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솔 Sep 08. 2023

초유체

두 사람이 함께 숲을 걷는다. 그 숲은 언젠가 두 사람이 함께 걷던 숲이다. 언젠가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함께 그 숲을 걸었지만 이제 두 사람은 손을 잡지 않고 그 숲을 걷는다. 아니, 사실은 숲을 걷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다만 숲의 입구에 서 있다. 


언제라도 숲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숲의 입구에 세워진 그네를 탄다. 이 그네는 언젠가 두 사람이 함께 탔던 그네지만 이제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그네를 탄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이 그네를 타는 것을 지켜본다. 


가방을 맨 채 선 채로


그네를 탄 사람은 그네를 타지 않은 사람이 앉아서 자신을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방을 맨 그의 어깨가 무겁지 않게. 그네에서 내려와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두 사람은 함께 숲을 빠져나와 악수를 한다. 따듯한


그 손을 

다른 한 사람은 차갑다고 생각했을 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을 다른 한 사람은 지켜본다. 사라지는 사람이 뒤돌아보지 않았으므로 지켜보는 사람은 사라지는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한 번


그 사람이 뒤돌아본다. 이 장면, 어디에선가 본 적 있어 어디에서였더라? 이름을 부른 사람은 생각하지만 묻지 않는다. 이름을 불린 사람이 슬프지 않게. 사라지는 사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


한 사람은 혼자 숲을 걷는다. 그 숲은 언젠가 두 사람이 함께 걷던 숲이다. 언젠가 숲의 끝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한 번


그 사람이 뒤돌아봤을 때, 이름을 부른 사람이 웃는다. 그 사람은 모르게.



이전 06화 베단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