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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집들이 몰려온다

아파트 공화국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이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이미 12년(2010년)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70%를 넘어섰다. 공동주택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인천광역시, 서울시 등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들이다. 아파트로 한정하면 60%가 넘을 것이다. 


*공동주택이란 하나의 건물 안에 여러 세대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주거 형태다. 아파트는 그중 주택으로 쓰이는 층수가 5개층 이상인 주택이다. 


원래 아파트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 증진과 소통을 더 촉진하려 했던 주거 공간의 기획이었다.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는 팔랑스테르 계획에서 아파트를 통해 공동체주택을 실험했다. 공동주택 건물을 배치하고 건물 중심에 자리 잡은 공공시설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사람들의 소통과 순환이 이뤄지는 이상적인 아파트 실험이었다.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로운 만족이 가능한 합리적인 공간으로서 공동체의 총체적 삶이 실현되는 집합주거를 제안한 것이다. 

샤를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그러나 샤를 푸리에의 아파트는 관계와 소통의 공동주거가 아닌 단절의 주거형태로 변질된다. 이 변질은 한국으로 건너와 더 극단적으로 전개된다. 


한국의 아파트는 담과 울타리, 출입문이 있고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며, 출입증이 있는 사람들만 접근이 자유롭다. 출입구에 있는 경비시스템은 허락된 사람들, 즉 주민․예약된 방문객․ 배달원 등을 제외한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출입제한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주거용 건물 전체로 퍼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활발하게 공급되었던 도시형 생활주택과 같은 소형 건물에서도 외부인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막는 잠금 및 차단장치가 설치되었다.


출입을 제한하는 배타적 공간의 형성은 안전하지 못한 사회시스템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주거공간이 개인들의 방들의 집합체일 뿐, 외부로부터 단절됨으로써 고립감이 커지고 삶의 활기를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분리되고 파편화된 주거가 만연하게 된 것은 사적 소유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다. 


한국은 아파트를 어디에, 몇 평짜리를 소유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아파트공화국이다. 실제로 강남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으며, 은행 문턱의 높이와 심지어 평균 수명까지도 관여하는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서울대 입학은 아파트 가격 순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한국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재산, 소득, 교육 수준 등이 결국 사회계층을 결정한다. 부동산 계급 사회이다. 사람 죽고 사는 일이 신이 부여한 운명이나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부동산 계급의 계단’을 밟고 살다가 죽어가는 일이다.     

부동산 계급사회


집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물질적 소유만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 행복은 소통과 관계성이 단절되고 닫힌 개인의 공간 안에서는 얻기 어렵다. 길가로 불빛이 새어나가는 창이 있고, 문 앞에 누군가 걸터앉을 수 있는 작은 벤치가 있으며, 집을 마을에 개방함으로써 이웃과 소통을 조금이라도 늘려 활기 넘치는 마을에 사는 것. 이것으로 삶은 외로움에서 벗어나 풍부해질 수 있다.


교토에 살고 있는 마스다씨는 시어머니의 다다미방을 장소가 필요한 누구든 문을 두드리면 드나들 수 있는 마을의 사랑방으로 개방하였다. 집 앞에 작은 뜰이 있어 길을 지나는 사람이 걸음을 늦추고 엿보고 싶은 분위기가 나는 ‘들러주세요’ 집이다. 시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부터 해온 ‘그림편지교실’과 딸이 직장동료들과 보졸레 와인 시음회를 하고 앞뜰에서 바자회를 하고 생협에서 공동구매한 물건을 찾으러 오기도 한다. 


마스다씨는 자신이 힘들었던 시절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힘을 얻었던 기억과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던 때가 많았다고 한다.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것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그녀는 나이를 먹어도 지역과 관계를 가지기 위해 아예 집 자체를 이웃에게 개방하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평생을 함께 해온 자신의 집을 마을에 함께 살기 위한 거점으로 개방함으로써 고독하지 않고 충실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사회적 관계가 활발하고 정서적 만족을 추구하는 장소로서 '집'을 바꾸고자 하는 사회적 활동이 있다. 개인의 공간에서 함께 사는 공간으로 집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이런 집들을 공동체주택, 사회주택, 협동조합주택이라 부른다. 새로운 유형의 주택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새롭게 결합시키고 즐거움으로 가득 찬 삶의 질을 획득하려는 시도까지 다양한 활동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에 소재한 사회주택(사회적기업 (주)두꺼비하우징)

공동체주택, 협동조합주택, 사회주택 등 새로운 유형의 주택이 지닌 공통적인 특징은 반드시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 공유공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공유공간은 주거 안의 거실일 수도 있고, 단위 세대 밖 별도의 커뮤니티 공간일 수도 있다. 


공간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비용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담하고, 사용의 주체가 됨으로써 주인 없이 황폐화된 공공공간이 되는 것을 막는다. 새로운 유형의 집에서는 비용 부담도 회피하고, 운영관리도 외면하여 결국 황폐해질 수밖에 없는 '공유지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기, 물, 삼림과 같은 공유 자원이나 소유권이 없는 공유지는 소비에 제한이 없으므로 과다 소비로 고갈될 수 있다. 공유 자원이나 공유지가 개인의 지나친 욕심으로 황폐해져 공동체 전체가 파멸되는 현상을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한다.


공유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밥 먹기, 영화보기, 책 읽기와 같은 취미활동 함께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것으로써 관계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들이다. 공유공간이 있기에 교류와 소통이 일어난다. 이런 관계 맺음은 이웃과 공유하는 부분을 늘리고 고립된 시간을 줄이게 된다.


새로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거주자가 스스로 공간을 구성(컨셉디자인)하는 것이다. 기존의 주택은 건설업자 같은 공급자 중심으로 시장에 공급하고 소비자가 만들어진 공간에 삶을 맞추어가는 상품으로써 주택이었다. 새로운 집은 사용자 스스로가 요구와 형편에 맞추어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집들은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하나 공간을 구축해가는 수요자들과 사회적 공간으로 주거를 제공하고자 하는 공급자들이 있다. 새로운 유형의 집을 공급하는 공급자들은 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공간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경제조직이 많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같은 사회경제기업이 새로운 집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지닌 가장 적합한 공급자들이다.(국토연구원,『사회적 경제조직에 의한 주택공급 방안』, 2014)


우선, 소규모 공급에 의한 지역사회 통합성 증대이다. 사회경제기업에 의한 주택공급은 대체로 소규모로 이루어지며 생활권을 중심으로 공급될 것이며, 큰 규모의 공공임대주택건설에 비해 낙인효과*가 적어 지역사회 통합성이 높이질 것이다. 또 협동조합일 경우, 조합원들이 각종 모임을 통해 긴밀하게 소통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므로 커뮤니티가 활성화될 수 있다.


*낙인효과(Stigma Effect)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게 되어 부정적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현상이다.


둘, 사회적 약자의 주거소요 충족 및 다양한 주택공급이다. 대규모 공기업이나 이윤추구형 민간건설업체에서 달성하거나 관심을 두기 어려운 부분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사회경제기업이 소규모 주택건설에 효율적인 조직특성을 이용하여 달성 가능하다. 협동조합주택은 조합원이 주택공급 초기 과정부터 능동적으로 참여하므로 다양한 형태의 주택공급이 가능하다.


셋, 지역사회에 근거를 두고 사회적 목적 실현이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사회적 경제조직이 비영리주택을 공급하고 관리할 경우, 사회적 목적의 실현을 추구할 수 있다. 주택의 건설, 유지관리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입주 후 사회서비스를 연계하는 활동 등에 의미를 둔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넷, 쇠퇴지역의 재생이다. 사회적 경제조직의 주택건설과 관리 사업은 쇠퇴지역을 재생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영국의 주택조합들 중에는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실업이나 지역경제 쇠퇴 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곳이 많다.


다섯, 저렴한 주택공급과 주택관리비용이다. 사회적 경제 조직 중 하나의 형태인 협동조합주택은 일반적인 주택구입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정부에서 저렴하게 토지를 구입 또는 임차하여 주택을 건설하는 경우는 시장 가격보다 낮은 비용에 품질 좋은 주택공급이 가능하다. 또 조합원이 주택을 관리할 때는 운영에 필요한 원가 수준에서 관리비용이 결정되므로 주거관리비용이 저렴해지는 장점이 있다.     



한국의 사회경제기업이 공급하는 새로운 유형의 집은 사회주택, 협동조합주택, 코하우징, 컬렉티브하우징, 쉐어하우스 등이다. 새로운 유형의 집의 모델은 경기침체, 고령화, 도시쇠퇴 등의 사회문제를 먼저 겪으면서 주거부문에서 사회서비스 확대의 경험이 앞선 유럽 등의 다양한 주거유형을 빌려왔다. 


새로운 집은 소유보다 사용에 무게를 두고, 완성된 상품으로써 집의 가치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으로 더불어 살기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누리기 위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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