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해든미술관
십수년전 이외수 선생을 화천에서 만났을 때, 그에게 화두는 '달'이었다.
당시 부인이 내온 나물 초밥(생선 대신 나물을 올린 초밥)을 앞에 두고
우린 '밤낮'이라고 하지 않냐. 밤이 먼저라고 그는 말했다.
힘 없이 나긋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벽 아래에 낸 창호지 창을 통해 더 낮은 톤으로 증폭됐다.
그와 얘기를 나누며
휘엉청 보름 밝은 달 보다
희미하지만 늘상 거기에 있는 흐릿한 달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 굵기로 벽을 기어 오르는 이름 모를 식물이 눈에 띄었고
계단 한 켠 누가 뱉어놓은 껌딱지는 하트 모양인 게 신기했다.
뜨겁게 타오르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잊혀진 내 젊은 날 열정은
뭉근하게 그냥 그 자리에 흔적처럼 있지만
그래도 열정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시는 타오르지 않을수도 있지만
김창옥 교수의 강의에서 들었는데, 이건 권태가 아니라 성숙이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