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봄. 돼지감자.

돼지감자는 티백이 좋더라

by 선영언니

돼지감자


초록 대문집 뒤에는 볕이 잘드는 작은 밭이 있다. 밭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지만 우리 눈엔 커다란 그곳을 정리하여 무언가 키워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밭을 정리하며 밭 주인이 지난 해에 심어둔 돼지감자를 함께 캐기로했다. 밭주인은 돼지 감자가 몸에 좋다는 소리를 듣고 구해서 심으셨었다고 했다. 뼛속까지 도시여자인 나에게는 농사의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다. 당연히 돼지감자도 처음본다. 본적은 없어도 들은 것은 있어서 돼지감자가 몸에 좋다는 것은 소문으로 알고는 있었다.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소문이 퍼졌을 걸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예전부터 들었든 지금 들었든 그 소문을 함께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호미를 들고 땅을 헤집기 시작했다. 무언가 땅에 있다고 하니 다들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게 왠일인가. 뭔지도 몰라 알아볼 수 있을까 싶던 돼지 감자라는 것이 땅을 파니 쏟아져 나왔다. 땅속에서 자그마하고 울퉁불퉁 귀여운 녀석이 나올 때마다 심마니가 삼을 찾은 듯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연신 소리를 내질렀다.

IMG_1760.jpg


IMG_1761.jpg

이 녀석은 생명력이 아주아주 대단한 녀석이었다. 따로 심은 것도 아니고 예전에 심었던 땅일 뿐인데도 한 바구니 가득 나왔다. 알고 보니 돼지감자는 땅에 한 조각만 남겨져도 잘 자라서 여러 개로 불어나는 생명력 대단한 작물이었다. 우리도 두 해에 걸쳐 알아보게 된 친구이다. 재배할 것이 아니라면 싹이 나기 전에 모두 캐버리던지 싹이 났을때 얼른 정리를 해줘야지 아니면 여름에 키보다 높게 숲을 이뤄 손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니 조심해야 한다. 별다른 것을 조심하라는 뜻은 아니다. 몸에 좋지만 다른 작물들과 함께 키우기 어려운 작물이라는 뜻이다. 너무 자라버린 돼지감자 줄기와 잎이 해를 가려 밭에 함께 키우던 다른 작물들이 빛을 받지 못하고 잘 자라지 못하게 된다. 돼지감자를 키우려면 따로 구역을 정해서 심는 것이 좋다. 자그마해도 여러 작물이 함께 하는 우리 밭에서는 결국 퇴출 당했지만 말이다.


다들 처음 보는 돼지감자의 맛이 궁금했다. 그렇다면 또 구워야지. 밭을 정리하면서 나온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붙이고 모닥불을 피웠다. 아이들이 진흙놀이로 만든 화덕에 불을 피우니 꽤 그럴싸했다. 잘 구워진 감자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아이들은 그거 하나 먹겠다고 작은 손을 연신 내민다. 뜨거울텐데 하나씩 받아 들고 후후 불어가며 먹는 모습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감자라고 했는데 옥수수 맛이 나요~"

"달아요~"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맛있어요."

모두들 극찬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뒤돌아 말했다.

"그냥은 못 먹겠네. 차로 만들자."

"조금만 굽길 잘했어.."

"얼른 치워. 치워.."

어른들끼리 눈치코치 미소 지으며 손을 빠르게 움직인다.

남은 돼지 감자들은 일반 감자보다 맛이 덜해 구워 먹는 것은 재미로 먹어보는 정도로 만족했고 남은 돼지감자는 썰어서 팬에 볶아 티백에 담았다. 티백은 두고 먹을 수 있으니 괜찮은 듯하다. 큰 물병에 우려서 텃밭 친구들 모임이 있을 때 한 번씩 먹으니 금새 사라졌다. 우리에게 돼지감자는 그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나 뭐라나.

keyword
이전 02화3월. 봄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