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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May 10. 2024

우리도 여기 이렇게 살고 있어요.

아이의 장애를 숨기지 않기로 하다.  


"영희 누나 다운 증후군인 거 보고 놀랐어
근데 난 그럴 수 있죠.
다운 증후군을 처음 보는데 그럴 수 있죠!
놀랄 수 있죠!
그게 잘못됐다면 정말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몰랐다고요.
그래서 그랬어요. 다신 안 그래요 이제."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정준의 대사이다.

나 역시 커가면서 장애인을 볼 기회가 많이 없었다.

가까이에서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을 마주한건 우리 아이가 처음이었다.

내 속으로 열 달 품은 아이였지만 어떻게 키워야 할지 처음엔 난감하고 어려웠었다.

이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극히 적었기에 , 어떻게 장애를 가진 아이를 기르고 양육해야 하는지 물어볼 곳도 없었다.

아이를 가지기 전 사놓았던 육아 백과사전은 나에게 쓸모없는 책이 되었다.

대신 뇌성마비에 대한 책을 사서 공부하여야 했다.

뇌성마비… 처음엔 이름부터 무서운 이 책을 내손으로 클릭해 구매하는 것조차 무서운 일이었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대할 때 낯설고 어색해하며, 긴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준의 말처럼 , 장애인을 대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엄마인 나도 내 아이가 낯설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장애 아이를 처음 접하는 다른 이는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장애를 가진 아이와 외출을 한번 하려면, 이고 지고 챙길 것들이 많기에, 큰 마음을 먹어야 밖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밖을 나가지 못했던 더 큰 이유는 다른 사람의시선에 대한 나의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장애인인 우리 아이에게서 뭔가 다름을 느끼고 호기심 있게 쳐다보는 또래의 아이에게 아이를 소개해주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미안해, 준이가 쫌 아파”

이렇게 말해 놓고 , 순간 “내가 뭐가 미안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민망한 기류가 흐른다.

나의 태도와 말부터가 자연스러워야 상대방도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자연스럽게 대할 텐데, 그렇게 대처한 나의 말에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당당해져야 했다. 철판을 깔아야 했다

장애인 가족도 여기 이곳에 이렇게 살고 있음을 당당히 알려야 했다.

나와 아이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많이 비출수록, 사람들이 장애인을 어렵지 않게 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를 보여주는 일은 처음엔 두려운일이었다.

문을 박차고 첫발을 떼는 것부터가 도전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밖을 나와도, 아픈 아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유모차 가리개로 가리고 다니곤 했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우리를 동정하거나 안타까운 가족으로 보진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과 열등감에서 나온 두려움이었다. 

충분히 행복했음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온전히 행복하지 못한 시간들이 있었다.

스스로가 장애물을 만들어 그 허들을 넘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바뀌길 바라기 전에 엄마인 나부터 장애에 대한 편견과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고, 겉모습만 조금 다를 뿐,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도 평범한 가족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 가끔은 감격할 만한 행복도 느끼며,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곁의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임을 나 스스로부터가 온전히 인정해야했다.



나는 아이와 자주 여행을 자주 다니려 한다.

다른 아이들의 틈에 섞여 목튜브를 끼고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도 시킨다.

굳어있는 팔다리를 애써 움직여 보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아이이지만 참 대견스럽고, 너는 시련 앞에 굴복하지 않는 진정한 winner구나 싶을 때가 있다.  


아이 밥을 배로 주는 위루관 피딩을 할 때도 당당히 밖에서 먹인다.

예전엔 아이 밥을 먹일 땐, 수유실이나 자동차에서 숨어 먹이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용기와 배짱이 필요했다.

배로 밥을 먹는 아이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밖에서 피딩을 한다.

물론 우리를 유의해서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이 작은 행동은 나에게 있어서 작은 도전이며, 혁명이었다.  



요양원 호스피스 동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한 간호사 친구가 한 말이 기억난다.

아무리 사회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도 결국 크고 작은 장애를 안고 죽게 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어딘가는 한두 곳이 아파 미래의 장애인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겸손해지면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말이 조금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왜면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미래 장애인이 될 나를 위해 , 그리고 나의 가족이 겪게 될 수도 있는 일을 위해,  지금부터 조금씩 우리가 장애인을 보는 눈빛과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내가 본 장애인들은 나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강인했다. 다름이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다름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줬다.

그들은 때론 고차원적인 영감을 준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나도 여기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 당신도 용기를 잃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멀쩡한 몸으로로 살기 힘든 이 세상,

장애라는 핸디캡을 가지고도

조개 속 진주알처럼 값지고 반짝이는 미소를 띤 채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그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봐 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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