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가 Sep 02. 2024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랑

2. 사랑은 상대가 싫다는 것을 안 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은 지나치게 사랑이 많다.


문제는 대개 그 사랑을 자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준다는 거다. 부모가 해주고 싶은 사랑, 또는 부모가 과거의 부모로부터 받고 싶었던 사랑이다.


“김치(반찬) 해 놨으니 가져가렴!” 심지어 “현관 앞에 놓고 간다”라는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의 사랑이 누구에게는 반갑지만, 누구에게는 불편하다.


두 마음이 어긋나는 순간 “엄마(시어머니) 때문에 못 살겠다. 힘들다.부담스럽다”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여기저기서 딸과 며느리들이 몰려들어 동조의 댓글을 단다.     





연구 결과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 부모들의 이 고질병은 분명히 유전이 맞다.

젊은 시절에 그렇게 짜증 내던 부모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라때는 명절 연휴를 지나 출근을 하면, 점심시간에 식당 여기저기서 며느리들의 성토대회가 열렸다.


“먹을 만큼만 부쳐서 맛나게 먹고 끝내면 좀 좋아? 진저리를 치며 그 많은 전을 부치느라 온몸이 기름 냄새로 진동했잖아?”, “ 꼴도 보기 싫은 전을 괜찮다는 데도 왜 봉지 봉지 싸주시냐고? 화가 나서 미칠 노릇이라니까!”


냉장 칸과 냉동 칸을 굴러다니던 전은 결국 음쓰 통에 버려졌다. 그렇게 굴러다니던 (시)부모의 사랑은 상한 된장, 시어 빠진 김치, 바구미가 들끓는 상한 쌀의 모습으로 음쓰 통 주변을 맴돌았다.





가끔 딸 집에 다니러 오신 친정엄마는 그렇게 나뒹구는 부모들의 사랑을 아파트 음쓰 통 주변에서 발견하시곤 기함하셨다. “세상에! 누가 된장을 항아리째 버렸더라? 요즘 것들은….”


젊은 시절 울 엄마 역시 그랬다.


제발 먹을 만큼만 하자고 애원해도 자식들이 다 먹지도 못할 몇백 포기의 김장을 고집하셨고,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며 담은 김치는 남아돌아 결국 여기저기 퍼주시느라  난리 블루스를 추셨다.


손 큰 울 엄마는 욕심껏 바리바리 미나리를 베어 차에 실어주시고, 감당하기 어려운 풋고추와 푸성귀들을 강제로 내게 떠안기 셨다. 다음 날 지친 몸으로 퇴근한 나는 차마 엄마의 사랑을 버릴 수 없어서 다듬고 봉지 봉지 갈무리하느라 또 한 번 지치곤 했다. 결국 다 먹지 못해 야채 칸 한구석에서 뒹굴다 내다 버린 엄마의 사랑도 부지기수다.  






돌이켜 보면 내가 원했던 엄마의 사랑은 지금 내 딸이 딱 원하는 그만큼이다.

내가 원한 종류의 푸성귀를, 내가 감당할 만큼만 가져와, 내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 정도!    

 

그러니 제발~ 싫다고요. 됐고요 라는 딸과 며느리에게 "아니~ 이게 얼마나 몸에 좋은데 다 너 생각해서 하는 거야"라면서 안기지 말자.

돈 버리고 몸 버리고 결국 사랑도 잃는다.


자고로 사랑은 내가 주고 싶은 방식이 아니라 받을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는 거다.


이전 01화 엄마! 깻잎은 열 장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