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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디는 알쏭달쏭

사실은 달팽이 이름이었다

by 알쏭달쏭

올해 6월 비가 많이 내린 날 아침, 제리 등원차량을 기다리고 있는데 뭔가를 발견해 버렸다.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 달팽이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손바닥 위에 달팽이를 올려뒀더니 첫째 제리가 한참을 쳐다봤다.


"너무 귀엽다. 달팽이 키우고 싶다. 엄마 우리 달팽이 키우면 안 돼?"


달팽이를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던 내가 당황해서 급히 핑계를 댔다.


"아 달팽이 집에서 키우려면 아빠의 허락이 필요해. 아빠한테 이따가 물어보자."


라고 한 뒤 일단 아빠가 거절해 주기를 바랐다. 애 둘하고 본인 키우기도 벅찬데 달팽이라니.. 있을 수없는 일이었다.


제리가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아빠에게 뛰어갔다.


"아빠, 우리 달팽이 키우면 안 돼?"


'응 제발 아니라고 해라.'


"달팽이? 그래! 달팽이 키우려면 뭐가 필요한지 검색해 보자."


평소의 남편 성격과는 다르게 의외로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여보 그런데 우리가 달팽이를 키우다가 죽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좀 신중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그래? 음 달팽이를 키우려면 먼저 집하고 먹이하고 습도가 중요하네. 제리야 아빠랑 엄마가 달팽이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다시 말해줄게."


"아..."


남편은 달팽이를 잠깐 키우다가 다시 보내주는 건 괜찮을 것 같다고 했고, 다음날 남편과 다이소에 가서 달팽이집과 흙을 사 왔다. 이걸 사는 중에도 '이게 맞나?' 싶었지만 제리가 너무 간절히 원하고 있어서 일단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비만 오면 다시 보내주는 조건으로...


드디어 집에 새로운 생명체가 들어왔다. 이름은 제리가 지었다.


"엄마 '알콩달콩'이라고 지을까? 알쏭달쏭이라고 지을까?"


"음, 제리가 원하는 대로 해. 제리가 데려온 아이니까."


"그럼 나 알쏭달쏭이라고 지을래."


"그래. 알쏭달쏭이라고 하자. 귀엽다. 달팽이라서 '달'자를 넣은 거지? "


"응 맞아."


제리는 작명센스가 좀 있는 편이다.

달팽이가 죽으면 제리와 티커가 많이 속상해할까 봐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열심히 뿌려주었고, 양상추를 갈아주었다. 그런데 달팽이를 키운 지 일주일쯤 되자, 집 안에 들어가 흰 막을 치고 움직이지 않았다. 불길하다. 벌써 죽은 건가? 달팽이에게 물을 뿌려봤는데도 움직이지 않자, 제리를 불러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제리야, 엄마가 매일 물을 뿌려주고, 양상추도 줬는데 달팽이가 뭐가 안 맞았는지 죽어버렸어. 아쉽지만 '알쏭달쏭'에게 안녕해주자."


제리는 많이 속상해하며 달팽이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알쏭달쏭아 안녕. 잘 가."


티커는 죽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

"어떻게 하면 '알쏭달쏭'이를 살릴 수 있을까? "

하고 묻기도 했다.


"아쉽게도 죽은 건 살릴 수 없어. 티커도 이제 빠빠이 해주자. 알쏭달쏭이 안녕."

하고 설명해 줬더니 티커도 마지못해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비닐봉지에 넣어 버리려는 순간 달팽이가 다시 살아 나왔다.


'이럴 수가!'


"얘들아~ 달팽이가 살았어. 알고 보니 안 죽었었나 봐. 흰 막을 치고 움직이지 않아서 엄마가 죽은 줄 알았어."


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다.


"와~ 알쏭달쏭이 살았다!!"


제리는 한번 죽을 뻔(?)한 달팽이를 더 지극정성으로 관찰하고 키우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손도안 씻고 달려가서 알쏭달쏭에게 말을 걸곤 했다. 또, 먹이를 주기 위해 밖에서 풀을 뜯어왔고 달팽이가 먹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알쏭달쏭'이는 양상추도 잘 먹고, 밖에서 뜯어온 풀도 잘 먹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달팽이를 관찰하면서 나도 처음으로 달팽이에 대해 검색하게 되었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달팽이가 기어 다녀도 아는 체 안 했겠지만, 아이가 있으니 자연에도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달팽이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게 이렇게 귀여울 수가.


한 달쯤 키웠을까. 호시탐탐 비 오는 날만 기다렸다. 7월 초 비가 많이 오는 날 제리에게 물어보았다.


"비가 많이 와서 오늘 알쏭달쏭 보내주는 게 어떨까? 왜냐하면 '알쏭달쏭'이는 집이 있고, 가족이 있거든. 원래 살던 곳으로 가야 '알쏭달쏭'이도 행복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음.. 알았어. 보내주자."


제리는 의외로 순순히 '알쏭달쏭'이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나는 달팽이 집 통째로 아파트 화단으로 갔고, '알쏭달쏭'이를 만난 곳에 흙과 함께 놓아주었다. 원래 살던 곳에서 행복하기를.






그 이후로 애들은 달팽이를 만나면,


"알쏭달쏭이다"


하며 반가워했다. 분명 그 달팽이는 아니겠지만, 한 달간 달팽이를 키웠던 기억으로 모든 달팽이를 '알쏭달쏭'이라고 칭하는 게 정말 귀엽다.






어느 날 제리가 말했다.


"엄마, 6월 6일이 되면 알쏭달쏭이 풀어준 곳으로 가서 생일 축하해 줘야 돼. 상추추면서."


"알쏭달쏭 생일이 6월 6일이야?"


"응. 맞아. 상추 갖다 줘야 돼."


"처음 우리 집으로 온 날인가?"


"아니 처음 온 날은 6월 1일이고, 7월 1일에 우리 집에서 나갔어."


" 그런것 까지 기억한다고? 근데 왜 생일이 6월 6일이야?"


"그냥 그렇게 정한 거야."


"아 제리가 그냥 정한 거야?"


"응."


아 그렇구나. 그냥 정한 거였구나.


달팰이 이야기 끝.




늘 아이디를 정할 때 고민이 된다.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아무렇게나 정하기엔 머릿속이 새하얗다. 머리를 굴리다가 제리가 달팽이 이름을 지었던 게 생각이 나서 브런치 작가 이름을 '알쏭달쏭'이라고 지었다.


딸이 나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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