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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명상

06. 걷기명상의 루틴

걷기명상은 단순히 걷는 행위에 ‘마음챙김(mindfulness)’을 더하는 실천이다. 무작정 걷는 것을 1년 넘게 하다가, 자연스레 의도적이고 반복 가능한 루틴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걷기명상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의식(ritual)이 된 것이다. 의식의 구성요소는 호흡법과 실행루틴 그리고 명상의 주제다.


우선 걷기 시작 전 루틴은 가볍게 몸풀기와 호흡 고르기다. 코로 천천히 들이쉬며 4초, 1~2초간 잠시 멈추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며 6초. 시간을 잰다기 보다 그냥 하나, 둘, 셋, 넷 머리로 세며 들이쉬고, 잠시 멈추고, 길고 천천히 내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별 생각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숫자를 세며 호흡을 반복한다. 서두르지 않는다.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걷기 시작한다. 걸으면서도 호흡의 순서와 리듬은 동일하게 유지한다. 숫자를 세며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걷는 것이다. 편안한 보폭과 규칙적인 호흡은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유지된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발이 땅에 닿고 떨어지는 감각을 느끼고,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들을 판단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떠오르는 생각들 그리고 온갖 감정들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지’하면서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지도 않고, 집중하려 하지도 않은 채, 규칙적으로 호흡을 하며 묵묵히 걸어간다. 30분, 한시간, 때로는 두시간... 집중적으로 걷는 것이다.


핸드폰이나 시계를 가져가지 않기에 공원을 한바퀴 돌기, 특정 장소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목표를 정하지만, 초기엔 공원 두바퀴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변의 나무, 햇살, 구름, 바람 같은 것들이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럴 땐 더 느리게 걷거나 잠시 멈춰서 주변을 바라보거나 그저 오감으로 받아들인다.


얼마나 걸을 지는 나의 내면이 알려줄 것이다. 걷기명상이 익숙해지자 경로가 바뀌어도 집에 돌아왔을 때 총 소요된 시간이 거의 비슷했다. 마치 나의 호흡처럼 걷기명상의 의식 자체가 안정되었다. 말 그대로 루틴(routine)이 된 것이다.


집에 도착하기 5분 전부터는 마무리가 시작된다. 그날 걷기명상을 하며 느낀 점이나 생각이나 솟아올랐던 감정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걷는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들을 차분하게 정면으로 마주할 준비가 되었음을 깨달을 때가 많았다.


지금 여기에 있음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과 평온함이 내일 다시 걷게 만들어준다. 루틴을 만들었지만, 결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유연함도 중요하다. 걷기명상은 나의 삶과 연결되는 시간이니,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집착 없이 반복 가능한 즐거운 의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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