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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gito Feb 25. 2024

거짓말과 물어보지 않은 진실의 차이

라면 먹고 가실래요?

우리 회사는 일 년에 한 번씩 전체 회식을 했다

백화점 파트도 참석을 했는데

백화점 파트는 매장에서 일하다 보니

서로 잘 모른다

회사에서 볼 일도 없고

조직도에서 검색도 안된다

 

그날 우연히 옆자리 앉은 그녀가 내게 말을 걸

"몇 살이세요?" 나에게 물었다

"28살입니다. 올해 신입사원입니다"

라고 농담으로 대답했다

그때 32살이었지만,

그 당시 여자친구도 있었고 해서

별로 말 섞기 싫었다

딱 봐도 신입사원의 모습이 아닌데,

뻥치면 재수 없다고 생각해서

더 말 안 걸겠지 하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어머 어떡해.. 나 너무 늙었나 봐ㅜㅜ"

"저는 30살이에요"


"누나였어요? 저보다 어린 줄 알았죠

감쪽같네~ 오늘 성공했네요 어려 보이기...

아.. 속을뻔했네

곱게 늙으셨네요~"


식상한 멘트로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나의 거짓말에 속는 그녀의 순수한 모습을 보니

대화를 더 하고 싶어졌다

키도 크고, 늘씬하고 비주얼도 상당했다


회식이 파한 후

집에 가려 하는데


"언니들 눈치 보이니,

다른 동네에서 한잔 더 하실래요?"

상당히 적극적었다


나는 나이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굳이 물어보지 않은 진실(여자 친구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 사냐고 물었다

그녀가 사는 곳은

회식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택시 타고 그녀 집 근처의 이자카야에 갔다


서로의 연애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 만난 남녀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서로의 연애사이다


왜 헤어졌는지..

그 당시 어려움과 상대방에게 말 못 했던

이야기는 오히려 처음 보는 익명의 상대에게

쉽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괜히 걱정 끼칠까 봐

쉽게 이야기 못한다


내가 나에 대해 오픈하자

그녀도 최근 헤어진 남자 친구이야기를 했다

백화점은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다 보니

데이트하기 어려웠고

결정적으로 그 남자가 바람을 폈다


한껏 그 남자를 같이 욕해줬다..

나쁜 새끼네..  짠!!

진짜 그랬어요?  짠!!

에이 그러면 안 되지..  짠!!


그녀의 상처는 건배하기 딱 좋은 순간을 만들었다

그녀의 상처가 더 드러날수록

우리의 술병은 더 늘어갔다

그녀는 본인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너무 즐거워 보였다

나처럼 공감해 준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집 가서 한잔 더 하실래요?"

계획에 없던 상황이 전개됐다

아.. 이거 뭔가 복잡해지는데...

나이도 속인 데다가

처음 본 회사사람의 복잡해지는 관계가 가져 올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여자 친구의 전화는 계속 오고 있

(물론 무음으로 사전에 바꿔놨었지만)


자기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는

그 짧은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


그냥 솔직히 이야기하면 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그런데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나의 모습에

그녀가 빵 터졌다

내가 뭔가 순진해서 망설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저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누나인티 너무 났죠?

이야기 조금 더 하고 싶은데

너무 늦은 거 같고

집에 맥주 사놓은 거도 있고 해서

한 이야기예요" 라며

민망했는지 혼자 빵 터진 웃음을 애써 참으며 둘러댔다

진짜 이야기만 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요?"

내가 짓궂게 묻자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몸을 비비 꼬면서 말을 못 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 모습에 도저히 녀를 보낼 수 없었다

일단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집 앞까지 같이 왔다


밤 12시

그녀의 집 앞에서

무음의 핸드폰은 여친의 전화로 계속 반짝거리고 있고

그녀는 내 앞에서 자기 집에 가자고 하고

내 머릿속은 이제 술로 인해

이성적인 계산이 불가한 상황에 왔다


빌라촌이라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누군가 움직였는지 입구등이 켜졌다

그 입구등 불빛 사이로 보인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멀어지려 한 거짓말은 우리를 연결한 소재가 되었고

"여자 친구가 있다"라는 말 하지 않은 진실은

나를 그녀의 집 앞까지 데리고 왔다


나도 후회하고, 그녀도 후회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결정을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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