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의 뿌리는 땅에 완강히 들러붙어 있고 줄기는 바람에 끌려간다. 땅과 바람 사이가 억새의 삶의 자리다. 억새는 땅에 못박힌 운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억새는 다만 바람에 몸을 뜯김으로써 그 운명에 저항한다. 흰 씨앗들을 모두 바람이 훑어가면 억새는 못박힌 자리에서 죽는다. 순응과 저항이 다르지 않다.”
(김훈 지음, 「라면을 끓이며」, 문학동네, 2015, 373쪽)
내겐 가꿀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부려 산 시골 돌짝밭 땅이 있다. 처음에는 돌멩이도 치우고 잡초도 뽑고 농막용 컨테이너 주변에 잔디까지 심었다. 어느 때부턴가 잔디밭에 억새가 군데군데 터를 잡았다.
애써 가꾼 잔디가 아까워 억새를 뽑아보려 했다. 하지만 억새는 자기 자리라도 되는 양 뿌리를 단단하게 내려놓고 있었다. 아니, 내려놓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못처럼 박혀있다고 하는 게 맞다. 마음 여린(?) 나는 땅에 박혀 사는 억새의 운명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겠냐며 그만두었다.
작가는 ‘땅과 바람 사이’가 억새 삶의 자리라고 말한다. 불쑥 내 삶의 자리는 어딜까? 하는 물음에 붙잡힌다. 돌아보니 나는 부모, 아내, 아이 그리고 내가 아끼는 모든 존재와의 사랑에 못 박혀 어쩔 줄 모르며 살았다. 지금도 그렇게 산다. 주구장창 장난(作亂)치는 시간이라는 바람에 뜯겨가며.
해서, 작가의 문장에 땅 대신 ‘사랑’을, 바람 대신 ‘시간’을 슬그머니 넣어 내 삶의 자리를 확인해 본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의 뿌리는 사랑에 완강히 들러붙어 있고 줄기는 시간에 끌려간다. 사랑과 시간 사이가 내 삶의 자리다. 나는 사랑에 못박힌 운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나는 다만 시간에 몸을 뜯김으로써 그 운명에 저항한다. (사랑의) 흰 씨앗들을 모두 시간이 훑어가면 나는 못박힌 자리에서 죽는다. 순응과 저항이 다르지 않다.’
ⓒ 정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