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질문

당신의 봄

그리고 함께할 수많은 계절

by 메이쩡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가야겠다고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주 아빠와의 통화에서 아빤 분명 MRI를 찍었다고 했고 찍고 나와서는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했다. 그런데 가슴 한편에 차마 똑바로 묻지 못하겠는 마음과 걱정의 마음이 한데 피어올라서는 금세 사그라져버렸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해 버렸지만 이상하게도 전과 다르게 마음이 쓰였다.


" 이번 주에 내려갈게요."


나의 무심한 말에도 수화기 너머 보이지 않는 기쁨이 느껴졌다. 오래지 않아 내려가는 건데도 자꾸만 반가워하는 부모의 목소리가 싫지 않아 나는 더 생색을 냈다.

이상하게도 일주일 동안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꿈을 꿨고 요즘 잘 꾸지도 않는 꿈 때문에 부쩍 피곤해졌다.


친정을 가는 길은 멀지만 그렇기에 여행하는 기분이다.

부모님 선물은 하나 없이 그저 아이 손만 잡고 친정 문을 벌컥 열었지만 무언가 대단한 보물이라도 가져온 것처럼 그저 의기양양했다. 그때는 그저 손주가 보고 싶으셨겠지 하는 지레짐작에 자신의 딸을 살피는 부모의 눈길은 그저 무심코 지나칠 뿐이었다.


" 아빠 그때 병원에서 뇌 찍었다고 하지 않았어?

의사가 뭐래?"


부모님도 먼저 꺼내지 않은 이야기를 굳이 묻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인데 나에겐 그 당연함이 두려웠다.

꼭 알아야 할 진실 앞에 자꾸만 두려워 숨는 나를 발견하고 난 드디어 침묵을 깼다. 아무렇지도 않게 전처럼 별거 아니었다고 대답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셨으면 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낯선 침묵이 몇 초간 이어졌다. 아주 살짝이었지만 당황해하며 멈칫하는 아빠의 얼굴을 보고 이내 심장이 벌렁였다.


" 아빠 지난주에 수술했어. 별거 아냐.

하루만 입원하고 나온 건데 뭐.

근데 이상하게 뇌 MRI를 찍고 싶더라고

매번 바빠서 기회가 안 됐는데 네 엄마 콜레스테롤

중간점검한다니에 이때다 싶어 했지 뭐.

근데 결과가 바로 나왔는데, 좋지는 않아 보이는데 판독을

정확히 못하겠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네. "


잠시 아빠의 말을 멈춰 세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딱히 떠오르지 않을 만큼 놀랐고 그저 아빠의 안색을 살피며 계속해서 듣고 싶었다.


" 그래서? 그래서 대전으로 간 거야?"

" 그렇지. 여긴 읍이니까 그런 진료를 볼 의사가 없는 거지."


아빠는 그렇게 읍내의 의사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진료기록을 가지고 멀지 않은 대전의 큰 병원으로 향했다. 얼마나 긴장했을까 얼마나 걱정됐을까 나는 마치 아빠의 그날에 함께 동행해 아빠의 표정을 살피고 있는 것처럼 아렸다. 아빠의 걱정과 불안이 보이는 듯했다.

아빠도 아프면 아픈 거니까..


아빠가 큰 병원을 찾은 그날 다행히 뇌 전문가인 교수가 근무하셨고 가까운 날로 수술 날짜를 받았다.

의사가 말하길 뇌에 물집이 잡혔다고 했다. 이게 언제고 터지면 뇌출혈이나 뇌경색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통 이렇게 물집이 잡혔다고 해도 크지 않은 통증이기에 가벼운 두통으로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고 더불어 이렇게 건강할 때 미리 비싼 돈 들여 찍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고 했다. 미리 발견하신 게 천만다행이라고.

이걸 우리 아빠는 오래지 않은 기간에 무려 두 번을 해냈다.


얼마 전 심장이 콕콕 쑤신다며 다짜고짜 찾아간 병원에선 큰일 날 뻔하셨다며 4개의 혈관을 뚫으시더니 이번엔 뒷목이 약간 뻐근하다며 찾아간 병원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의 시한폭탄을 제거한 것이다.

의사는 뇌는 그야말로 사건이 일어나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아빠에게 운이 좋다고 했다.

아빠가 2번의 수술을 한 이곳은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심혈관과 뇌에는 일가견이 있는 전문병원이라고 했다.

아빠는 그렇게 겨울과 초봄 연이은 두 계절을 그 누구보다 의미 있게 보냈고 그렇게 다시 따뜻한 봄을 맞았다.


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빠.

매일 듣기에 그저 맞는 말이지만 특별할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아빠의 다시 얻은 시간을 경험하니 이젠 다르다.

아무렇지 않은 오늘의 평범한 하루도 그저 감사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하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막 잠들려고 누워있는 아빠에게 달려가 살포시 안겼다.


" 아빠, 울 아빠 고생했어.

아빠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해줘요."


부모님은 딸 가족에 안방을 내어주곤 덥다며 거실에 요를 폈다. 우리가 들어간 뒤에도 두런두런 두 분은 한참 동안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한밤이 또 지나고 아빠가 말했다.


" 딸이 걱정해 줘서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아빠가 스스로 지켜낸 시간들에 너무나 감사했다.

앞으로 그 소중한 시간들을 알록달록 어여쁜 물감으로 계속해서 그려나가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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