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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Oct 28. 2022

시골에서 살아보니

청송에서 한달살기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송살이 4주째에 접어들었다. 어릴 때는 방학 때 시골 친척집에 간다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고, 어른이 되어서는 시골 시댁에 간다는 지인이 여전히 부러웠다(시댁시골며느리들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집도 친척집도 시댁도 도시뿐인 나는 막연히 시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막상 시골에 와서 지내보니 시골살이 현타가 왔다. 먹고살아야 하므로 당연히 가장 먼저 피부에 와닿은 건 식재료 구입이다. 우리 동네는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경북 청송군의 '리' 단위 마을이다. 두부 한 모를 사기 위해서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가장 가까운 부남면의 하나로마트가 차로 15분, 식빵을 사려면 인근 면에서 유일하게 빵집이 있는 현동면까지 차로 20분을 달려야 한다.


반면에 인터넷 주문 택배는 도회지랑 별반 다르지 않게 하루 이틀이면 다 왔다. 그동안 싱크대 손잡이, 커튼봉, 세탁기 호스며 고구마, 전복, 생수, 갓김치 등 많은 것들이 배달되어 왔다. 물류 천국, 배달의 나라답게 공산품과 식재료와 가공 반찬까지 종류 불문하고 이틀이면 족히 시골집 문 앞까지 탁탁 안겨주는데 추가 요금조차 없다. 트는 멀고 택배는 가까웠다.


문제는 로컬 서비스다. 지난 금요일에는 보일러실 기름을 채우기 위해 안덕면 주유소에 등유 주문 전화를 했다. 배달 일손없어 배달이 안된다고 했다. 주말엔 영업을 안 하니 불가능하고 월요일은 되어야 배달이 된단다. 나만 몰랐나? 전화 한 통만 하면 언제든 배달이 되는 게 아니었어! 농사 수확철이라 배달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철물점에 들러 20리터 통을 2개 샀다. 기름을 구입해 승용차로 실어와서 보일러실 기름통 일부 채다. 주말에 온다는 손님을 냉방에서 재울 수는 없으니 응급처치라도 해야 했다.


시골 행정 구역상 가장 작은 단위인 '리'에 산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지금까지는 '읍'이든 '면'이든 '리'든 내게는 똑같은 시골이었다. '리'에서 살아보니 면은 다운타운이다. 면사무소도 농협은행도, 우체국도, 마트도, 주유소도, 심지어 목욕탕까지 있는 곳이다. 면이 이토록 번화한 곳인 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시골살이를 하더라도 면소재지 정도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지 않으면 시골이 아니다. 불편함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대가는 놀랍다. 아침마다 뒤뜰에서 줍는 호두가 첫 번째 즐거움이다. 밤송이는 더러 봤지만 호두나무에서 떨어지는 호두는 처음이다. 연두색 도톰한 외피를 벗고 아침마다 세수한 듯 말간 얼굴로 마른 잎 사이에 숨어 앉은 호두 줍기는 그 자체로 보물 찾기다. 남의 밭 호두나무가 우리 집 뜰에 떨어뜨려주는 공호두라 더 고소하다.




앞뜰에는 내가 심지도 않은 호박이 넝쿨째 구르며 자라고 있다. 이슬 머금은 호박을 따다 애호박찌개 호박전, 된장찌개를 해 먹을 때마다 그 어떤 중간과정도 거치지 않고 땅에서 식탁으로 바로 올라온 먹거리에 감탄하고 있다. 내 노동이 한 줌도 들어가지 않아 먹을 때마다 황송하다.



오늘은 마을 길에서 옆집 아줌마를 만났다. 대파와 무를 한아름 캐서 오시는 길이었다. 이 정도면 될 거라며 대파를 한 움큼, 무를 3개나 주셨다. 달고 시원하고 즙많은 가을 무는 익혀 먹기 아깝다. 배보다 맛있는 무로는 무생채 해 먹어야지!



시골살이의 즐거움은 자연이 주는 먹거리가 다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난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았고 단독주택은 처음이다. 엘리베이터를 타지도 않고 현관 문만 열면 바로 땅바닥이고 뜰이라니, 앞집이고 길이라니. 흙을 밟고 사는 게 이토록 안정감을 주다니.(지붕 배수관 일부가 틀어져 손봐야 하는 건 일단 나중 문제!)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단풍에 파묻혀 맑은 공기를 가르며 걷는 시골길 산책도 즐겁다. 그래서인지 밤마다 꿀잠이다.


며칠 전 옆집이 사과 수확하던 날 꼭지 따는 거 도와주기로 했다가 일이 생겨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10킬로들이 사과 14박스를 택배 주문했다. 집만 나서면 보이는 게 사과밭이지만 기왕이면 이웃집 사과를 팔아줘야지. 청송 한달살기도 막바지다. 친구와 지인들에게, 청송의 바람과 햇빛을,  발그레 잘 익은 사과에 담아 보내야겠다.




※ 참고 : 

< 청송 한달살기 경비(28박 29일, 2인) >

식비 113만

교통비(기름값) 29만

입장료 2만

기타 22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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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경비 166만(숙박비 제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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