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이렇게 온다
정말 가을이 온 걸까.
시간은 늘 그렇듯 빠르다. 저녁이면 바람은 한결 가벼워지고, 아침에는 귀 옆을 스치는 선선함이 나를 깨운다.
언젠가부터 창문을 열면 달라진 공기의 냄새가 먼저 느껴진다. 햇살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그 속에도 이미 낯선 기운이 섞여 있다.
계절은 언제나 이렇게 스며든다.
화려한 장식 없이,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어느 날 문득 달라져 있는 공기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계절이 바뀌었음을 눈치챈다.
내 여름은 과연 뜨거웠을까.
잠시 떠올려 보지만, 뚜렷한 장면 하나가 선명히 박혀 있지 않다.
무엇 하나 기록할 만한 사건이 없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여름은 늘 그런 식으로 내 곁을 스쳐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열기와 땀, 그리고 묘하게 공허한 여운만을 남기며.
누군가에게는 불타는 계절이었을지 모르겠다.
여행으로, 사랑으로, 새로운 도전으로 여름을 가득 채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열정도, 화려함도 없이, 묵묵히 흘린 땀만이 계절의 흔적이 되어 남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 앞에 목소리를 크게 내는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내 몫의 땀을 조금은 흘리면서, 그 무게만큼의 삶을 버텨낼 것이다.
뜨겁지 않아도 괜찮다. 요란하지 않아도 괜찮다.
계절은 결국 흘러가고, 나는 그 속에서 내 몫의 하루를 다만 성실히 채워 넣으면 된다.
가끔은 바람을 닮고 싶다.
가볍게 불어와 스쳐가지만,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존재를 드러내는 바람처럼.
선선하고 담백하게,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무늬를 남기며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오늘도, 내일도, 단순히 스쳐가는 날로만 머물지는 않으리라.
조용하지만 분명히 내 흔적이 깃든 하루, 그 하루들이 모여 또 한 계절을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