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외한국학교에 근무하면서 이 학교의 가장 큰 자산은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도 배움의 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학교에서 만난 교사들은 대부분이 배움에 열정적이었기 때문이다(물론 가르칠 때도 열정적이다.). 재외라는 특수하고 어찌 보면 척박하다고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교사들이 학교 공동체 안에서 서로 배우고 또 서로를 가르쳤다. 바로 내가 꿈꾸는 학교 공동체의 모습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여전히 이런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재외한국학교에 오기 전에 이 학교에 대해 기대를 엄청 했었다.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이름부터 국제학교가 아닌가. 최신식 교육 기자재가 갖춰진 근무 환경, 입시에서 벗어난 유연한 교육 과정 운영(다들 시험보다 토의 토론과 프로젝트로 평가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엄청 고민했다.), 개방적인 소통 문화 등... 하지만 현실은 방학 때마다 부수고 다시 지어서 교무실은 이사 다니기 바빴고, 교사 수급의 문제로 교육과정 편성할 때도 한계가 있었다(예전엔 학생 수가 적어 교사 수도 적었다.). 한국으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다수이기에 여기서도 입시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기대와 많이 달랐다.
첫해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선진 교육 환경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나는 실망감과 또 약간의 안도감(?)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일 년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 재외한국학교에 있을수록 매해 놀랍고 기대 이상이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료 교사들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교직 생활을 하며 만난 선생님들 중에 멋진 분들이 참 많으셨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마다 멋지고 본받고 싶은 선생님들이 한두 분씩 꼭 계셨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몇 학교를 근무하며 만난 좋은 선생님 수보다 훨씬 더 많이 좋은 선생님들을 단 몇 년 만에 만날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재외한국학교에서 내가 근무하면서 얻은 것 중 가장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커리어를 갖고 있고 어느 한 분야에 출중한 능력을 지닌 선생님, 자신의 교육 철학이 확고하며 이를 학교에서 실천하고 계신 선생님, 그리고 항상 열정 가득하셔서 교육 활동에 적극적이고 협력적인 선생님. 첫해에는 이런 선생님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특별한 것이 없기에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 년이 지나 해외 현지 생활에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선생님들과 친해졌을 때쯤 나는 우스갯소리로 ‘여기서 내가 제일 정상이야.’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선생님들의 놀라운 능력을 볼 때면 사람이 아니라 다들 슈퍼맨, 원더우먼 같았다. 책 집필은 물론 교구 개발, 공연 기획, 영상 제작, 온라인 학습도구 활용 등 나는 교사가 이렇게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매해 놀랐다. 그래서 나도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던 차 선생님들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3년 전 수영&다이빙 동아리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생각 못했던 교사 동아리이다. 우선은 내가 좋아하는 다이빙을 선생님들과 함께 하며 어울릴 수 있어서 좋았고 결과적으로는 초등 선생님들의 엄청난 능력을 알게 되었다. 중등 선생님들이 각각 특기가 있다면 이분들은 만능이다. 나는 이런 선생님들이 우리학교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이런 환경에서 내가 이분들과 친분만 쌓는 건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도 있지만(난 가무에 젬병이다.) 배워두면 교실에서 혹은 학교에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던 차에 작년과 올해에 온라인 수업 도구를 배우는 배움 공동체는 정말 반가웠다. 코로나 시기에 많은 이들이 원했고 역시나 우리 가운데 능력자가 있었으며 감사하게도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최근에는 상담 도구를 개발할 정도로 학생 상담에 능력이 출중한 선생님을 알게 되어 배우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열정적인 분들이라 아마 티 안 나게 뭔가를 배우고 있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학교 소식지 제작에 관심 있는 분이 계시면 나도 나눔을 하고 싶다(연락 주세요. 2학기 아고뤠 신규 회원 모집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배움이 너무 좋다. 우리학교에 이미 취미활동 중심으로 교사 동아리가 활성화되어 있듯이 이런 형식으로 배움 공동체도 활성화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학교에는 다재다능한 교사가 많고, 배움을 즐기는 교사도 많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움 공동체를 지원하고, 자율적인 배움 문화가 정착된다면 분명 학교 조직 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아가 교사들의 배움 공동체가 학생들의 진로 동아리 활동과 연계를 한다면 학교 교육활동도 더 풍성해질 것이다.
사실 재외한국학교에서도 한국 교육과정의 틀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기는 힘들다. 이를 지속적으로 든든하게 지원할 상위 교육기관이 없고, 교육 현장에 있는 학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의 기본 근무 기간도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기 목표를 설정하여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진하는 것도 어렵고, 누군가가 책임지고 교육과정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학교는 교사 개개인의 역량으로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교사들의 배움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이를 학생 교육활동과 연계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다. 학교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작은 변화를 시도하다 보면 큰 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