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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a Jun 26. 2022

아빠 안녕.. 곧 만나

기억 보관함이 필요한 이유

한창 바쁜 업무로 분주한 시간에 휴대폰 진동이 울려댔다.

저장되어 있는 번호는 아니지만 단번에 알 수 있는 번호였다.

아빠가 계신 요양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자주 오는 전화가 아니기에 살짝 긴장이 되었다. 더욱이 코로나로 아빠를 못 본 게 반년이 훨씬 지나고 있었다.

"아빠 병원인데? 무슨 일이지?"

나는 옆에 있던 동생을 쳐다보며 물었다.

동생 또한 걱정되는 눈빛이 역력했다.

'별일은 없어야 할 텐데..'

나는 수신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보호자님이시죠?"

"네,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환자분이 지금 위독하셔서 오늘내일이 고비일 듯합니다."

"네? 갑자기 무슨 일이죠?"

"폐렴이 걸리셨는데 아침까지는 괜찮다가 심해지셨어요.

큰 병원으로 옮기실 거면 오늘 저녁에 옮길 수 있게 처리하겠습니다"

이미 눈치를 챈 동생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아빠는 사고로 경추를 다치셔서 5년간 전신마비로 병원에 계셨다. 처음에 경찰의 연락을 받고 응급실로 갈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종종 그놈의 술 때문에 병원을 자주 간 터라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의사는 나를 불렀다.

"보호자님 이 쪽으로 오시죠."

의사는 나를 보자 촬영한 CT를 보여주었다.

"여기가 경추 부분인데 5번 6번 사이에 골절이 생겼어요.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여기도 수술이 가능하지만 좀 심각한 상태라서 대학병원으로 가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경추? 골절? 목이 부러졌다는 얘긴가?

"아니 그럼 아빠는 어떻게 되나요?"

"지금 보니깐 목 아래로 느낌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응급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네? 마비라는 말씀이세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눈물이 터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아빠와 구급차에 올랐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원망만 나올게 뻔했기 때문이다. 눈물을 멈추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왜 이런 아빠를 만났을까?'

밖에서 들리는 요란한 구급차 소리와는 달리 구급차 안은 적막한 느낌이었다. 이따금씩 내가 훌쩍대는 소리 이외에는.. 미안한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은 아빠의 모습을 보니 내 처지가 너무도 불쌍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아빠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아빠 또한 불쌍해 보이는 것 아닌가..

응급실에 도착한 아빠는 그제야 정신을 추스르고 눈을 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 수술은 어렵다는 판단에 아빠는 병실로 옮겨졌고 수술은 다음 날로 정해졌다.

그날 밤 나는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끝이 났다.

수술 당일 아침이 되자 아빠는 어제저녁과 달리 아주 불안해하고 있었다. 족히 몇 시간은 걸리는 대수술이기에 겁이 나는 건 당연했다. 나는 미운 아빠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아빠, 괜찮을 거니깐 겁내지 마라."

수술은 4시간이 걸려서 끝이 났다.

그리고 아빠는 예상대로 전신마비가 되었다. 머리만 제외하고 자신의 의지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날 이후로 나는 아빠의 딸이 아닌 엄마가 되었다.


병원의 하루는 일찍 시작이 되었다. 새벽 6시가 되면 간호사들의 회진과 함께 아침이 시작되었다.

밤새 채워진 소변과 기저귀를 갈고 아빠의 굳은 몸을 닦이고 새 환자복을 입히고 나면 아빠의 하루도 시작이 되었다. 아침 식사가 도착하면 누워있는 아빠를 자리에 앉히고 아기에게 밥을 먹이 듯 밥과 국 반찬을 골고루 먹여주고 식사가 끝나면 이를 닦이고 9시가 되면 휠체어로 옮겨서 재활 치료를 받으러 가고 다시 병실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오후 재활을 가고 다시 병실로...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과들로 나는 밤이 되면 녹초가 되어 아떨어졌다. 작은 침상에 몸을 누이면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지만 그 아픔보다 더 아픈 것은 내일이 되어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아빠를 버리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면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힘듦도 점차 적응이 되고 세상에서 가장 미웠던 아빠도 마냥 불쌍하게만 느껴지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6개월을 아빠 아기를 위해 버텨내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아빠를 케어했다면...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조금만 더 버텨냈다면... 그래서 아빠가 요양병원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아빠는 이렇게 내 앞에서 마지막 숨을 내 쉬고 있지 않았을까?


"아빠, 미안해. 그런데 내가 이제는 정말 힘들어서 안될 거 같아.. "

"괜찮다 울지 마라. 네가 얼마나 욕을 봤는지 내가 다 안다. 고맙다."

아빠를 요양병원에 보낸 그날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슬펐던 날 중에 하나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지금 아빠는 내 앞에 마지막 숨을 부여잡으며 누워있다.

허공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산소 호흡기 사이로 가족들 한 명 한 명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는데 나는 그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거칠게 숨을 쉬며 나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한다는 말만 되뇌었다.

"아빠 사랑해. 나는 아빠가 내 아빠여서 너무 행복했어. 아빠 사랑해. 이제는 하늘나라 가서 아프지 말고 맘껏 뛰어다니고 행복하게 지내. 아빠 사랑해. 나는 아빠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아빠... 잘 가."

인생의 고단함을 끝내고 두 눈을 감는 아빠의 모습은 아주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아빠... 안녕.. 곧 만나..'

평생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나이지만 단 한 번도 아빠에게는 아프다는 내색 한번 안 했던 나였지만 말하고 싶었다.

"아빠 내가 많이 아프니깐 이제는 아빠가 날 지켜줘야지.. 이렇게 빨리 하늘나라로 가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


내 아빠 아기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어느 날 밤 잔잔하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밖에서 들리는 거센 바람소리와는 달리 평온함이 병실 가득 퍼져, 나는 마음 가득 평온함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의 마지막을 따스함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이 기억만은 사라지지 않길 기도했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들이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잘 보관되어 있다가 우리가 지치거나 힘들 때 몽글몽글 피어올라 우리를 따스함으로 채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소중한 기억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잘 보관해 둘 필요가 있다.

냉혹한 현실에서 우리 또한 차가워지려 할 때 그 기억들이 당신을 따스함으로 채워줄 것이다. 당신의 보관함에 담겨 있는 따스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첫 사회생활 후 받은 월급으로 부모님께 드렸던 첫 용돈, 시원한 가을밤 사랑하는 사람과 거닐었던 기억, 사랑하는 아기가 처음으로 "엄마, 아빠"라고 불렀을 때의 감동, 첫 해외여행에서 느꼈던 즐거움... 보관함 속에 들어있는 여러 기억들은 음악이 될 수도 있고 향기가 될 수도 있으며 각인으로 새겨진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의 공통점은 우리를 행복한 순간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따스함으로 기억된 아빠의 죽음은 나에게는 슬픔보다는 행복으로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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