바른 모양이 미선이하고 요새 잘 돼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쑥섬에서는 젊은 남녀들의 마땅한 놀이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청춘 남녀들이 그 좁아 빠진 섬에서 연애를 하려면 몰래 몰래 '추렴'이라고 하는 모임을 통해서였다.


추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시내'하고 '머시마'들은 친해졌고 그들은 주로 뭐라도 사러 함께 다녀오거나 사러 가는 길에 어두운 골목길에서 '풋사랑'을 하거나 '찐사랑'을 하곤 했다. 그곳이 '예순이네 점빵' 근처의 '골무삭/골목'이었다.


지금의 '사랑의 돌담길'이었다.


주로 '가시내'들은 '그물을 뜬다'는 핑계로 또래네 집으로 뭐라도 먹을 것을 들고 모여들었고 '머시마'들은 '바늘대 쳐준다'는 구실로 그 골방을 찾아들었다.


어떤 집은 엄격해서 밤에 출입하는 것을 통제하였지만 어떤 집은 묵인을 하던 용인을 하던지 간에 밤에 젊은 자식들이 '추렴을 한다'고 마실 나가는 것을 허용을 했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섬에서 젊은 시절의 청춘 남녀들의 뜨거운 혈기를 억제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다들 집에 있는 ‘이것저것’을 가져와서 야밤에 ‘골방’을 찾아 들어가 야식을 즐기면서 호호하하 하면서 기나긴 겨울 밤을 지세웠다.


비단 여자끼리만 혹은 남자끼리만 어울리지는 않았다.


청춘 남녀들은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은밀하게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면서 신랑 각시의 연을 맺기도 했었다.


머시마들은 그걸 위해 쑥섬 뒤먼에 삼강망 어장 서리나 드물기는 했지만 야밤에 배를 타고 나로도로 건너가 닭서리 출정도 했다.


모두 십시일반으로 지지고 볶을 그 무엇이든 집에서 나눠 왔었다.


겁없는 머시마들은 아버지가 마시다 아껴 놓은 막걸리 '도꾸리' 병을 그리고 몰래 아버지 담배도 몇 개피 슬쩍해서 가져와 애 어른의 호기를 부렸고 대책없는 가시나들은 어머니 동동구르무에 분을 곱게 바르고 그 '골방'으로 몰려 들었던 것이다.


'골방'은 대개가 먼 바다 나가셔던 아버지가 여수나 목포 아니면 부산에 입항한다는 연락을 받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러 몇 일 집을 비우거나 잠시 외갓집에 다녀 오신다고 집을 비운 곳이었다.


'그물을 뜬다'고 모여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야, 그냥 있는 걸로만 하자"


병철이가 선을 넘고 있었다.


영등사리철이어서 오후에 '마당널이 해삼'하고 '칫둥에서 잡은 개불'에다가 '목넘에 살조개'를 잔득 잡아 왔었기 때문에 이만 하면 되었는데 병철이가 다시 푸짐하게 육고기라도 뜯게 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번에는 닭고기로 몸 보신시켜 줄께 기다려!"


뭔가 호기롭게 미선이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지 뽀마드 바른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며 윤이 반짝이는 삼촌 구두를 신고 나를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모처럼 하는 '추렴'을 작정하고 한번 해 보자고 쑥섬에서 일부러 두천이네 '댄마/노젓는 배'를 몰래 타고 나로도항으로 건너와서 '사계마을'까지 원정 닭서리에 나선 거였다.


"이게 뭐야?"


닭들은 어둠 속에서 내 손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닭을 잡으려고 손을 휘저으면 그놈들은 펄쩍 뛰어올라 손을 피해 버렸다. 닭장 입구가 머리까지는 들어가는데 몸은 들어가지를 않을 만큼 좁았다. 그래서 어깨를 넣어서 손으로 휘저으며 닭을 잡으려고 하니 이놈들이 요리조리 피해 버린 것이었다. 병철이가 낑낑대고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닭들은 닭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나무 선반에 모두 올라가 있었다. 거기에서 한 발로 잠을 자는 척하다가는 손이 들어오면 용케도 펄쩍 뛰어서 손을 피해 버렸다. 그래서 손을 휘휘 저으면서 날개든 몸통이든 목이든 잡히는 대로 한 마리만 꺼내가려고 하니 이제는 꼬곡 소리를 내면서 손을 쪼아 댔다.


"야, 얼릉해! 안에서 뭔 소리가 들린다"


방안을 살피고 있던 병철이가 낮으막하게 외쳤다.


"거 누구요~"


안에서 잠을 자던 주인 영감님이 바깥에서 닭 구구 대는 소리에 잠을 깨고서는 어느 놈들이 또 닭서리를 하러 왔는갑다 싶었던지 크흠하고 헛기침 소리로 인기척을 내었다.


밤손님은 쫓아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괜히 잡으려 했다가는 몸을 상할 거였다.


"야, 빨리 해"


병철이가 다시 낮으막하게 소리를 쳤다.


"야, 이노무 자석들 니들 누구냐!"


병철이 소리를 들은 주인 영감님이 어린놈들이 닭서리를 하러 왔구나 싶었던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제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영감님이 문을 열고 나오려고 했다.


"막어!"


내가 소리를 쳤고 병철이가 열리는 방문을 찍어 눌렀다. 그 바람에 영감님의 머리는 방문 사이에 끼어버렸다. 병철이의 우왁스런 힘으로 영감님은 얼굴이 문틈에 끼인 형국이 되어서 낑낑대는 소리를 내었다.


"야, 튀자"


나는 대문 쪽으로 튀면서 아직도 방문을 찍어 누르고 있는 병철이에게 그랬다.


"이 노무 자석들 니들 어디 마을서 왔냐 이 노무 자석들"


영감님은 문틈에 끼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소리만 질러댔다. 어쩌든지 머리부터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병철이의 우악스러운 힘을 밀쳐내고 나오지를 못했다.


"야, 얼릉 놔두고 나와 부러!"


영감님이 어깨를 빼내고 손을 휘저어 병철이를 잡으려고 하자 그때에 사 병철이는 문을 놔두고 토방으로 펄쩍 뛰어내렸다. 그 바람에 문이 활짝 열리면서 영감님은 마루로 넘어져 버렸다.


"오냐 이 노무 자석들 잡기만 해 봐라!"


병철이는 집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뒤안 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푸더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병철이가 담장에서 뛰어내린 그곳은 겨우내 물을 잡아 놓고 있던 '무논/물이 고인 논'이었다.


"뭐 해 얼릉 빠져나와"


"이거, 이거"


병철이가 신고 온 삼촌 구두가 문제였다.


무논 깊숙이 박힌 삼촌 구두가 빠지질 않았다. 걸음을 걸으려고 하니 발만 빠지고 구두는 무논에 박혀서 빠져나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뭐 하냐고 그냥 얼릉 오라고 잡히면 끝장이라구"


하지만 영감님은 소리만 치고 있었지 바깥으로 쫓아 나오지를 않았다.


"잘 안돼"


병철이는 구두를 건져와야 했다. 막내 삼촌이 부산 광복동에서 샀다고 자랑하던 구두를 거기 그대로 놓고 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손을 넣어서 구두 두 짝을 모두 빼서 들고 무논을 빠져나왔다.


"야 구두가 문제냐 얼릉 튀자"


근사하게 뽀마드까지 바르고 부산 광복동 구두까지 신고 왔는데 낭패였다.


배 터지게 닭고기를 뜯어 먹이려고 했던 양손에 닭 대신 진흙투성이 구두 한 짝씩을 들고 병철이가 뒤를 따르고 있었고 내가 앞장을 서서 사계마을 그 기인 내리막 길을 열며 뛰어 내려왔다.


음력 2월 밤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추렴'


머든지 있는 거 가져오면 되지

동네 골방에서 한 살림 차리는 거지

고구마든 이 시린 동치미든

아부지 아껴 둔 막걸리도 괜찮은 겨


머든 가져와서 함께 뭐라도 만들어서

조금 전에 그 머시마 어장 서리 갔으니

지지고 볶아 보는 겨


군불 뜨겁게 지펴놓고 밤새는 거야

겨울 밤 깊어가는 줄 모른 거지


청춘들 모여서 긴긴 삼동을

잘 넘어 가는 거여


잘 되어 신랑 각시 되기도 했었지

잘 못되면 덕석말이 감이 되기도 했었지.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


‘예순이네 점방집‘이 있던 이 좁은 돌담길에서 젊은 청춘들의 ‘풋사랑’과 ‘찐사랑‘이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이름하여 ’사랑의 돌담길‘이다.‘예순이네 점방집‘이 있던 이 좁은 돌담길에서 젊은 청춘들의 ‘풋사랑’과 ‘찐사랑‘이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이름하여 ’사랑의 돌담길‘이다.
이 모든 돌담길을 통해서 ‘추렴’을 하려고 쏘다니던 젊은 날들의 청춘들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이 모든 돌담길을 통해서 ‘추렴’을 하려고 쏘다니던 젊은 날들의 청춘들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젊은 날 고향 쑥섬에서는 젊은 청춘들이 방학 때나 명절 때 모여들면 추렴을 하면서 이렇게 하고 놀았습니다.젊은 날 고향 쑥섬에서는 젊은 청춘들이 방학 때나 명절 때 모여들면 추렴을 하면서 이렇게 하고 놀았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쑥섬이야기(38)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