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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명상 – 나를 보는 걷기 5

5. 도망치듯 떠난 사람들 – 회피와 회복의 경계에서

가끔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사실 재방송하는 채널이 많이서, 채널을 돌리다보면 자연스레 마주친다.)

산속 오두막에 살아가는 한 중년 (또는 중년보다는 약간 더 나이든) 남성,

낡은 솥단지에 밥을 짓고, 산나물, 약초를 캐고,

조용히 강을 바라보며 웃는 그 얼굴.

그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부럽다는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왜일까?


그들이 가진 무소유의 삶 때문일까?

누구의 간섭도, 경쟁도, 성과도 필요 없는 세계.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고,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존재 방식.


하지만 더 들여다보면 대부분

그 자리에 스스로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다.

밀려난 사람들, 혹은 버텨보려다 끝내 떠나온 사람들이다.

실패한 사업, 끊어진 가족관계, 파탄난 부부 사이...

또는 도무지 회복할 수 없었던 자기 파괴적 삶

그들은 세상에서 한참을 버티다,

결국 어느 날 손을 놓았다.

그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 장면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저건 도망일까? 아니면 용기일까?”

정답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산속에 들어간 자연인들이 모두 같은 모습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원망을 품고 있고,

과거에 대한 분노를 품은 채 살아가는 듯 하다.

그런 그들에게 산은 피난처일 뿐,

삶의 태도나 시선은 여전히 ‘과거의 나’에 묶여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말한다.

“다 지난 일이에요.

그때는 내가 너무 어리석었고,

그냥 이제는 조용히 살고 싶어요.”

“내가 많이 미안했어요.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잘 살고 싶어요.”


이런 말들 속에서 난 회피가 아닌 회복의 태도를 봤다.

비록 현실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스스로를 마주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의지.


문득 생각했다.

현실이 도저히 바뀌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

스스로를 더 망가지게 하기 전에

'거리를 두는 것'은 오히려 책임 있는 선택일 수 있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절제,

포기가 아니라 분별,

도피가 아니라 정직함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갔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그 삶을 살고 있느냐’ 아닐까?

산속에 있어도

누구보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시 한복판에서도

스스로를 숨기고 도망만 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결국 삶은 지리적인 위치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는 것 아닐까?


걷기명상처럼,

삶도 결국 한 걸음씩 살아내는 일이다.

그 걸음을 멈추고 싶다면 멈춰도 좋다.

그러나 그 멈춤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시작점이 되기를...

그러면 산속이든, 도시 한복판이든

자신의 삶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선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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