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수 Jun 09. 2024

신주(心中)로 시작되어, 신주(心中)로 끝난 삶

(5)쇼와 시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1927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세상을 떠난 뒤, 새로운 문인이 아쿠타가와의 뒤를 이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다자이 오사무였습니다. 히로히토 천황이 즉위하고 쇼와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이에 맞춰 군국주의, 파시즘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다가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면서 불안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지속되었습니다. 천황에게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글이 있다면 바로 검열되기도 했죠.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은 쇼와 시대의 경직되고 불안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다자이 자신을 형상화한 자전소설로 일컬어집니다. 다자이는 살면서 다섯 번의 자살을 시도했는데, 두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자살이 신주(心中)에 해당했습니다. 그는 다섯 번째 신주가 성공하면서 세상을 떠났죠. 그리고 그의 신주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인간실격> 속에서 형상화됩니다.



다자이 오사무(1909~1948)      



1909년, 다자이 오사무는 고리대금업으로 신흥 지주가 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귀족원의 의원이자 가네키무라의 대지주로, 다자이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수많은 하인과 하녀, 유모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호의호식하며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은 다자이였지만, 내면에는 외로움이 자리잡았습니다. 어머니가 다자이를 낳고 허약해진 탓에, 유모와 숙모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여러 사람의 손을 오가며 자란 탓에, 다자이는 마음 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는 숙모가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꿈까지 꿀 정도였죠.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고 소작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집 밖에서 일하느라 다자이를 돌볼 틈이 없었습니다.


다자이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애정 결핍은 <인간실격>의 요조를 통해 형상화되었습니다. 요조는 사자탈을 갖고 싶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눈을 의식해, 수첩에 '사자탈'을 적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하인과 하녀들이 그를 범하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버지나 어머니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실격>에서


결국 요조는 부모님에게 종복들의 범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조차 그를 어떻게 볼지 수치심을 느낀 탓도 있겠지만, 그를 지지해 줄거란 보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조는 '익살'을 통해 밝고 재미있는 아이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부모와 형, 누나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익살은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세상과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더 크게 키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호리키라는 친구를 만나고, 이때부터 그의 삶은 뒤바뀌게 됩니다.


"술, 담배, 창녀, 그것은 전부 인간 공포증을 비록 잠깐이지만 달랠 수 있는 꽤나 훌륭한 수단임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실격>에서


이후 요조는 술을 마시고 매춘부와 잠자리를 하면서 인간 혐오증을 달랩니다. 이때, 그는 매춘부를 향락의 대상이 아닌 성모 마리아와 같은 존재라고 했는데, 아마 어머니의 부재에 따른 애정 결핍을 매춘부를 통해 채운 것이 아닐지 추측합니다. 요조는 여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도 훨씬 광대짓에는 너그러운 것 같았습니다."
-<인간실격>에서
"분명 여자들이 너에게 홀릴 거야."
-<인간실격>에서 다케이치의 대사


요조는 여자 앞에서는 경계심이 허물어졌습니다. 그는 다케이치의 말대로 (매춘부와 하룻밤 자는 사이가 아니라)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습니다. 아마 그는 매춘부와의 하룻밤 관계를 넘어, 좀더 진실한 어머니의 애정을 느끼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요조는 또 다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일을 저지릅니다.


동경대학교 재학 시절, 다자이는 게이샤였던 코야마 하쓰요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져 동거를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길길이 반대했습니다. 다자이는 분가제적을 당해야 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의 형이 와서 둘의 결혼을 보장할테니, 하쓰요를 잠시 고향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다자이는 결혼 조건으로 이를 허락했으나 하쓰요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쓰요를 기다리며 심리적인 고통을 앓다가 하쓰요가 돌아오자 이들은 약혼을 치릅니다. 하지만 다자이는 자신의 고통에 무관심한 하쓰요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이때, 그는 타나베 아쓰미(본명: 타나베 시메코)라는 카페 여급을 만났고, 두 사람은 가마쿠라 해변에서 투신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최초의 신주(心中)를 저지르게 됩니다(사실, 다자이의 자살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는 좌익문헌에 흥미를 갖고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는데, 백성을 착취한 고리대금업자 집안이라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를 이기지 못하고 홀로 칼모틴을 복용하고 자살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자살의 경우, 하쓰요에게 배신감을 느끼던 와중, 자신과 함께할 여인을 만난 것에 대한 안도감과 사랑을 느끼고 저승에서도 함께하자는 마음으로 같이 투신한 것이 아닐지 추측합니다.


그러나 아쓰미만 죽고 다자이는 어부에게 구조되었습니다. 그는 경찰에게 자살방조 용의로 조사받고 검찰에게 기소되었으나, 형의 도움으로 기소유예로 풀려나게 됩니다. 이때의 경험은 <인간실격>에서 형상화됩니다. 요조는 츠네코라는 연상의 여인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가마쿠라에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혼자 살아남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츠네코를 그리워합니다. 먼저 죽은 그녀를 부러워하고 삶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죠. 그리고 그는 애정 결핍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여자를 탐닉하게 됩니다.


요조가 만난 여자는 시즈코, 바의 마담, 요시코였습니다. 이 중, 그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사람은 요시코였습니다. 요시코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여인으로, 그녀를 보고 요조는 처음으로 삶의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떤 장사꾼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때 저를 휘감은 감정은 분노도 아니요, 혐오도 아니고 또한 슬픔도 아닌 무시무시한 공포였습니다." -<인간실격>에서


요조는 두려움을 느끼고 이 추악한 사태에 관해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요시코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그나마 남아 있던 인간에 대한 애정, 세상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버렸죠. 그는 술에 찌들어 살다가 객혈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국에서 모르핀 처방을 받고, 도리어 모르핀 중독에 걸리기까지 하죠.



다자이는 실제로 알코올, 진통제 중독에 걸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신주(心中)를 시도했습니다. 자신의 아내 하쓰요와 함께요. 사실, 다자이가 병원에서 진통제 중독으로 입원할 동안, 하쓰요는 다자이의 친척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다자이는 아내에게 크게 실망하고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술을 마셨습니다. 하쓰요 역시 다자이의 병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서라도 사이 좋게 지내자는 마음으로, 미나가미에 가서 동반자살을 시도했지만 둘 다 미수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다자이는 하쓰요와 헤어진 뒤 친구의 소개로, 새로운 여인을 만납니다. 고등학교 교사 이시하라 미치코였습니다. 다자이는 미치코와 결혼하면서 잠시 안정을 취하고 왕성한 작품 집필을 합니다. 지금 이 글에서 설명하는 <인간실격>도 이때 집필되었죠. 아마 다자이가 하쓰요에게 느낀 실망감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요시코와의 관계를 통해 형상화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요조는 모르핀 중독에 걸려 계속 비싼 돈을 들여가며 모르핀을 맞다가, 돈이 없어 약국의 주인과 관계를 맺는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요조는 하는 수 없이 친가에 돈을 부쳐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친가에서는 호리키와 그를 한때 보살폈던 넙치가 와서 그를 데려갑니다. 요양원으로 데려간다고 했지만, 요조가 도착한 곳은 정신병원이었습니다. 요조는 자신이 죄인을 넘어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인간실격. 이미 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실격>에서
"이제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인간실격>에서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로서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가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실격>에서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고, 세 번째 문장은 소설의 첫 번째 문장입니다. 그는 모든 것에 해탈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서, 원래 나이는 27세이지만 사람들은 마흔을 넘게 보았죠. 인간들의 세상에서 실격한 사람, 그가 바로 오오바 요조였습니다.



아마 다자이는 <인간실격>을 집필할 때, 본인의 죽음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부끄러움 많은 생애"도 요조보다 다자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인간실격>을 집필을 마친 다자이는, 선술집에서 만난 야마자키 토미에라는 여인과 동반자살을 했습니다. 1948년 6월 13일에 투신했고, 19일에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되니 이 날은 다자이의 39번째 생일날이었습니다.


“생전에 이렇게 평안한 다자이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사체를 검안한 노하라 카즈오는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7월 25일, 다자이 오사이의 유고작 <인간실격>이 출간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배려를 잘 하고 그랬는데, 술만 안 마시면, 아니, 마셔도.... 하나님 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인간실격>에서 바의 마담 대사


요조가 만났던 바의 마담이 하는 말로, <인간실격>의 맨 마지막 문장입니다. 왜 다자이는 위의 문장을 써서 요조를 변호하려고 했을까요? 아마 다자이는 '인간실격'이 된 요조가 아니라, 천성이 착한 그를 '인간실격'으로 만든 세상과 인간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신주(心中)와 생애(生愛)로 얼룩졌습니다. 삶에 대한 회의감과 여인에 대한 사랑을 반복했고, 결국 본인이 염원하던 사후 세계로 떠났지요.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비롯한 일본 문인들의 신주(心中)는 일제의 지배를 받던 암울한 조선 예술인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일본 문인들처럼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6편에서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