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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연주 Jul 30. 2023

손님, 즐겁고 편안한 지구 여행 되십시오

동네 미용실의 인사법

깔끔한 흰 셔츠를 입고 탈색한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넘겨 묶은 50대 남자 원장님이 정중하게 인사하며 반겨주었다.


“아이고, 다리를 다치셨군요~! 이쪽으로 앉아계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깔끔한 단발머리로 잘라드릴까요?~”


거울 속 미용실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미용실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나무 장판과 벽은 매일 닦아서 관리한 흔적이 역력했다. 코팅된 고동색 나무 벽면은 형광등 빛을 반사하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벽면에는 곧은 절개를 뽐내는 소나무와 보기만 해도 시원한 한국 절경을 담은 동양화가 걸려있었다. 서랍장에는 헤어제품들과 함께 돌탑이 쌓여 올라가 있었고, 머리 깜는 공간 천장에는 연꽃 그림이 붙어있었다. 그럼에도 원장님의 취향이 반영이라도 된 듯,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그루트 피규어가 귀엽게 서랍장 위에 놓여있었다.


사각사각 커팅 소리와 함께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아우라를 풍기는 이곳에 Port of note의 More than Paradise가 흘러나왔다. 단출하지만 깔끔한 이 동네 미용실에 소울풍한 보사노바 음악이 공간을 휘젓고 다녔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과 음악이 만나 미용실에 앉아있는 이 순간이 더욱더 특별해졌다. 우연한 공간에서 내가 요즘 듣고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잠시나마 노래가 끝나지 않길 소망했다.


한 올 한 올 머리를 섬세하게 잡아당기며 커트를 하고 있는 원장님의 손끝에 시선이 모아졌다. 추측하건대 수 십 년간의 미용일로 인해 엄지손톱은 벌어져있었고, 핏기 없이 푸석푸석했다. 물기만 닿아도 아플 것 같은 그 손으로 손님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시원하게 감겨주었던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의 부리부리한 눈매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고유의 카리스마를 감출 순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조용히 머리 자르는 일에 집중하던 원장님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예전부터 여기 앞을 지나가면서 항상 와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문득 생각나서 예약하고 왔어요~! “

“하하하~그렇다면 손님은 여기 올 운명이었군요. 이것도 인연입니다. ”

“손님, 여기에 왔으니 제가 장담하건대, 다리가 금방 나을 것입니다. 저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요.”


필자는 테니스를 치다 발등이 골절되어, 6주 넘게 목발을 짚고 다니고 있었기에 이런 응원의 말 한마디에도 힘이 날 뿐이었다.

꺄르르 웃으며 어떤 능력인지 물어보았다.


“저에게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


동그래진 눈으로 거울 속 원장님을 바라보았다. 눈에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그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심스레 원장님은 운을 떼었다.


“저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그 이전의 기억부터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지구로 보낸 것 같은데, 아직까지 왜 내가 지구로 떨어졌는지 그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떨어져서 내려갔는데 그 환한 빛에서부터 계속 멀어지더니 갑갑한 공간에 턱 하니 갇혀버렸어요. 그리고 답답하니 꺼내달라 발버둥 쳤지요. 그게 바로 엄마들이 느끼는 태동입니다. 그리고 엄마에게서 조금만 참아, 곧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안심의 소리를 들었어요. “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서만 보던, 태어날 때부터의 기억을 가진 사람을 동네에서 마주할 줄이야!

머리 자르러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흥미진진해진 필자는 그의 인생 스토리와 가치관을 들으며 그의 스토리라인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한 살 때쯤이었어요.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고, 어머니는 두꺼운 외투로 나를 감싸고 계셨지요. 동네 옆집 아주머니가 집에 놀러 오더니 이제 곧 돌인데 돌잔치 안 해?라고 물어보았어요. 어머니는 일주일 뒤가 설날이니 설 준비해야 하니 돌잔치는 안 한다고 하셨지요 “


“어머니께 물어봤어요. 왜 돌잔치 안 해줬냐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하더라고요 “


“저는 6살 때부터 데자뷰가 보였어요. 처음엔 이게 무엇인지 몰랐는데, 형상 같은 것이 지나갔지요. 내가 어찌 살든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것인가? 그러면 내 마음대로 살면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지요”


“같이 일하는 미용실 실장님이 제 얘기를 믿지 않아서, 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오늘 어떤 손님이 오는지 맞추는 것이었지요. 그 당시는 예약을 하지 않는 미용실이라 어떤 손님이 올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날 저는 어떤 손님이 오는지 3명이나 맞췄어요. 그러더니 신기하다며 제 말을 믿었지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여기가 미용실인지 TV 프로그램 속에 내가 앉아있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저는 이 지구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태어날 때부터 줄곧 생각해 오고 있어요. 60살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은퇴를 하면, 그때부터 왜 내가 지구에 왔는지 찾아볼 거예요. 저는 히말라야, 네팔에 가고 싶어요. 우리 지구의가장 태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거든요. 지구에 날 보낸 그 이유를 알게 되면 저는 미련 없이 지구를 떠날 겁니다”


지구를 떠난다는 말이 오묘하게 서글프게 들리면서도 동시에 홀가분한 느낌을 받았다.


“지구는 3차원의 세계예요. 하지만 우주는 12차원의 세계라고들 하죠. 즉 지구는 수준이 좀 낮은 행성입니다. 한 단계 수준이 더 높은 차원으로 가야 해요 “


필자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지만, 살아 숨 쉬는 이 세계와 우주와 존재에 대한 신비로움은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엉뚱하면서도 독특한 발상을 지닌 이 원장님의 이야기가 감히 과장된 허풍이나 놀림거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머리를 다 다듬고, 얼굴에 있는 머리카락을 털어주며 원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런 인사말은 누구에게나 하지는 않지만.. 손님한테는 해드리고 싶네요”


“부디, 즐겁고 편안한 지구 여행 되십시오”


머리를 다 자르고, 위 인사말을 듣고 나니, 더글라스 애덤스가 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한 단편이 스쳐 지나갔다.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을 컴퓨터에게 던졌다. 750만 년 뒤, 고민 끝에 컴퓨터는 답했다. “답은 42입니다.”




2023년 7월 27일 목요일, 별과 달이 간판에 붙어있는 미용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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