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가 자란다
우리의 봄은 보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는 세계가 코로나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 1학년이 되었다. 다들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그해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지나갔고 시간과 함께 계절도 찾아왔다.
어쩌지 못해 더 시리게 느껴졌던 그해 겨울 어느 날이었다. 파란 지붕 집 담벼락 밑에서 보리를 함께 심는 것으로 우리는 만났다. 학교 근처 파란 지붕을 가진 집. 초록 대문 담벼락 밑에서 오랜만에 사람 소리가 들렸다. 불안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이었으리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때였지만 기왕 이렇게 모였으니 불안함은 마스크에게 맡겨두고 보리심기를 시작했다. 알알이 한데 모아 한줌씩 받아 쥐니 마음이 차올랐다.
보리는 겨울에 심는다. 담벼락에 심어도 예쁘고 꽃밭에 심어도 예쁘고, 심고 기다리다 지쳐 싹이 안 나려나 싶으면 어느새 고개를 내밀고 자라있었다. 모여있으면 더 예쁘고, 그 푸르른 싱싱함에 손이 먼저 나가 쓰다듬지 않고는 못베기게 만들었다. 소소한 팁도 생겼다. 보리는 한 방향으로 쓰다듬어야 부드럽다는 것. 이때쯤 입에 붙어버린 말이 생겼다. 이게뭐라고. 하아. 진짜 이게 뭐라고 나를 이렇게 감성적으로 만드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씨를 심으면 싹이나고 열매를 맺는다. 이런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이순간의 시간과 바람이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보리는 나에게 작물이 아닌 설레임되었다.
초록 보리도 예쁘지만 노랗게 익은 보리를 수확할 때면 어느 땅 부자 안 부러울 만큼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땅 한번 사본적 없는 내가 이래서 다들 땅을 사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노랗게 익은 보릿단을 묶어 나른다. 자기 키만한 보릿단을 나를 때 팔을 날개처럼 펼쳐 한 아름 안아 보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절로 웃음이 났다. 그래도 농사는 노동이라 힘들 만도 한데 아이들 표정이 너무 즐겁다. 웃음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흥겹다.
묶은 보릿단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두었다. 오며 가며 볼수 있게 벽에 널어 말렸다. 또 이게 뭐라고. 어느 명화 부럽지 않게 잠깐씩 서서 바라본다.
잘 마른 보리를 털어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기계가 없으니 옛날 방식으로 무모하게 시작하였다. 비닐 포를 바닥에 깔고 소리를 지르며 발로 밟고 낱알을 털어내고 어디서 들은 건지, 본 건지 바람이 필요하다고 말이 떨어지자. 누군가 선풍기를 꺼내왔다. 그 바람으로 껍질을 골랐다. 이게 뭐냐며 바람에 날린 껍질을 온몸에 뒤집어 쓰면서도 웃음이 났다. 우리의 웃음의 원천은 아이들이다. 원시적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재미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래도 아무리 원시적인 우리라도 볶는 건 무리다 싶어 이참에 시장에 함께 가서 기름집에서 볶아 보리차로 만들기로 했다. 핑계 겸 시장 구경도 하고 싶었다. 이럴 때 더 한마음이 되는 건 진리.
아이들이 묻는다
"보리가 보리차가 되는 거였어요?"
마트에서 파는 보리차가 보리로 만든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맞아. 근데 얘들아, 사실 우리도 만들어 본 건 처음이야. 신기하다 그치?"
어른들은 시장 구경에 신나고 아이들은 나들이에 신이 났다. 보리 볶는 것을 한참이고 바라보다 코로 눈으로 손으로 보리를 느껴본다.
"엄청~ 고소한 냄새가 나요~우리 보리라서 그런가 봐요~"
"한 알씩 먹어보자!!"
다 볶아진 보리를 조금씩 나누어 가진 아이들의 표정에서 기쁨이.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 귀한 보리차의 한 모금은 금보다 소중했다. 집에서 먹을 때마다 이건 어떻게 나고 자라고 어디서 볶아왔고 보리의 일대기를 들어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그래도 그 보리차 맛은 어찌나 구수하고 달콤하던지. 이게 내가 만든 맛이구나 하고 한알 한알 아껴 마셨다.
"캬아~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