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선택한 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중국 내몽골

by JU

1990년대 아버지는 경영경제학 전공을 고집하셨고 나는 사학을 원했다.

'취직 우선'과 '자아 실현'의 충돌이었다.

내 고집이 승리했고 의기양양하게 인문학부(사학을 포함 11개과 중에 전공 2개 선택 가능)에 입학했지만

내 인문학적 소양이 미천함을 사학 전공 과목의 '아주 낮은 학점'으로 깨달았다.

미련이 남아 교수님과 상의했는데, 낮은 학점의 이유는 '니 사고는 특별하지 않았다'여서 길을 바꿨다.

사회에 나올 무렵 휩쓸리듯 취업시장에 나와 대기업 몇 곳에 합격했는데

돌아보면 그 곳에서 버틸 참을성이 부족했다.

결국 기자라는 직업으로 바꿨다. 하지만 줄곧 대기업의 연봉을 부러워하곤 한다.

내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을 때면 나는 그 선택의 기로로 돌아갔다. 다른 길을 택했다면, 그때 멘토가 있었다면, 내가 조금 더 현명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때 미숙했던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아픈 부모님이 밟혀 유학을 떠나지 못했던 24살.

무위도식하듯 절실한 것 없이 보낸 25살.

고시 공부에 열심인 친구를 세상 모른다며 얕잡아보던 26살.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채 무턱대고 이름 유명한 기업이면 최고라던 28살.

쉰이 다 와서야 그런 실수와 잘못과 그것으로부터 미흡하나마 배운 깨달음으로 그럭저럭 내가 되었음을 안다.

내가 공부는 늦었다고 생각한 40살에 기자 동료는 공부를 시작해 교수가 되었고 나는 그를 부러워했지만

술을 한잔 들이킨 그는 자신이 기자를 계속했다면 주요 보직은 자기 것이었다고 아쉬운듯 말했다.

그를 보며 나는 미숙했던 젊은 날의 내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고 가지 못한 길은 아쉬움 속에 남겨두기로 했다.

오래 산 과거보다 새로 살 앞날이 더 적은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하고 후회하고 안도할까.

드디어 오롯이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할수 있을까.

답을 예측하기보다 질문으로 남겨둔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4화노을을 대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