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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Nov 16. 2019

알혼섬 대신 리스트비얀카





알혼섬 대신 리스트비얀카




내가 머물던 호스텔은 8인실이었는데 중국인들이 몰려 왔다가 또 다음 날에도 새로운 중국인들이 몰려와 하루씩 있다가 떠났다. 모두들 알혼섬의 후지르 마을로 가는 것 같았다. 이르쿠츠크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바이칼 호수를 보기 위해 알혼섬Ольхон으로 간다. 내게 주어진 5일의 시간은 긴 여행을 위한 워밍업이었기에 뭔가 엄청난 것을 초반부터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오고 가는데 이틀을 쓰고, 또 섬에서 며칠을 머물다 나오기에는 마음의 여유도 없었거니와, 급작스런 추위로 인해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생기면 횡단열차를 타기도 전에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대신 이르쿠츠크에서 1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바이칼 호수 마을 리스트비얀카에 가보기로 했다. 그 전날 중앙 시장 근처를 돌다가 밴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미리 봐두었었다. 차비는 150루블(약 2,800원). 나는 기사 바로 옆자리인 차의 중앙에 앉았다. 백미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묵주가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손님들에게 내어줄 잔돈이 계란판처럼 옴폭 패인 빈 초콜릿 박스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소풍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내를 빠져나가자 셔터를 누르고 싶은 장면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눈은 날리고, 도로는 검고, 양쪽의 숲은 눈부시게 하얬다. 내 오른쪽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승객이 졸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깰까봐 최대한 셔터를 아꼈다. 숲 근처의 정류장에서도 사람들이 타고 또 내렸다. 오르막에서 내리막으로 또 다시 평지로 그렇게 1시간 쯤을 달렸을 즈음 환호성이 터졌다. 바이칼 호수가 보였다. 하얗고 푸르고 더 푸르고 검푸른 것들이 맑고 황량하면서 아름다웠다. 얼지 않은 호수와 언 호수가 만나는 경계 부근에는 사막의 모래 같은 눈과 메마른 풀들이 바람결을 따라 누워 있었다. 감탄의 환호가 끝나기도 전에 버스는 리스트비얀카의 중심가인 마약 호텔 앞에 멈췄다. 종점이었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운전수는 목적지 이름표를 이르쿠츠크로 바꾸어 달고 또 다시 승객들을 기다렸다. 







나는 화장실을 찾았다. 분명 화장실 표시가 있는데도 앞에 선 장사꾼 아줌마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여기 저기 묻다가 시장에는 있겠지 싶어서 시장을 향해 걸었다. 거기에 유료 화장실이 있었다. 사진을 찍다보면 밥 때를 그냥 넘길 수도 있어서 온 김에 점심도 먹고 가기로 했다.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시장은 온통 오물Омуль─바이칼 호수에서만 잡히는 생선─파는 노점들이었는데, 좋아하는 여행 프로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상인들은 오물을 구워 스티로폼 박스 안에 넣어 놓고 손님이 올 때마다 뚜껑을 열었다. 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니 지느러미 쪽을 살짝 떼어 맛보라며 건네주었다. 두번째로 시식한 집에서 150루블을 주고 작은 오물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안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볶음밥류인 필라프 하나와 오이와 토마토가 든 기본 샐러드를 시켰는데, 센스 넘치는 웨이터는 오물을 놓고 먹으라며 플라스틱 접시까지 가져다주었다. 창가에 놓여진 형광톤의 화려한 조화를 보며 하얀 눈이 흩날리는 창밖을 보고 있자니 산 적도 없는 50~60년대가 떠올랐다. 오물의 맛은 바다 고기를 많이 먹고 자란 내게는 ‘맛있는 생선을 맛없게 구운 맛’이었는데, 훈제향 또한 소싯적 트라우마─소주와 훈제 칠면조 요리를 함께 먹고 체한 일─때문에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살기 위해 남김 없이 다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도로 하나를 건너 바이칼 호수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얼음 위를 걷고 있었는데, 깨어진 얼음판을 보니 살짝 겁이 났다. 살금살금, 중앙을 향해 걷는데 찌지지직. 아찔했다.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얼음 위를 달리는 보트에서 내리고, 또 탔다. 비용은 500루블. 블로그에서 본 적 있는 에어보트였는데 혹시나 얼음 속에 얼어 있는 기포를 보고 올 수 있을까 싶어 배 위에 올랐다. 미끄러지듯 얼음 호수 위를 달리는 스릴 넘치는 보트에는 대부분 가족이나 연인들이 타고 있었다. 혼자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보트는 10분 남짓 달리다가 난파선처럼 보이는 커다란 배 앞에 멈췄다. 그곳에 내린 사람들은 그 배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나는 혼자서 투명한 수면 아래를 보고 싶어 얼음 위에 쌓인 눈을 치웠는데, 사진으로 보던 청량한 블루의 기포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운전수는 그런 나를 보더니 그걸 보려면 꽤 멀리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 위험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어찌 되었건 못 본다는 말이었다. 



우주복을 입은 귀여운 아기들이 햇살에 얼굴을 찡그리며 아장아장 걸었다. 키가 큰 러시아 남자가 내게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그러더니 핸드폰 카메라를 그의 애인에게 맡기고 내 옆에 와서 섰다. 그의 애인은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아슬아슬하게 셔터를 눌렀다. 굳이 꺼내볼 일 없는 기념사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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